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알면 참 좋은데… 나만 알기 아까워요"
“제가 다니는 ○○시장에 한 박스 들어왔더라고요. 가격도 괜찮던데 관심 있으시면 가게 알려드릴게요.” 9월26일 인터뷰를 마친 김지호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가 검정 비닐봉지에서 신문지로 꽁꽁 싸맨 물체를 꺼내 펼치며 말했다.‘잭콕’을 만들 때 들어가는 술, 잭 다니엘스 ‘올드 넘버7’. 왜 거기서 위스키가 나오나. 그보다 다소 평범한 술 아닌가. 자신의 이름을 건 뉴스레터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연재를 약 1년 간 이어온 기자가 말했다. “좀 예전 건데 43도(최근 상품은 40도)거든요. 로고랑 병 모양도 좀 다르고요. 그 전엔 45도도 나왔는데 이만하면 꽤 올드 보틀이죠. 이런 게 재밌잖아요.” 취하려고, 그 자리를 좋아해서, 대화를 위해, 때론 의무적으로 먹는 게 통상의 술이라면 그는 위스키를 탐구 대상으로 본다. ‘소맥의 나라’에선 여전히 낯선 길이다.
수천 종 위스키 중 “취향을 찾아가는 지름길”을 표방한 연재다. 그간 소개한 ‘위스키 라벨 읽는 법’, ‘음용법’, ‘보관기간’, ‘하이볼 설명’ 등 기초 상식이나 ‘상품별 특징소개 및 비교’, ‘시기별 구매추천’ 같은 길라잡이 정보는 그래도 실용적이다. 다만 일반에겐 ‘매니악’하게 다가올 이야기도 상당한데 실제 ‘벤로막 증류소 스토리’, ‘미즈나라 캐스크 특징’ 등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참 좋은데 나만 알기 아깝다는 게 있어요. 어떻게 만드는지, 왜 이런 맛이 나는지를 알면 알수록 잘 즐길 수 있는 게 위스키인데 이 매력을 남도 알았으면, 보편화됐으면 하는 거죠.” 취향의 공유나 여정 자체의 재미가 목적지 도달보다 중요한 ‘덕후’의 마음이 연재엔 깃들어 있다.
위스키 마니아로 ‘덕업 일치’ 중인 그다.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며 “자연스레 바(bar) 문화를 접했”지만 “특징을 살피고 분석하며 마신 건” 2010년대 초부터였다. 계기는 피트 위스키 ‘라프로익 10년’이었다. 일본 작가 하루키가 책으로도 쓴 위스키는 ‘팬’과 ‘안티’가 극명한 술이다. 석탄이 되다만 퇴적물 ‘피트(Peat, 이탄)’를 태운 연기로 위스키 원료인 보리를 건조하면 소독약 풍미가 남는다. “저랑 안 맞는 술인 줄 알았는데 일주일 내내 머릿속에 메아리처럼 남더라고요. ‘이런 맛은 어떻게 만들지’가 시발점 아니었나 싶어요.”
초기 “엔트리급(입문용) 위스키는 거의 다 마셔봤다.” 이후 숙성연수가 올라가며 지출도 치솟았고 “애매한 거 많이 마시느니 좋은 거 하나 먹자”가 됐다. 알코올이 아니라 맛과 향이 주는 경험에 관심이 커서 이젠 “10~15ml씩 거의 맛만 본다.” 한 달에 한 번 BYOB(Bring Your Own Bottle) 모임에서 함께 술을 맛보고 “오롯이 술 얘기만 하는 자리도 즐긴다.” “다양하게 마셔볼수록 경험치가 쌓이는데 이건 상상으로 될 게 아니잖아요. 제 취향만이 아니라 ‘술 좀 마셨다’하는 분들 평가도 들어보고요. 특히 초보들이 오셔서 생각지 못한 기초적인 질문을 던질 때 아이템을 많이 캐치하곤 해요.”
‘덕질’은 여행으로도 이어졌다. “주류 숍이 어디 있는지 먼저 파악하고, 바 위치를 확인한 후 숙소를 잡는” 계획의 여정이다. ‘위스키의 성지’인 스코틀랜드 아일라섬, ‘세계 위스키의 수도’였던 캠벨타운, 스페이사이드 지역의 증류소 열댓 곳을 그렇게 방문했다. 일본엔 주말 등을 통해 빈번히 가고, 국내외 주류 박람회나 위스키 페스티벌에도 참석해왔다. 이렇게 맛본 위스키, 찍어둔 사진, 만난 사람은 지금 콘텐츠에 쓰이며 자산이 되고 있다. 2023년 중반 회사의 뉴스레터 개편 추진 중 “선배 제안을 거절 못해서” 연재를 시작했을 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위스키 콘텐츠는 이후 ‘주말판’에도 포함되며 현재 한 주씩 번갈아 마감되고 있다. 뉴스레터는 “한 발 담근 분”과 “덕후”를 노리고, 지면은 “연령대 있는 독자층에 맞춰 여러 실험 중”인데 “조니워커 블루나 발렌타인 30년처럼 알만한 술이 나오면 반응이 크지만” 현재로선 과제다. 본업인 사진기자 일과 병행하는 게 버겁기도 했지만 위스키에 자신을 입문시킨 라프로익의 마스터 디스틸러를 단독 인터뷰하는 뜻깊은 경험도 있었다. 어느덧 뉴스레터 구독자는 2000여명이 됐고, 연재물을 토대로 책 출간도 앞둔 상황이다.
유년기를 독일에서 보낸 1983년생 기자는 2012년부터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로 일해 왔다. 펜의 영역으로 지평을 넓히고, 취미가 일이 된 현재는 그로서도 낯설고 새롭다. 분명한 건 이 문을 열고 새 길을 보여준 자리에 위스키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제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죠. 한정된 인맥 안에서 살았을 텐데 위스키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됐거든요. 그 분들이 점점 혀가 절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밌고요. 다만 글쓰기는 지금도 부담이 커요. 나가하마와 가고시마 지역을 시작으로 일단은 일본 크래프트 증류소 취재를 이어가려 합니다. 결국 위스키가 일상에 잘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인 거죠. 이게 되게 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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