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교육도시' 내걸었던 대구 동구, 정책은 '속 빈 강정'
"교육환경이 도시경쟁력"이라며 '명품교육도시 동구'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대구 동구청의 교육정책이 겉돌고 있다. 공교육 인프라 개선이나 지자체 본연의 역할에 대한 고민 없이 '강남인강' 수강권 지원사업 등 사실상 수도권 사교육을 장려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 '강남인강' 사교육 조장 논란
인터넷 강의 수강료를 전액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대구 동구청의 '강남인강' 수강권 지원 사업은 지자체 예산으로 수도권 사교육 시장을 배불린다는 점에서 공교육 강화 정책 기조와 배치돼 사실상 사교육을 부채질 한다는 교육계의 비판 목소리가 거세다.
동구청은 올해 초·중·고 교육경비보조금 예산 14억 5천만원을 전액 구비로 책정했다. '공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한 우수 교육 프로그램 지원'이라는 목적과 달리 동구는 인터넷 강의 시스템 '강남인강' 수강권을 지원해주는 사업에만 이 중 1억1천500만원을 투입했다.
'강남인강'은 강남구청에서 구축한 인터넷 강의 플랫폼으로, 계약을 맺은 여러 업체의 인터넷 강의를 '강남인강' 사이트에 올려놓으면 학생들이 연 5만원을 내고 수강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대구 동구청은 지난해 4월부터 강남구청과 공동이용협약(MOU)을 체결해 동구청 교육경비보조금으로 동구지역 중‧고등학생의 강남인강 수강료를 전액 지원하고 있다. 윤석준 동구청장 공약 사업으로 이례적으로 상한액 설정 없이 수요가 있을 때마다 무제한 지원한다. 동구는 지난해에도 강남인강을 비롯한 인터넷 강의 보조 사업에 1억1천만원을 지원했다.
뿐만 아니라 대구 동구는 올해 교육경비보조금 1억7천600만원(시비 4천만원, 구비 1억3천600만원)을 활용, 서울 소재 한 사교육업체가 운영하는 '원어민 화상영어' 수강료를 지원하기도 했다.
교육계에서는 공공기관이 실질적으로 사교육 사이트인 '강남인강' 등 이용을 장려하는 것은 공교육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 방향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동구의 교육경비 보조금 지원 내역은 정작 교육도시로서의 명성이 공고한 수성구와 비교해봐도 대조적이다. 수성구의 경우 올해 교육경비보조금 7억3천만원을 지원했는데, 지원 대상 사업은 주로 학교 수업에서 놓칠 수 있는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창의 체험, 음악 활동 수업, 4차 산업 소프트웨어 교육 등 대학 입시, 학교 교육 심화 프로그램 등을 교육경비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건 지양하려고 한다"며 "방침 상 사교육이나 입시에 보조금을 지원하기보단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과 체험을 유도하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교밖청소년 문제는 '예산없다' 뒷전
동구청은 정작 학교밖청소년 문제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하는 모양새다. 제도권 내 학생 위주의 현금 지원 정책에만 몰두해 형평성 논란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동구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꿈드림센터)는 대구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동촌로16길에 자리잡은 동구 꿈드림센터는 대구 8개 구·군 센터 중 가장 협소한 165㎡ 건물에 청소년 개인 상담실, 교육실직원 14명의 사무 공간 등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청소년 5~6명이 공용 공간에 나오자 앉을 자리가 없었고 자습실, 학부모 대기 공간도 없었다. 한 쪽 구석에 마련된 개인 상담실은 성인 두 명이 들어가기도 비좁았다. 밀폐된 개인 상담실은 환풍 시설, 냉방 시설이 없어 선풍기 한 대로 무더움 여름철을 버틴다.
이달 기준 동구 꿈드림센터에 등록된 학교 밖 청소년 수는 283명이나 된다. 청소년 상담복지센터도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어 하루 평균 25여명이 센터를 찾는다.
안성주 동구 꿈드림센터 팀장은 "청소년 프로그램을 기획해도 장소가 마땅치 않아 인근 카페나 교회, 주민복지센터 등에 매번 문의전화를 돌리고 있다"며 "화장실마저 남녀분리가 돼있지 않고 매우 좁다"고 하소연했다.
4년전부터 동구 꿈드림센터를 이용 중인 강모(19) 군은 "상담을 받고 싶어도 방이 부족해 일정이 늦게 잡히고 방음도 안돼서 누가 들을까 이야기를 편하게 못한다"며 "집이 불편한 친구들이 주로 센터를 찾지만 편히 쉬다갈 공간이 없어 밖에서 떠돌게 된다"고 말했다.
센터 학습 멘토인 대학생 김모(20) 씨는 "학습공간이 없다보니 인근 카페를 주로 가는데 주변이 어수선하거나 시끄러울 때가 많아 멘토링이 힘들다"고 말했다.
꿈드림센터는 보통 지자체 산하기관 건물을 사용하지만 동구 꿈드림센터는 대구서 유일하게 연간 약 1천500만원의 임차료를 내고 있다. 서구 꿈드림센터도 유상임차 중이지만 지자체 산하기관 건물이며 임차료도 서구청이 부담하고 있다.
동구 꿈드림센터는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꿈드림센터 리모델링 공사비 지원 사업도 신청할 수 없다. 지자체·법인 소유 시설만 지원가능해서다.
동구 꿈드림센터 확장·이전과 관련해 동구청은 지난 2월 "시설 확보는 동구꿈드림센터 수탁법인이 해야 하며 센터 건물 신축 시 구비부담 증가의 문제점이 있다"며 외면했다.
여성가족부 학교밖청소년지원과 관계자는 "지난 2015년부터 시행된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학교 밖 청소년 지원은 정부와 지자체의 의무로 규정됐다"며 "시설 확보 등을 위탁 법인에 미룰 것이 아니라 공간 협소 등의 문제점이 생기면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유휴공간을 찾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김혜은 동구 꿈드림센터 센터장은 "학교 밖 청소년의 자살 위험도가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의 3배를 넘어섰고 고립·은둔 장기화 등 사회적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며 "동구에 살고 있는 위기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 및 복지 증진을 위한 공간 확보가 매우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의문 표시
교육 전문가들도 동구청의 교육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김규태 계명대 교수(교육학과)는 "청소년들이 학교 밖을 나오는 순간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지도·관리해야 하지만 업적 쌓기, 치적용 교육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연구소장은 "저소득층 학생들에 대한 학업 성취 상황을 진단하고 이에 맞는 지원이 필요한데, 단순히 사교육 강사 강의를 제공하겠다는 접근법 자체가 잘못됐다"며 "지역별 교육격차는 인터넷 강의 접근성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다. 알아서 공부하는 동기나 효능감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지도할 방안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섭 교육디자인네트워크 대표는 "정치권은 특히 지역 불균형, 격차 해소를 고민해야하는데 현재 체제안에서 단순하게 효율적으로 성적을 높이기 위한 방식, 입시 결과를 높이려는 방식으로 교육 사업을 진행하는 건 교육 철학 부재 때문"라고 짚었다.
이에 대해 동구청은 강남인강 수강권 지원 사업은 사교육 촉진이 아닌 '자기 주도 학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동구청 교육정책과 관계자는 "강남인강을 과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에게 균등한 학습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교육격차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했다"며 "학원을 갈 수 없는 학생들이 스스로 자기주도학습을 강화하고 다른 인터넷 강의보다 값싼 수강료로 누구나 원하는 인강을 들을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강남인강' 수강권 지원 사업 성과 관리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과 관련해선 "학교별로 설문조사, 수강료, 만족도 조사 모니터링 등을 지난해 9월부터 실시하고 있다. 데이터를 구청에서 파악하고 있지는 않지만 학교별 모니터링은 계속하고 있고 언제든 수합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지수 기자 inde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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