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투수 부상자 속출, 그 이유는?

게릿 콜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주말 메이저리그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들이 연달아 부상으로 쓰러졌다. <USA투데이>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 시간"이라고 보도했다.

애틀랜타 1선발 스펜서 스트라이더는 전조 증상이 있었다. 직전 등판에서 포심 패스트볼(이하 포심) 평균 구속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지난해 포심 평균 구속이 97.2마일이었는데, 직전 등판은 95.9마일로 하락했다. 포심 위력이 반감된 스트라이더는 4이닝 5실점으로 난타당했다. 피안타는 7개, 볼넷도 3개였다.

그에 반해 클리블랜드 1선발 셰인 비버는 딱히 징조가 없었다. 지난 시즌 팔꿈치 부상 공백이 있었지만, 9월에 돌아와서 두 경기를 소화했다. 겨우내 피칭 연구소 '드라이브라인 베이스볼'을 방문할 만큼 추가 통증도 없었다. 심지어 올해는 포심 구속이 올라오면서 두 경기 1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탈삼진은 20개, 볼넷은 하나였다.

비버는 반등을 기대하게 했다. 사람들은 비버가 두 번째 사이영상에 도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느닷없이 토미존 수술을 받는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이로써 비버는 남은 시즌을 비롯해 내년 시즌도 상당 기간 결장이 불가피하다.

스트라이더도 불길한 예감이 빗나가지 않았다. 팔꿈치 MRI에서 내측측부인대 손상이 발견됐다. 내측측부인대는 토미존 수술로 이어질 수 있는 부위다. 스트라이더는 과거에 토미존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부상의 늪에 빠졌다. 비단 두 선수만이 아니다. 양키스 1선발 게릿 콜도 팔꿈치 부상으로 최소 6월까지 돌아올 수 없다. 마이애미는 최고 유망주 유리 페레스가 토미존 수술대에 올랐다. 휴스턴도 1선발 프램버 발데스가 팔꿈치 통증으로 등판이 취소됐다.

<ESPN> 제프 파산은 "피칭은 잔인한 비즈니스"라고 꼬집었다.

피치 클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투수들의 부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자 선수노조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선수노조는 성명문을 통해 갑작스럽게 늘어난 부상 원인은 "피치 클락 때문"이라고 지목했다.

지난해 도입된 피치 클락은 투수가 공을 던지는 시간을 제재하는 시스템이다. 주자가 없을 때 15초, 주자가 있을 때 20초였는데, 올해는 주자가 있을 때 18초로 더 짧아졌다. 시간에 쫓겨서 급히 공을 던지는 행위가 루틴을 무너뜨려 부상을 야기한다는 주장이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즉각 반박했다. 작년부터 운영된 피치 클락을 근본적인 이유로 보는 건 무리라는 입장이었다. 오히려 "투수들의 구속과 회전수 집착이 부작용을 낳았다"고 반론했다. 실제로 이는 피치 클락보다 더 축적된 산물이다.

투수들이 던진 공을 추적하기 시작한 건 2008년이다. 2008년 리그 평균 포심 구속은 91.9마일이었다. 이후 구속은 15년간 한 번도 후퇴한 적이 없다. 점진적으로 계속 빨라졌다. 2015년 93마일을 뚫더니 작년에는 94.2마일까지 상승했다. 인간의 한계라고 불린 100마일 공도 2008년 전체 214구였지만, 작년에는 무려 3,880구를 던졌다.

다른 구종들도 발맞춰 진화했다. 2019년 제이콥 디그롬은 슬라이더 평균 구속이 92.5마일이었다. 웬만한 투수들의 포심 구속과 비슷했다. 2021년 샌디 알칸타라는 체인지업 평균 구속이 91.8마일이었다. '느림의 미학'으로 여겨지는 체인지업조차 '빠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면서도, 속도가 주는 짜릿함에 열광했다. 참고로, 디그롬과 알칸타라는 결국 몸이 견디지 못했다. 지난해 나란히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구속 혁명이 일어난 메이저리그는 그 사이 회전수도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빠른 공과 브레이킹 볼의 회전수가 많으면 헛스윙을 더 유도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자 회전수가 유리한 하이 패스트볼과 브레이킹 볼 조합이 유행처럼 번졌다. 일부 구단은 회전수가 타고난 투수들을 수집해 브레이킹 볼을 집중적으로 던질 것을 주문했다.

브레이킹 볼 리그 평균 회전수

2015 - 2,193회
2023 - 2,460회


하지만 투수들의 공이 강해질수록, 투수들의 몸은 약해졌다. 이미 여러 학술 논문에서는 메이저리그에 뿌리 내린 '구속의 시대'를 경고해왔다. 공을 100개 던지는 것보다 100마일 공이 위험하다고 우려할 정도였다. 텍사스 팀 닥터이자, 팔꿈치 수술 권위자인 키스 마이스터 박사는 "투수 부상과 관련해 구속은 적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2019-23 포심 구속 상위 21인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2021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도합 팔꿈치 수술을 받은 투수는 260명이 넘는다. 10년 전에 비해 400% 이상 폭증했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포심 평균 구속이 96.5마일을 넘은 선발 투수는 21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18명이 치명적인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하거나, 혹은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CBS스포츠>는 투수들의 연쇄 부상은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21년 6월에 시행된 '투수들의 이물질 단속 강화'도 빼놓지 않았다. 사무국은 "투수들이 사용하는 이물질에 대해 보다 철저히 통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로 인해 투수들은 이닝이 끝날 때마다 손바닥과 글러브, 허리띠 등을 심판에게 검사받았다.

당연히 반발이 거셌다. 일일이 결백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처럼 예민한 일을 시즌 중반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처리하는 졸속 행정도 비난했다. 타일러 글래스나우를 비롯해 대다수 투수들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CBS스포츠>는 이 여파가 지금부터 나타날 수 있다고 추론했다. 당시 이물질 사용은 엄연히 위반이지만, 투수들이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은 건 불합리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이 이슈가 거론될 때마다 또 다른 의문으로 귀결된다. 바로 메이저리그 공인구다.

메이저리그 공인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메이저리그 공인구는 실밥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KBO리그 공인구에 비하면 폭은 넓고 높이는 낮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미끄럽게 느껴진다. 이 특성이 투수에게 부담을 준다는 의견이 있다. 최근 공을 더 강하게 던지는 추세에서 공인구가 미치는 영향은 고려해야 할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국은 이전부터 제기된 공인구 교체에 관해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저스틴 벌랜더는 현역 최다 이닝을 소화한 투수다. 18시즌 동안 3325.1이닝을 책임졌다. 2위 맥스 슈어저(2834.2이닝)와 약 500이닝 정도 차이가 나는 부동의 1위다. 40세였던 지난 시즌에도 규정이닝을 넘긴 벌랜더는 '금강벌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벌랜더는 현재 이 문제를 미래지향적으로 바라봤다. 메이저리그에 강속구 투수들이 주목받으면서 유소년 선수들도 그저 공을 빠르게만 던지려 한다고 걱정했다. 벌랜더는 자기 몸에 맞는 피칭 스타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체격적으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있는 반면, 그 방식이 적합하지 않은 투수들도 있다는 의미였다.

저스틴 벌랜더 (휴스턴 SNS)

벌랜더의 지적은 되새겨볼 만하다. 어느 순간부터 투수의 가치가 너무 구위에 치중됐다. 구위는 분명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만, 투수 평가의 전부가 되어선 곤란하다. 그런데 뛰어난 투수 유망주는 구위가 좋은 투수로 굳어지면서 많은 아마추어 투수들이 구위만 앞세우고 있다.

이 현상은 심각한 후유증도 불러왔다. 일찌감치 토미존 수술을 받는 투수들이 증가한 것이다. 토미존 수술 성공률이 높아지면서 거부감도 낮아졌다. 그 결과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는 투수들의 34.2%가 이전에 토미존 수술을 받은 투수들이었다(Jon Roegele). 2019년 29.8%였던 이 수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토미존 수술은 완벽한 치유로 보기 힘들다. 교체된 인대는 다시 파열될 수 있다. 공교롭게도 메이저리그는 두 번째 토미존 수술을 받는 투수들이 자주 보인다. 전직 구단 트레이너 스탄 콘테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첫 번째 토미존 수술은 성공률이 85∼90%지만, 두 번째는 50∼55%로 확 떨어진다"고 주의했다. 즉, 수술 자체를 대단히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한편, 투수들이 구위에 함몰된 건 리그의 질적 하락도 초래했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가 투수(Pitcher)의 하위개념인 "스로워(Thrower)가 득실거린다"고 일갈했다.

투수가 갖춰야 할 다른 덕목들을 놓치면서 정작 진짜 투수들은 찾기 힘들어졌다. 특히 리그를 지배하는 대형 투수 유망주는 수년째 종적을 감췄다. 덕분에 메이저리그에서 공 하나 던지지 않은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투수 역대 최대 규모 계약을 세울 수 있었다. 물론 야마모토는 그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는 투수지만, 그만큼 메이저리그에 젊은 투수가 없는 현실이 반영된 계약이다. 결코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가뜩이나 젊은 투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에이스들의 부상 이탈은 매우 치명적이다.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 어쩌면 예견된 참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큰 참사를 예고하는 경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