“그들이 바로 나의 신이었다” [독서일기]
최진영 지음
안온북스 펴냄
“가슴으로 쓴 시는 가슴이 읽을 것이고 머리로 쓴 시는 머리가 읽”(‘나도 시인이었던 적이 있다’)는다는 김인자 시인의 시구대로라면,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우수아이아〉(달아실, 2024)는 가슴으로 읽는 시집이다. “두 눈을 잃어 다시는/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없다 해도/ 난 괜찮아 네가 나를 볼 수만 있다면”(‘내 숨이 기원’). 시인이 여행작가이기도 하다는 것을 떠올리면 더욱 절절해지는 이런 시구는 머릿속으로 작도한 게 아니다.
시집의 제목이 궁금해서 표제작부터 찾아 읽었다. “우수아이아, 우수아이아/ 슬픔을 반납하고 분노를 푸는 곳/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는 곳// 우수아이아 그곳까지 가서/ 내 손을 잡아줄 신은커녕/ 나를 버려줄 신조차 없다는 걸 알았을 때/ 폭풍처럼 달려드는 고독과 외로움/ 송곳 같은 바람이 온몸을 관통해도/ 풍경으로 이름을 잊게 한다는 우수아이아/ 우수아이아, 이 빛나는 이름 앞에서/ 왜 나는 눈물이 날까.” 우수아이아는 ‘세상의 끝’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르헨티나 티에라델푸에고의 주도다. 여행가들이 궁극의 버킷 리스트로 삼는 그곳에서 시인은 왜 눈물이 났을까.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식당이고 우리는 슬픔으로 지은 그 밥 먹으러 세상에 온 가엾은 짐승들”(‘고요가 슬픔에 이를 때’)이라는 구절이 가슴에 스며든다.
시인은 〈걸어서 히말라야〉(눈빛, 2005), 〈아프리카 트럭여행〉(눈빛, 2006), 〈뉴질랜드에서 온 러브레터〉(눈빛, 2009)를 비롯한 여행기 여러 권을 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레, 2004)에서 여행을 ‘행복을 찾는 기술’이라고 정의했는데, 시인의 여행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인은 제목이 필요 없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어느 시에 기대어 쓴다. “가보지 못한 길 앞에서/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마라// 가보지 못한 길이라 외면만 한다면/ 그 길은 영원히 가보고 싶거나/ 가야 할 길로만 남을 테니// 후회하리라/ 훗날 가보지 못한 길에 그토록 고운 꽃이/ 수없이 피고 졌다는 걸 알게 된다면”(‘늦기 전에’).
아르바이트생들이 존경을 거둔 이유
최진영의 세 번째 소설집 〈쓰게 될 것〉(안온북스, 2024)에는 단편소설 여덟 편이 실려 있다. 작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소재로 삼은 표제작에 일곱 살배기 어린 소녀를 등장시켜 전쟁을 일으킨 어른들의 위선을 고발한다. “신을 믿는 자들은 전쟁을 구원이라고 했다. 더 많은 살상이 승리이자 착한 행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쟁통에 할머니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은 소녀는 새로운 신학을 발견한다. “전쟁 속에서도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나의 신이었다.” 최진영의 작품에는 이런 신학이 깔려 있다.
이 소설집의 소재는 전쟁, 기후위기, AI에서부터 결혼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채롭다. 그 가운데서 ‘유진’은 앞서 나열한 어떤 소재에도 속하지 않는다. 경양식집 베네치아가 무대인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마흔 살 된 매니저 이유진과 대학생 아르바이트생 여섯 명. 이유진은 공사가 뚜렷하고(업무 중에는 깐깐했고, 업무 외의 시간에는 격식이 없었다), 매사에 품격을 고집했던 데다가, 사장과 싸워서 여섯 명이나 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뒷정리 시간까지 급여에 포함시키는 정의로운 어른이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이유진을 따르고 동경했다. 그것은 존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을 마치고 조금 더 놀 장소를 찾다가 아르바이트생들은 매니저를 따라 그녀가 사는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유진이 지하방에 사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아르바이트생들은 그녀에 대한 존경을 거둔다. 매니저의 눈빛이 변해도 예전처럼 얼어붙지 않았고, 그녀의 말과 행동은 모두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성공이 존경의 기준일 때, 존경할 사람은 재벌 기업의 2·3세 승계자이거나 매스미디어를 장악한 유명인일 것이다. 성공이란 기준으로 부모를 비롯한 주위의 어른들을 보면, 아무도 존경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런 기준을 만들고 가르친 사람들이 내 부모이고 선생들이라면, 성공하지 못한 어른들이 아랫세대에게 받는 푸대접과 멸시는 자업자득이다.
박상현 희곡집 〈사이코패스〉(제철소, 2024)는 작가의 전매특허나 같은 옴니버스 양식을 보여준다. 작가는 하나의 일화로 한 개의 장(章)을 만들고 나서, 그 장과 비슷한 소재를 변주하거나 확장한 또 다른 장을 연이어 덧붙이는 것으로 연극 한 편을 완성한다. 연극이라면 응당 인과적인 행동(원인과 결과)을 보여줘야 하지만, 작가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원칙과 담을 쌓았다. 장소 상실과 입양아 수출을 다룬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네 개, 연쇄살인범이 중심인 ‘사이코패스’는 열세 개, 권력이 성을 금제하고 활용하는 ‘치정’은 무려 스물한 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각 장과 장 사이에는 인과가 없다.
이어령은 한국인의 애송시 서른두 편을 해설한 〈언어로 세운 집〉(아르테, 2015)에서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가 가진 정감의 비밀을 젠더화된 공간에서 찾았다. 도시와 산업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강변에는 엄마와 누나만 있고, 근육질의 ‘아빠와 형’은 없다. 이 여성화된 공간은 일종의 유토피아였다. 그런데 박상현은 김소월의 시 제목을 제1장의 제목으로 차용한 ‘사이코패스’에서 아빠와 형이 없는 금모래 빛 강변을 핏빛으로 물들인다. 어머니는 모래사장에 남매를 버린 채 달아나고, 그 마을의 교회 목사가 남매를 거두게 되는데···.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인 제13장에서 같은 이야기는 반복되며 번복된다.
연극은 처음과 끝이 있어야 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일렀건만, 옴니버스 양식은 시작도 끝도 없다. 공연 상황이나 연출가의 판단에 따라 특정한 장을 빼거나 새로 급조할 수도 있는 이 양식은 완성이라는 개념을 모른다. 실제로 있었던 내부고발자들의 사례를 숨 가쁘게 나열한 ‘고발자들’은 이런 방식의 극단을 보여준다. 작가가 이처럼 극단적인 모듈화(module化)를 구사하게 된 데에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명왕성에서〉(이음, 2019)가 보여주었듯이 그의 연극 세계가 강한 현실 참여 의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구사하는 옴니버스 양식은 속악한 세계를 속악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양식이자, 사회적 기동전을 수행하기 위한 양식이다.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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