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 온(Run on)
계속된다는 의미의 ‘런 온’은 무수한 뜀박질을 멈추지 않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더 큰 무대를 향해 땀을 흘리고, 시합을 치르고, 대회를 마쳐 놓곤 다음을 준비하려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렇게 고개를 들어 볼 새도 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한 해가 저무는 것이다. 언젠가 프로 리그에 진출하게 된다면 일주일에 6일간 경기를 치르는 가혹한 일정을 견뎌야 할 텐데, 그럼에도 그것을 위해 오직 앞만 보고 ‘런 온’하는 이들의 노력은 순수하고도 숭고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지금은 고교야구의 그라운드 위에 선 두 사람이지만, 언젠가 이들이 마주 보는 곳이 각자가 꿈꾸던 큰 무대이기를 바란다. 부상 없이 시즌을 완주하고 자신의 이름을 증명하려는 야탑고 배터리, 이원영과 최민영을 만났다.
Photographer Seul Lee Editor Jiin Lee Location Tancheon Baseball Stadium

이원영
출생 2008년 2월 26일
신체조건 186cm 86kg
출신교 서울 고명초 - 서울 배명중 – 배명고 - 야탑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최민영
출생 2008년 2월 20일
신체조건 184cm 90kg
출신교 경기 신일중 - 야탑고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더블 인터뷰인 만큼 서로 소개해 볼까요? (4월 27일 인터뷰)
이원영(이하 원영) 안녕하세요. 야탑고 투수 이원영입니다. 민영이는 배터리로 호흡을 맞추면서 제 정신적 지주가 돼 주는 친구예요. 제가 흔들릴 때나 위기 상황에 있을 때 멘탈을 잡아 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최민영(이하 민영) 저는 야탑고 포수 최민영입니다! 원영이는 팀의 에이스이자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예요. 제가 막힐 땐 원영이 스스로 자신 있는 공을 던져 주는 식으로 같이 좋은 결과를 내고 있어요.
1회고사가 막 끝났다고 들었어요. 훈련과 학교생활을 동시에 하려면 쉽지 않겠어요.
민영 코치님들께서 훈련 중간중간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세요. 저희도 개인적으로 관리하려고 노력하고요.
원영 보통 3교시까지만 수업을 듣고 조퇴를 해서 수업 참여도가 낮기도 해요. 저는 특히 잠을 잘 자려고 신경 쓰는 편이에요.
야탑고등학교 자랑을 한번 해 볼까요?
민영 높은 곳에 위치한 덕분에 언덕이 매력적이에요. 그리고 경기도에선 야구를 잘하는 팀입니다!
원영 야구부 팀워크가 워낙 좋아요. 경기할 때 서로를 잘 도와주면서 하나가 되는 팀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배터리인 두 사람이 이름까지 비슷해요. 둘을 묶어서 부르는 별명이 있어요?
원영 학년 구분 없이 저희를 ‘영이 행님’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저는 ‘투수조 영이 형님’이고, 민영이는 ‘야수조 영이 형님’인 거죠. 저는 종종 ‘장원영’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하는데 이젠 익숙해요.


#언더독의 찬란
‘2026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고교야구대회(이하 이마트배)’에서 각각 우수포수상과 감투상을 받았어요.
민영 포수 중 한 명만 받는 상인 걸로 알고 있는데 당사자가 돼 영광이에요. 받을 거라 예상하지 못해서 더 기쁘더라고요.
원영 저는 그냥 결승전에 운 좋게 길게 던져서 받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조)연후랑 (박)시후가 그간 잘해 준 덕분에 성적이 잘 나온 건데, 제가 결과를 빼앗은 것 같아서 미안하더라고요.
그래도 이원영은 이번 시즌 주말리그 전반기 평균자책점이 1.96으로 매우 낮던걸요.
원영 수비들이 잘 막아 준 덕이죠. 세세하게 경기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타도 계속 맞았는데 실점이 없도록 야수들이 잘 잡아 주더라고요. 그래서 팀워크가 좋다고 느끼나 봐요.
이마트배 결승전에서는 6이닝을 소화했죠. 상대한 덕수고에서 유독 까다로운 타자가 있던가요?
원영 1학년 포수인 윤정찬이라는 친구요. 제 초등학교 후배인데 예상한 것보다 커트를 잘해서 던질 게 없더라고요. 아마 잘 파악하지 못한 채로 승부를 맞이한 탓이겠죠.
같은 날 최민영은 실점 후 곧바로 따라붙는 적시타를 때려 냈어요.
민영 1회에 만루 홈런을 맞고 4실점을 한 다음에 바로 저한테 기회가 오더라고요. 따라가려면 득점이 무조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자를 불러들일 수 있도록 신경 썼어요. 초구부터 자신 있게 돌리려고 했던 게 주효했고요. (OPS도 꽤나 높더라고요.) 타격감이 별로일 때도 최대한 생각 없이 자신 있게 치려고 해요. 올해는 사사구도 얻고, 정타가 아닌 안타들이 나와 준 덕에 출루도 늘릴 수 있었어요.
어깨도 좋아서 이마트배 대회 내내 도루저지에 여러 번 성공했죠. 영상을 인스타그램 하이라이트에 추가해 뒀던데 얼마나 돌려 봤어요?
민영 이번 대회 때 한 도루 저지 영상들만 백 번은 본 것 같아요. 자신감도 생기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민망하지만 하이라이트에는 직접 녹화해서 올려 놓은 거예요.

배터리끼리 볼 배합을 어떻게 조율해 나가는지 궁금해요.
원영 민영이가 매번 오늘은 어떻게 할 건지 미리 말해 주면 그대로 경기에 들어가는 식이에요. 포수에게 거의 다 맡기는 거죠.
민영 경기 전에 항상 사인을 다시 확실하게 체크한 다음에 들어가려는 거죠. 원영이가 절 믿고 잘 던져 줘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봐요.
야탑고가 이마트배로 9년 만에 전국대회 결승에 진출했어요. 다른 대회와 느낌이 다르던가요?
민영 예선부터 준결승, 결승까지 점점 올라갈수록 긴장을 안 했어요. 저희는 언더독이라 ‘이제 잃을 게 없다’라는 마인드로 자신 있게 시합에 임했거든요.
원영 오히려 더 좋은 야구장에서 시합할 수 있다는 게 신나서 즐겼던 게 커요. 이런 부분이 결과에도 도움이 됐을 거라 믿어요.
당시 기용 가능한 2, 3학년 투수가 박시후와 조연후까지 셋뿐이었는데 불안하진 않았어요?
원영 불안했던 게, 아무래도 연후가 앞선 시합에서 내내 투구 수가 많았거든요. 그래도 선발로 나서게 됐으니 다들 3~4이닝만 막아 주길 바랐는데 역시 어려웠던 점이 아쉬워요. 하지만 감독님께서 투수 코치를 오래 하셨던 분이셔서 저희 셋의 컨디션을 잘 조절해 주신 덕에 결승까지 올라갈 수 있던 거예요. 정말 감사했죠.
결승전엔 ABS 오류로 경기 개시가 늦춰졌잖아요.
민영 연후가 선발로 나가려고 이미 몸을 다 풀었는데 ABS에 오류가 생기면서 20분 정도 경기가 미뤄졌어요. 그 영향으로 선발 투수가 본인 템포를 조절하기 힘들었던 게 포수로서 걱정도 됐고, 함께 마음을 썼죠.
최민영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포수로 나서고 있어요. 첫 경기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나요?
민영 처음에는 포수로 경기를 나간 적이 거의 없다 보니 긴장도 되고 우왕좌왕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제가 투수나 다른 야수를 이끌어야 하는데 혼자 긴장해서 저 하나 챙기기에 바빴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계속 출전하다 보니 여유도 생기고 자신감이 올라왔어요.
각자 포지션을 선택한 계기도 궁금해요.
민영 어릴 때부터 어깨도 강하고 덩치도 큰 편이어서 초등학교 때 감독님께서 포수를 해 보자고 하셨어요. 전 도루하는 주자를 없애면서 아웃 카운트를 올릴 때 가장 희열을 느끼거든요. 그리고 블로킹을 한다든가 홈에서 점수를 직접 막는 포지션이라는 게 매력적이라고 느껴요.
원영 고명초등학교에서 방학 때 야구 캠프를 열거든요. 거기에 갔다가 감독님께서 진지하게 야구를 해 보는 게 어떠냐고 하셔서 처음 시작하게 됐는데요. 중학교에 진학했더니 스태프분들께서 투수를 하는 쪽이 더 전망 있어 보인다고 하셔서 쭉 밀고 오게 됐어요.
스스로 어떤 장점이 가장 두드러지는 선수인지 어필해 볼까요?
민영 말씀드렸듯이 어깨가 강한 편이라서 주자가 나가 있어도 언제나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원영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건 당연하고 그 외의 운동 능력이 뛰어난 선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달리기나 힘에서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나 혼자 산다
이원영은 작년 7월 야탑고로 전학을 왔죠. 서로 첫인상은 어땠고, 현재는 어떤가요?
민영 원영이가 학교에 테스트를 보러 왔을 때 서로 처음 봤는데요. 보자마자 ‘잘생겼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땐 머리도 길었거든요. 지금은 머리를 밀었지만, 야구도 잘하고 여전히 잘생긴 친구예요!
원영 무표정인 민영이로 처음 만난 거라 무서웠어요. 사실 형인 줄 알았는데 전학을 와 보니 친구인 거예요.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다가와 준, 알고 보면 제일 착한 친구입니다.
최민영은 고양시의 신일중을 나왔고, 이원영은 서울 출신인데 통학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민영 1학년 때까진 기숙사가 있었는데 시즌을 마치면서 없어졌어요. 그 이후론 쭉 자취 생활 중이에요. 처음엔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생겨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적응해서 괜찮아요.
원영 전학 오면서부턴 저도 자취 생활 중이에요. 혼자 사니까 너무 편하고 좋아요.
집에서는 주로 뭘 해요?
민영 프로야구 경기 하이라이트를 봐요. 어릴 때부터 LG 트윈스 팬이었던 터라 중계 영상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타자들이 치는 모습을 보면서 공부하기도 해요.
원영 거의 잠만 자서 하는 게 없어요. 정말 가~끔 축구를 보긴 하는데 그마저도 유럽 리그 하이라이트 정도예요. 야구도 보긴 하는데 전 응원하는 팀이 없어요.
둘 다 등번호가 잘 어울려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민영 중학교 때부터 작년까진 쭉 22번을 달았는데 내내 잔부상을 달고 지냈어요. 3학년이 되면서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썼던 42번으로 바꿨고, 지금까진 건강하게 시즌을 잘 치르고 있습니다.
원영 초등학교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번을 썼었는데, 사실 에이스의 번호라 좋아했거든요. 전학을 와 보니 1번이 비어 있어서 쓰게 됐어요. 아마 감독님이 챙겨 주신 게 아닐까 해요.
프로가 된다면 등장곡으로 어떤 노래를 할지 고민해 본 적 있나요?
민영 어떤 곡을 딱 하나 선택할 순 없지만, 제가 응원하는 팀의 주전 포수이신 박동원 선수님처럼 임팩트 있는 노래를 찾아보고 싶어요.
원영 MBTI가 ISFJ여서 상상이 잘 안 되는데, 그래도 웅장하면 좋겠어요. 과거에 센가 고다이(뉴욕 메츠) 선수 팬이긴 했는데 등장곡까지는 모르겠네요.
스트레스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 자신만의 힐링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민영 다른 것보다 그냥 아무 할 일이 없는 상태일 때 힐링된다고 느껴요. 쉬는 시간이 여유롭고 충분히 있으면 자동으로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원영 전 혼자 나와 살게 된 지 아직 1년이 채 안 돼서 학교와 생활에 적응하는 데 시간을 다 보냈어요. 요즘 힐링이 필요하단 걸 자각해서 방법을 찾아보려는 중이에요.

#완주 후애(後愛)
야탑고 출신인 LG 송승기, 우강훈은 로커룸에서 이마트배 결승을 지켜봤대요. 롯데 자이언츠 윤동희도 격려를 남겼고요. 선배들에게 답신을 보내 볼까요?
민영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결승 경기 재미있게 챙겨 봐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성적을 내서 야탑고의 역사를 이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원영 선배님들의 투구 영상이나 경기하시는 모습을 잘 챙겨 보면서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프로 선수가 돼서 또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어느새 이번 시즌도 절반가량 남았어요. 남은 기간 내고 싶은 결과나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민영 부상 없이 시즌을 마무리하는 게 첫 번째 목표고요. 제가 보여 드릴 수 있는 야구 선수로서의 모습들을 후회 없이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원영 저 역시도 부상 없이 완주하는 건 마찬가지고요. 돌아올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구속 150km/h를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1년 후 이 시점엔 무엇을 하고 있을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볼까요?
민영 프로선수가 돼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겠습니다. 올해 신인 선수들이 활약을 펼치고 있는데 저도 선배님들처럼 데뷔하는 해에도 잘하는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원영 내년 이 시기엔 혹사당하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행복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분들께 인사를 남기며 마무리할게요!
원영 아직 부족한 저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로에 가서 다시 출연할 수 있게 앞으로 잘 준비하고, 더 잘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민영 저랑 원영이를 찾아봐 주시고 인터뷰도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시즌도 건강하게 좋은 성적을 내면서 잘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끝까지 달린 뒤에도 남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기록지에 적힌 숫자보다 조금 더 오래갈지도 모른다. 언뜻 조용하고 차분해 보이는 둘이었지만, 그 모습 뒤에는 다음 대회를 향한 선명한 목표, 그리고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 주고자 하는 자기 모습을 단단하게 품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지나간 풍경에 안주하지 않았다. 오늘의 결과에 머물기보다 내일의 성장을 먼저 고민하는 태도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직 이어질 거란 기대를 키우기에 충분했다. 이 배터리가 다시 어떤 표정으로 마주 보고, 어떤 공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받쳐 줄지 궁금해지는 이유였다.
‘벌써’, ‘어느새’라는 수식어가 익숙해지는 때가 돌아온다 해도, 함께 버틴 시간과 서로를 향한 믿음은 고작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완주 뒤에 남는 마음은, 결국 이 레이스가 끝이 아니라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드는 마음이니까.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6년 182호 (6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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