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십 년을 한 이불 덮고 살아온 부부라 할지라도 노년에 접어들며 급격히 대화가 줄어들고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는 현상은 많은 이들의 현실적인 고민이다.
젊은 시절에는 자녀 양육과 생계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 서로의 다름을 덮어두고 달렸으나, 막상 둘만 남겨진 거실에서 마주하는 침묵은 낯설고도 차갑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평생을 함께했기에 당연히 서로를 잘 안다고 믿었던 오만함이 오히려 서로를 가장 모르는 타인으로 만드는 비극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자식들이 모두 품을 떠난 뒤 부부는 비로소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지만, 오랫동안 자녀 중심으로만 돌아가던 집안에서 대화의 소재를 찾지 못해 당황하게 된다.
아이들 학업이나 진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던 열정은 사라지고, 오직 서로의 일상적인 습관만 눈에 들어오면서 사소한 차이가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든다.
함께 바라볼 지향점이 사라진 빈자리에 서로에 대한 비판과 서운함이 채워지기 시작하면 부부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냉랭해진다.

직장 생활을 끝내고 동시에 하루 종일 집 안에서 부딪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내는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당한다는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남편은 갈 곳 없는 소외감을 느낀다.
삼시 세끼를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이나 사사건건 집안일에 간섭하는 배우자의 태도는 수십 년간 쌓아온 상대의 생활 방식을 무시하는 행위로 비치기 쉽다.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좁은 공간에서 서로를 구속하려 할 때 애정은 짜증과 외면으로 변질되고 만다.

젊은 시절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자식을 위해 참아왔던 과거의 상처들이 노년에 여유가 생기면서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올라 서로를 할퀴게 된다.
그때 당신이 그랬지라는 식의 해묵은 감정 풀이는 상대방에게는 피곤한 앙갚음으로 들릴 뿐이며, 진심 어린 사과가 없는 대화는 오히려 불신만 키우게 된다.
과거의 앙금을 털어내지 못한 채 한 지붕 아래 사는 것은 서로에게 정서적 감옥이 되어 결국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쪽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시작되는 간병 생활은 부부 관계의 낭만을 앗아가고 오로지 인내와 희생만을 강요하는 고된 노동의 현장으로 변하게 된다.
아픈 배우자를 돌보며 느끼는 체력적 한계와 앞날에 대한 불안감은 고마움보다는 원망의 감정을 앞서게 만들어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을 내뱉게 한다.
건강할 때 함께 즐기지 못한 시간에 대한 후회와 현재의 고통이 뒤섞이면서 서로를 의지하는 동반자가 아닌 힘겨운 짐으로 인식하게 되는 슬픈 현실을 맞이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했으니 내 마음을 알아서 읽어줄 것이라는 기대와 상대를 내 방식대로 바꾸려는 고집이 대화를 단절시키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당신이 그렇지 뭐라는 식의 비아냥이나 명령조의 말투는 상대방의 자존감을 무참히 짓밟아 마음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배우자를 나와 다른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로 존중을 표현하지 않으면, 평생의 인연은 가장 슬픈 이별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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