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님의 오랜 광팬”···부국제에 신작 두 편이나 들고 온 ‘장르영화 거장’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봉 감독은 ‘한국에 있는 친구’ 같은 감각”
프랑스 파리에 사는 기자 알베르(다미엔 보나드)의 여덟 살 딸이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알베르는 일본인 의사 사요코(시바사키 코우)의 도움을 받아 복수를 시작한다. 사요코가 범인으로 지목한 아동복지재단 직원들은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지만 알베르는 이들을 납치하고 고문한다. (영화 <뱀의 길>)
평범한 청년 요시이(스다 마사키)는 인터넷 공간에서 전문 ‘리셀러’로 활동한다. 피규어부터 의료기기까지 모든 물건을 대량으로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 익명의 불특정 다수는 요시이가 파는 물건의 품질에 불만을 품고 집단적인 광기에 휩싸인다. 게임처럼 요시이를 사냥하기 시작한다. (영화 <클라우드>)
일본의 장르영화 거장으로 불리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신작 영화 두 편을 갖고 찾아왔다. 영화제가 수여하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도 받았다. 구로사와 감독은 3일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40년 넘게 영화를 만들며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베테랑’이란 말을 듣지만 아직도 영화 하나가 끝나면 ‘다음에 어떤 영화를 찍을까?’ 고민할 정도로 나의 스타일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떤 관객은 ‘정말 이상한 감독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올해로 69살이 됐습니다. 이번에 두 편의 작품을 부산영화제에서 소개하는데 모두 전형적인 장르 영화고 B급 영화입니다. 이렇게 1년에 두 편을 생각하는 감독이 있을까 싶네요.”
구로사와 감독은 장편영화 <뱀의 길> <클라우드>뿐 아니라 중편영화 <차임>까지 올해에만 3편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이른바 ‘로망 포르노’ 영화 <간다천음란전쟁>(1983)으로 데뷔해 호러 영화 <큐어>(1997) <회로>(2001) <절규>(2006)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호러, 스릴러, SF 등 다양한 장르영화의 길을 걸어왔다. 구로사와 감독은 “장르영화는 영화적인 무언가, 영화만이 표현 가능한 순간들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만이 표현 가능한 순간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눈을 두지 못하고 스크린만을 쳐다봐야 하고,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익사이팅’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사회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영화도, 인간의 깊은 마음을 파헤치는 영화도 필요해요. 하지만 저는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습니다.”
전날 개막식에선 한국의 거장 봉준호 감독이 보내는 아시아영화인상 수상 축하 영상이 공개됐다. 봉 감독은 구로사와 감독의 작품들을 열거하며 “저는 구로사와 감독님의 오랜 광팬”이라며 “좋아하는 작품이 너무 많은데, 매번 충격과 영감을 준 구로사와 감독께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구로사와 감독은 봉 감독의 축하 영상에 대해 “너무나 감격했다”라고 말했다.
“사실 봉 감독하고는 몇 번 만났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나의 친구’ 같은 감각이었죠. 그런데 봉 감독이 유명해지고 세계적 거장이 되면서 ‘손이 닿지 않는 구름 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어제 영상을 보고 ‘아, 아직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구나’ 하고 굉장히 기뻤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다양한 장르와 소재에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뱀의 길>은 야쿠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1998년작 <뱀의 길>을 여성 주인공으로 바꿔 ‘셀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클라우드>에선 일본의 스타 배우 스다 마사키를 주인공으로 액션 영화에 처음 도전했다. 구로사와 감독은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감독 일을 시작했다”며 “영화에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간다고 스스로 믿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리 열심히 찍어도 늘 제가 생각했던 것의 일부밖에 달성하지 못해요. 어디서 보더라도 부족하지 않은 영화를 찍고 싶지만 항상 어떤 부분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한 방향을 보지 못하고 언제나 360도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아요. 한 방향으로만 직진하는 것은 예전에도 지금도 상상하지 않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일본 도쿄예술대학 대학원 교수로서 신인 감독 양성에도 공을 들였다. <해피 아워>(2015) <아사코>(2018) <드라이브 마이 카>(2021)의 하마구치 류스케, <하모니움>(2016) <러브 라이프>(2022)의 후카다 고지가 구로사와의 제자 감독들이다. 이들은 일본 영화의 미래를 이끄는 ‘뉴 제너레이션’(새로운 세대)이라고 불린다.
“하마구치도 후카다도 훌륭한 감독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들에게는 두 가지 말을 하고 싶네요. 첫번째는 ‘지금 가는 길을 남보다 한 발짝 먼저 계속 갔으면 좋겠다’는 말이고, 두번째는 ‘가끔은 장르영화도 좀 찍어 보지?’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부산 |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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