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영상 속 무당 점사는 짜고 치는 쇼"… 대역 배우의 폭로
손님 사연 맞히고 조언 영상들 "100% 시나리오"
본보, 대본·녹취 입수…열흘 뒤 동일 내용 업로드
'족집게 영상' 사실로 믿고 무당 찾았다 사기 피해 방치된>
편집자주
하늘과 땅을 잇는 원초적 존재, 무당은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고 범죄의 온상이 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한국일보는 석 달간 전국의 점집과 기도터를 돌아다니며 우리 곁에 있는 무속의 두 얼굴을 조명했다.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공식적으론 어디에도 없는 무속의 현주소도 파헤쳤다. 문화 코드로 자리잡은 무속이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모색했다.
"제가 모시는 신령님이 이런 영상을 싫어했어요. 다들 쉬쉬해도 끝까지 쫓았던 이유입니다."
8년 차 무당 A씨는 9월 19일 한국일보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수년 동안 우후죽순 늘어난 유튜브 점사 콘텐츠들의 비뚤어진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성토했다. 점사 콘텐츠에선 무당들이 손님의 내밀한 사생활을 맞혀 신뢰를 얻은 뒤 각종 조언을 해주고 있다.
A씨는 본보에 영상 속 손님들이 모두 가짜 사연을 가진 배우라고 폭로했다. 일부 무당들이 영험함을 연기해 피해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A씨는 자신이 점사 콘텐츠 배우로 오랫동안 활동했기에 내부에서 벌어진 일을 정확히 알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런 짜고 치는 영상들은 윤리적으로 큰 문제"라며 "이제는 멈춰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연출 10%가 아니라 100%
기자가 유튜브 채널에 '무당' 키워드로 검색하자, 점사 콘텐츠 수십 개가 나왔다. '성노예' '성폭행' '돌연사' '빙의' 등 자극적인 섬네일로 포장돼 있었다. 영상 속 내용은 무당이 신당을 찾은 손님을 상담하는 게 대부분이다. 무당들은 손님 이름과 나이만 듣고도 개인사를 족집게처럼 맞힌 뒤 향후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단번에 손님에게 전과가 있음을 맞힌 뒤, 호통을 치거나 내쫓는 영상도 있었다.
시청자들은 "천불이 난다", "도령님 정말 영험하다", "예약할 수 있느냐",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영상은 조회 수가 100만 회에 달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고,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영상도 적지 않았다.
A씨는 이런 유튜브 채널들이 배우를 섭외해 가짜 사연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점사 콘텐츠 채널 중 규모(구독자 45만 명)가 가장 큰 B사에서 배우로 3년간 총 6편 출연했고, 또 다른 채널에도 두 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A씨는 "실력 없는 무당들이 유튜브로 광고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마침 B사에서 배우를 모집한다길래 호기심이 생겨 지원했다"며 "PD가 사전에 대본을 주는데도 영험한 것처럼 연기하고 영상을 올려 충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B사는 섭외된 배우들에게 '관련 내용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했지만, A씨는 각서 없이 배우로 참여한 B사의 점사 콘텐츠 대본과 녹취록을 8월 29일 본보에 제공했다. 자료에는 담당 PD가 "아빠는 알코올중독에 가정폭력, 오빠는 사고뭉치에 집안을 더 어렵게 만드는 존재, 그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엄마"와 같이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고 이를 배우들에게 숙지하라고 지시하는 대화가 포함돼 있었다.
"결혼하고 자식도 둘 낳았는데, 직업이 건달이라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든 남자로, 5년 전 절도·영업방해·성희롱 등 찌질한 범죄들로 4년 살다 나왔고 인생의 희망을 찾고자 점을 보러 왔다가 무당과 난투극을 벌인다"는 사례를 연기한 배우도 있었다. A씨는 "일단 대본대로 진행하지만, PD가 '여기서 이렇게 말씀하라'며 하나하나 지시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9월 11일부터 B사 채널에는 A씨가 본보에 제공한 시나리오와 일치하는 영상들이 차례로 업로드됐다. 그럼에도 연출된 장면이라는 설명은 없었다. A씨는 "무당들이 B사에 출연하려고 3,000만~1억 원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상을 보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굿을 하도록 유도하면 금방 회수할 수 있다"며 "가장 큰 유튜브 채널도 연출이 판을 치는데, 다른 점사 콘텐츠들은 오죽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도 B사 채널에는 오히려 "간혹 허위 사연 제작, 불법 촬영, 불법 녹취, 녹화 등 신당에서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 분들이 있다. 적발될 시 법적 책임을 묻고 있다"는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본보는 A씨 제보 내용에 대한 B사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10건당 1건꼴... "유튜브, SNS 보고 찾아가"
온라인 점사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조작된 콘텐츠를 사실로 믿고 무당을 찾았다가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유튜브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피해자도 덩달아 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일보가 지난 10년간 무속 관련 범죄로 기소된 320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10건 중 1건(9.6%)에선 "피해자가 유튜브 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피고인(무속인)을 접촉했다"고 기재돼 있었다.
한 무속인은 자신이 출연한 콘텐츠를 보고 찾아온 피해자에게 "굿을 하지 않으면 결혼하기 힘들고 사업에 관재(관가로부터 받는 재앙)가 생겨 투자자들에게 고소 당할 수 있다"고 불안감을 조성해 1,500만 원을 가로챘다. 이 무속인은 이후로도 "국회의원 공천을 받게 해줄 테니 굿을 하라", "중국 쪽 사업을 방해하는 기운이 있으니 굿이 필요하다", "투자금을 받으려면 기도를 올려야 한다"는 등 온갖 명목으로 149회에 걸쳐 17억9,193만 원을 받아갔다. 해당 무속인은 2016년 8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팀장 : 이성원 기자
취재 : 손영하·이서현 기자, 이지수·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하상윤·정다빈 기자
영상 : 김용식·박고은·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전세희 모션그래퍼, 이란희·김가현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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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굿판을 걷어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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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사람 잡는 무속
- • "굿하면 다 낫는다" 고통을 먹잇감 삼아…귀신 대신 사람 잡은 무당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0220004372) - • "유튜브 영상 속 무당 점사는 짜고 치는 쇼"… 대역 배우의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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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기도터 가는 이유
- • '기도발' '복' 그리고 '쩐'... 무당 70명이 그날 대관령 오른 이유는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0240005656) - • K샤머니즘 전문 이스라엘 교수 "한국은 교인도 점 보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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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산업화된 점집
- • 미아동 떠나 논현동서 수억 수익… 점집도 '강남불패'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0300003815) - • 진로·취업·결혼… '초고속 온라인 점술' 호황… 신뢰성은 의문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0310002722) - • "30만명 넘는다"는 무당… 정부엔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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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아동 떠나 논현동서 수억 수익… 점집도 '강남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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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시대와 공존하려면
- • "참된 무당은 고통받는 이들의 나침판… 신 무서운 줄 알면 나쁜 짓 못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0510160001713) - • 무속인 왜 안 좋게 보냐고? "돈만 좇는 모습에 실망"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0340004537) - • "전 세계 고객에 점 봐줘"... 한국서 신내림받은 '푸른 눈의 무당'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6130005009)
- • "참된 무당은 고통받는 이들의 나침판… 신 무서운 줄 알면 나쁜 짓 못해"
이서현 기자 here@hankookilbo.com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이지수 인턴 기자 ssu14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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