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타구의 공장은 공장이 아닌 마을이었다 [視리즈]

최아름 기자 2023. 11. 16. 11:2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제조업 視리즈 8편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80년대 이전 압력 받은 마을공장
하지만 많은 공장 마을 떠나지 않아
마을공장 어떻게 마을에 남았나
도심 속 공장 외면하는 우리의 현실

도쿄 오타구는 준공업지역이다. 영등포구 문래동과 마찬가지다. 1980년대 오타구도 마을공장을 바닷가로 이전시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몇몇 마을공장은 그 자리에 남았다. 정책에 반기를 들었지만 오타구 마을공장은 그곳 사람들과 공존하면서 '아름다운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더스쿠프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오타구 르포 두번째 편이다.

오타구 골목에는 주택과 공생하고 있는 마을공장들이 숱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일본 도쿄의 하네다 공항에서 10분이면 도쿄 오타구大田에 있는 게이큐본선 가마타역 앞에 닿는다. 이 역 앞에 있는 오타산업프라자(Ota City Industrial·PiO)는 일본 제조업의 중심이었던 도쿄 오타구의 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1996년 만들어졌다. 이 건물의 1층에는 넓은 행사장이 있다. 이곳에서 오타산업진흥협회는 마을공장(마치코바ㆍ町工場)을 키우기 위한 박람회나 행사를 연다.

오타구 산업 부흥을 위한 이 건물을 출발점 삼아 서쪽으로 가다 보면 일본 도쿄만으로 이어지는 노미천(呑川)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먼저 지도를 확인했다. 일본의 토지 용도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영등포구 문래동처럼 노미천 일대는 보라색으로 표시된 '준공업지역'이었다. 도시 한복판이라도 기준치 이하의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공장이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노미천을 따라 끝까지 걸으면 간척지 위에 만들어진 하네다 공항을 지나 도쿄만과 바다까지 갈 수 있다. 1980년대 오타구 역시 도심 속 마을공장을 여기 어디쯤에 인공섬을 만들어 옮길 계획을 세웠다. 도심 복판에 공장을 놔두기보단 한곳에 몰아넣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일부 마을 공장은 계획대로 움직였지만 이주정책이 완전히 성공한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공장은 마을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둥지를 잃을 처지에 내몰린 문래동의 작은 공장이 오버랩됐다.

다만, 오타구와 문래동 작은 공장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같은 준공업지역이지만 문래동 작은 공장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하나의 '집적지'를 이루고 있다. 오타구는 그 점에서 달랐다. 그곳의 공장들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다. 그래서 오타구는 주택만을 위한 공간도, 공장만을 위한 공간도 아니었다.

다시 지도를 펼쳤다. 오타구가 마을공장을 이주시키려던 바닷가 인근은 군청색으로 짙게 칠해진 지역이 있었다. '산업전용지역'으로 주택 대신 공장 등만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 생각을 하면서 골목길의 마을공장을 다시 살폈다.

'산업전용지역'에 있는 공장과 달리 골목길의 마을공장 건물 위에는 공장이 아닌 다른 층이 쌓여 있었다. 사무실로 쓰는 경우도 있지만 주거용인 경우는 더 많았다. 공장과 주택이 한 몸인 셈이었다.

주택 가까이 공장이 있다는 건 광고판으로도 알 수 있었다. 노미천 근처를 걸으며 만나는 전봇대에는 주로 치과나 정형외과 등 병원 광고가 있었지만 다른 광고도 있었다. 나사(ねじ)를 만들고 파는 공장이 있다는 것도 같은 광고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타구에는 여전히 수많은 마을 공장이 둥지를 틀고 있다. 사진은 오타구 준공업지대의 공장.[사진=더스쿠프 포토]

어느덧 해가 머리 위에 올라와 있었다. 기자는 산교도로産業道路에 서있었다. 오타산업플라자에서부터 서쪽으로 도보 30분 거리에 있다. 사전 취재 때 이 도로를 넘어서면 좀 더 밀집한 '마을공장'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인지했다.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언뜻 봐도 크기가 2배 이상인 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첫번째로 만난 공장은 시나가와기계제작소品川測器製作所였다. 2022년 오타구와 오타산업진흥협회가 선정하는 '유코죠(優工場)'에서 종합 부문 우승을 차지한 곳이다. 이를 자랑이라도 하듯, 시나가와기계제작소의 대문 앞엔 '우공장'이라고 쓰인 황금색 명패가 걸려 있었다.

우수공장제도는 오타산업진흥협회가 1995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표창사업이다. 2022년에는 10개사를 선정했고 그중 7개사는 다시 꼽혔다. 부문은 사람ㆍ환경ㆍ기술 등 크게 3가지다. 기술력이 좋은 공장만 선발하는 게 아니란 거다. 특히 흥미로운 건 환경 부문 수상 기준이다. 지역 사회에 얼마나 공헌했는지, 지역 환경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판단해 수상 기준으로 삼는다.

2022년 환경 부문에서 수상한 공장의 주요 생산 제품은 '합성수지'다. 이 공장은 코로나19가 전이되기 시작하자 자신들의 합성수지 제작 능력을 활용해 '페이스 실드(비말 확산을 막기 위한 플라스틱 마스크)'를 제작한 후 마을에 배포했다. 오타구와 오타산업진흥협회는 이런 점을 높게 평가해 해당 공장을 환경 부문에서 표창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이 표창이 '명예'만 주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타산업진흥회는 표창을 받은 공장을 위해 팸플릿과 영상자료를 제작해 준다. 표창을 드러낼 수 있는 금빛 명패도 제공한다. 경제적 혜택도 있다. 정책 대출을 신청할 때 준비해야 하는 서류를 면제해주는 건 대표적이다.

공공에 헌신해서 표창을 받은 만큼 공공의 자금을 이용할 땐 그 문턱을 낮춰준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공장은 '따로 노는 부품' 같지 않았다. 공장은 마을을 위해 헌신하고, 마을은 그런 공장을 위해 혜택을 줬다. '도심 속 흉물' 취급을 받는 문래동 작은 공장에선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명패를 촬영하기 위해 양해를 구하고 공장 가까이 다가갔다. 공장 안에서는 20대 직원부터 80대 직원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직원들이 점심시간 이후 돌아와 있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문래동과 다르게 이 공장의 노동자들은 연령대가 비교적 고르게 퍼져 있었다.

그중엔 젊은 여성 노동자도 제법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건 아니었다. 여기에도 정책적 노력이 있었다. 청년층이 제조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늘리려는 시도였다.

오타구는 제조업에 새로운 인력을 유입시키기 위해 지역 내 대학과 연계해 왔다.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들도 직업고등학교에 다닌다면 마을공장 안에서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청년들이 제조업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늘려온 셈이다.

도심형 제조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드물어 사업을 이어갈 사람조차 찾기 어려운 문래동의 모습이 겹쳤다. 문래동 작은 공장도 도심 속에 살아남을 순 없는 걸까. 바닷가로 끝내 가지 않고 마을 속에서 역할을 찾은 오타구 마을공장처럼 말이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