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 보아선 안 될 것을 본 ‘주맹증’ 침술사[시네프리뷰]
2022. 11. 30. 07:27
풍덩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장르적 특성상 엔간하면 정보 없이 관람할 때 몇 배는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이 더욱 즐거운 이유는 놀랍게도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란 사실이다.
제목 올빼미(The Night Owl)
제작연도 2022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18분
장르 스릴러
감독 안태진
출연 류준열, 유해진, 최무성, 조성하, 박명훈, 김성철
개봉 2022년 11월 23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팩션(faction)’이란 원래 당파, 파벌 등을 뜻하는 영어단어이지만, 근래 들어선 영화 장르의 한 형태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다. 사실이나 실화에 근거해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낸 새로운 이야기를 뜻한다. 국립국어원은 ‘각색실화’란 순화어를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소설과 영화로 친숙한 〈다빈치 코드〉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브를 얻은 대부분의 작품이 이 영역에 포함된다.
병약한 어린 동생과 가난하게 사는 시각장애인 침술사 경수(류준열 분)는 해박한 의학적 지식과 앞이 보이지 않는 대신 발달한 다른 감각을 통해 남다른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다. 때마침 경수는 궁에서 일할 침술사를 뽑으려는 내의원 수석 주치의 이형익(최무성 분) 앞에서 뛰어난 능력을 펼쳐보인다. 꿈에 그리던 어의로 발탁돼 궁에 들어간다. 선배 만식(박명훈 분)의 산만한 도움을 받으며 내의원 생활에 적응해간다. 경수는 어서 빨리 수습기간을 마치고 집으로 가 동생을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즈음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김성철 분)가 8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온다. 아버지 인조(유해진 분)는 자신이 무릎까지 꿇으며 굴욕적으로 받들게 된 청나라에 가서 서양문물과 기술에 눈을 뜨고 새로운 세상을 강변하는 아들의 귀향이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는 처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현세자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다. 이를 치료하려는 이형익의 수발을 들기 위해 세자의 처소에 들어선 경수는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역사적 사실 위에서 펼쳐지는 현대적 스릴러
간만에 풍덩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즐겼다. 장르적 특성상 엔간하면 정보 없이 관람할 때 몇 배는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니 어느 정도 이야기의 흐름이나 결말은 짐작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중반부터 다양한 각도의 반전과 반전이 거듭 이어진다. 서스펜스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 작품인 만큼 설계상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이중 몇몇은 홍보단계부터 이미 공개가 돼버려 감상 전 정보에 적극적인 관객이라면 재미의 일부를 놓칠 수도 있겠다.
홍보 상 부각되는 ‘주맹증(晝盲症)’이라는 증상 역시 스포일러다. 단어 그대로 흔히들 알고 있는 야맹증(夜盲症)의 반대 개념이다. 밝은 곳에서 시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증상을 말한다. 증세 자체부터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것이 아닌지라 이채롭다. 소재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구연해내고 이야기 안에 효과적으로 녹여냈다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캐릭터의 구축과 활용 역시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장점이다. 오랜 배우생활에도 왕 연기는 처음이라는 유해진의 인조 역할은 작품을 통틀어 가장 큰 화제다. 이전과 다른 배역으로 본인 스스로도 긴장했다는 범상치 않은 캐스팅이니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의아한 건 당연하다. 이야기가 본격적인 파국으로 들어서면 캐스팅에 충분히 납득이 간다.
17년 만에 데뷔한 늦깎이 감독
무엇보다 류준열이 연기한 주인공 경수의 캐릭터가 영화의 핵심이다. 시각장애인 침술사라는 설정부터가 독특하다. 주맹증이라는 특이한 질병이나 유일한 주특기인 침술을 마치 일종의 초능력처럼 역전시켜 활용했다. 경수의 소소한 활약은 영화 안에서 매우 매력적으로 가공됐다. 더불어 깊은 고뇌와 절망 끝에 그가 토로하는 현실적 대사들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처지를 넘어 평범한 보통의 서민들을 대변하는 인물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이외에도 최무성(어의 이형익 역), 조성하(최대감 역), 박명훈(어의 만식 역), 김성철(소현세자 역), 안은진(소용 조씨 역), 조윤서(강빈 역) 등 각양각색의 작품에서 자신만의 장점을 선보여온 신·구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캐스팅했다.
이번 작품이 더욱 즐거운 이유는 놀랍게도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기 때문이다. 안태진 감독의 공식 이력은 2005년 〈왕의 남자〉 조감독이 전부다. 이후 17년 만에 드디어 감독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작품을 내놓았다.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기교와 내공을 보여준다. 모처럼 흔쾌히 다음 작품을 응원하고 싶게 만드는 감독을 만났다.
인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
안현철 감독의 〈인목대비〉(1962)와 강찬우 감독의 〈십이인의 야도〉(1962), 나봉한 감독의 〈인조반정〉(1967)은 서인 세력의 시선에서 광해군 및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인조)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을 고전적 방식으로 재연한 작품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는 같은 사건을 정반대의 입장에서 현대적 상상력을 더해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김기덕 감독의 〈원앙선〉(1964)은 동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탐관오리의 훼방에도 사랑을 지켜내는 남녀의 이야기를 펼쳐보였다.
김의석 감독이 연출한 〈청풍명월〉(2002)은 인조반정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 무관 양성소인 ‘청풍명월’ 최고의 검객으로 손꼽히며 우정을 쌓던 두 남자는 반정의 시대적 격랑을 관통한 후 서로에게 칼을 겨루는 엇갈린 관계로 다시 마주 선다.
조긍하 감독의 〈애란〉(1963)은 반정 후 발생한 ‘이괄의 난’을 소재로 만들었다. 정창화 감독의 〈충열도(파계)〉(1977)는 인조 초 두만강 일대를 배경으로 부모의 원수를 찾아 복수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무협영화다. 최재훈 감독의 〈검객〉(2020) 역시 비슷한 시기 청나라 황족에게 딸을 납치당한 검객의 활약을 그렸다. 김한민 감독이 연출해 한참 앞서 공개했던 병자호란 배경의 〈최종병기 활〉(2011)과 여러모로 비교되는 작품이다.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2017)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끝을 맺은 병자호란과 삼전도 굴욕의 과정을 차분하게 그려냈다.
김영효 감독의 〈심야의 난입자〉(1969)는 인조 파벌과 소현세자 파벌 간의 세력다툼을 풀어낸 액션활극이다. 김성훈 감독이 연출한 〈창궐〉(2018)은 일종의 유사좀비를 등장시킨 판타지 공포물로 실제인물들의 이름까지 비슷하게 개명했지만, 관객들에게 냉정한 평가를 받고 말았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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