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옥아~자옥아” 떠나간 아내 향한 남편의 헌정곡
故 김자옥 배우 10주기
노래로 부르는 그 이름
자옥(慈玉)이라는 이름의 한국 여성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배우 김자옥(1951~2014)일 것이다. 전국을 들썩인 트로트 곡 ‘자옥아’를 그래서 김자옥과 관련된 노래로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수 박상철이 2001년 발표한 히트송, 지금도 툭하면 ‘전국노래자랑’ 참가곡으로 울려 퍼지는 ‘자옥아’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곁을 떠나간 그 사람 이름은 자옥, 자옥, 자옥이었어요. 그 사람 어깨에 날개가 있어 멀리 멀리 날아갔어요….” 김자옥과는 무관한 노래, 그러나 목청 야무지게 꺾어가며 “자하~ 오호~ 가하”에 가까운 발음으로 자옥을 연호하는 그 노래.
김자옥의 남편, 가수 오승근(73)씨가 다시 부른다. “장난스레 부르는 사람도 많지만 가만 들어보면 참 슬픈 노래”라고 오씨는 말했다. 지난봄, 장남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노랫말이 요새 다르게 들리더라, 아버지 목소리로 불러 보시는 게 어떻겠느냐.” 올해는 아내가 암 투병 도중 세상을 떠난 지 꼭 10년 되는 해. “방송국에서 박상철씨가 ‘선생님 이번에 제가, 사모님, 아니, 형수님 이름을 노래로 부르게 됐습니다’ 꾸벅 90도 인사하고 그랬어요. ‘많이 불러라’ 덕담해 줬죠. 애 엄마도 재밌다면서 방송에서 몇 번 불렀고요.” 생각해 보니 아내와 전혀 무관한 노래는 아니었다.
◇다시 부른 ‘자옥아’
원작자에게 허락을 구해 리메이크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장르부터 바꿨다. 트로트에서 포크송 분위기로. “저도 초창기에 통기타 메고 노래했으니까요. ‘자옥아’라는 노래의 기존 이미지에도 변화를 주고 싶었고요.” 지난 10일 서울 녹번동의 한 녹음실에서 오씨는 부지런히 목을 풀었다. 음반 녹음 날이었다.
–불러보니 어떠세요?
“연습 몇 번 해봤는데 자꾸 트로트가 나오데요. 자꾸 ‘꺾기’가 나와요. 이미 귀에 노래가 익어버린 거죠. 편곡을 완전히 새로 했어요. 인기를 끌겠다는 마음보다는 ‘자옥아’에 새로운 의미를 남기고 싶어요.”
–어떤 의미요?
“지방 공연 가면 자옥이라는 이름 지닌 분들이 꽤 많았어요. ‘저도 자옥이에요’ 하면서 악수 청하시고요. 이제 나만의 ‘자옥아’를 불러보려고 해요.”
–어느새 10년이네요.
“시간이 벌써….”
녹음실에 들어선 오씨는 곧 감상에 잠겼다. 반주가 나오기 전 “자옥아”를 몇 번 읊조렸다. 그리움에 어울리는 박자로 옷을 바꿔 입자 원곡보다 우수가 짙어졌다. “짜라짜라짜라짜” 같은 코러스는 다 제거했다. 달라진 ‘자옥아’는 다음 달 16일, 김자옥 10주기에 맞춰 발매될 예정이다.
◇‘있을 때 잘해’
1970년 하이틴 스타로 출발해 특유의 환한 미소로 안방극장을 주름잡은 김자옥, 역시 1968년 듀오 투에이스로 데뷔해 스타덤에 오른 오승근. 헤어 디자이너 유지승의 소개로 친해졌고 김자옥이 먼저 청혼했다. 만난 지 3개월 만인 1985년 3월 결혼했다. 둘 다 재혼이었다.
–잉꼬 부부로 유명하셨죠.
“애 엄마 병간호를 8년 했어요. 먼저 암으로 떠나보낸 아버지랑 형도 제가 했고…. 일하느라 옆에 딱 붙어 있지 못한 게 미안해요. 사랑한다는 말을 거의 못 했어요. 입 밖으로 꺼내려면 쑥스러워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나중에야 사무친다. 오씨는 결혼과 동시에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건축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했다. 여행사로 업종을 변경했으나 외환 위기 당시 70억원 가까운 재산을 날렸다. 신용 불량자가 됐다. 김자옥은 묵묵한 지원군이었다. 당시 ‘공주는 외로워’로 가수 활동을 겸하던 아내가 넌지시 권했다. 다시 노래해 보라고. 그렇게 2001년 오씨는 트로트 곡 ‘있을 때 잘해’로 무대에 올랐다.
–17년 만의 복귀였죠.
“애 엄마가 소속사에 슬쩍 얘기를 했나봐요. 태진아씨가 자기한테 온 곡을 저한테 준 거예요. ‘너무 가벼워서 싫다’고 거절했어요. 자꾸 설득하기에 ‘그럼 녹음이나 한번 해보자’ 했죠.”
–대박이 났습니다.
“주변에서 미쳤다고 했어요. 돈 때문에 저런 노래 한다고. ‘이젠 나도 미쳤구나’ 싶기는 했어요. 근데 이 노래 덕에 이듬해 이혼율이 많이 줄었다고 해요.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내 나이가 어때서’
50대 후반, 환갑을 준비하는 의미로 부부 동반 건강검진을 받았다. 오승근의 대장에서 선종(腺腫)이 발견됐다. 떼어내면 그만이었다. 아내는 심각했다. 의사가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대장암 3기였다. 곧장 수술받았다. 3년 뒤 폐에서도 암이 발견됐다. 전이된 것이다. 지난한 투병 생활이 이어졌다.
–이듬해 신곡을 내셨죠.
“병원 가는 길이었어요. 차 안에서 애 엄마가 ‘이거 뭐야?’ 하더라고요. 데모 테이프였죠. 마음에 안 들어서 대충 부르고 잊어버린 거. 그런데 듣더니 혼자 따라 부르는 거예요. 이거 좋다고.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다고. 꼭 하라고.”
그 노래가 바로 ‘내 나이가 어때서’였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로 시작되는 메가 히트곡. “정작 처음에는 반발심이 컸다”고 말했다. “나 아직 젊고 쌩쌩한데 왜 이런 걸 부르라는 거야?” 아내가 나긋나긋 설득했다. “이 노래 쉽잖아. 자꾸 어려운 거 하려고 하지 말아요.” 환갑이 지나 오승근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결정적 조언을 자주 해주셨네요.
“확실히 감각이 있어요. 아내가 아니었어도 다시 가수로 돌아오긴 했을 거예요. 근데 성공했을지는 미지수예요.”
◇‘당신꽃’
남편은 아내의 추모관을 짓기 위해 4년 전 홀로 청주로 내려갔다. “화장대부터 메모지까지 물건 하나도 안 버렸어요. 자꾸 아른거려 안 되겠더라고요. 청주에 좋은 야산이 있길래 건물 하나 지으려 했는데, 잘 안 됐어요. 제가 그 정도까지 돈을 못 벌어서.” 다만 노래할 수는 있다. 지난여름 ‘당신꽃 2024′를 발매했다. 5년 전 낸 동명의 곡을 재단장한 것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노래, 아내 생각에 복받쳐 제대로 라이브를 선보인 적 없는 노래. “꽃처럼 웃는 당신의 얼굴~ 시간이 좀처럼 가질 않아~ 그리움을 잊으려 난 노래하네….”
–요즘도 자주 떠올리세요?
“10년 되니 조금은 희미해지고, 꿈에도 잘 안 나오네요. 10년 동안 두세번 봤나? 정면도 아니고 옆이나 뒤에서. 망자는 얼굴을 안 보여주나 봐요.”
–결혼반지를 계속 끼시네요.
“아, 이건 다른 거예요. 금가락지는 몇 년 전에 잃어버렸어요. 손 씻고 화장실에 놓고 와서….”
–부부의 의미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강요할 수 없지요. 다 자기 뜻대로 사는 거예요. 다만 있을 때 잘해주세요.”
칠순을 넘긴 남편은 애정을 과시하지도, 과거를 애써 보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옥아’를 열창할 뿐이었다. “내가 정말 사랑한 자옥아~ 내 어깨 위에 날개가 없어 널 찾아 못 간다~ 내 자옥아~ 자옥아.” 조만간 소극장 공연을 시작할 계획이다. 노래로 추억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승에서 여전히 당신을 생각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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