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지연아동의 치료 중 하나인 놀이치료행위를 두고 벌어진 현대해상과 보험계약자 간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일은 보험금 지급 여부를 떠나 의료기관 분류, 국가자격 대체인정 여부, 실손보험 인정치료기준 범위 등 다방면에 얽힌 것이 많아 해결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8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11단독부는 이에 대한 공판을 열었다. 발달지연아동권리보호가족연대는 공판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해상에 보험금 지급을 촉구했다. 이번 공판은 단일‧소액 재판이지만, 현대해상의 발달지연 치료비 부지급을 다루는 첫 재판인 만큼 결과에 따라 보험금 지급 기준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발달지연치료는 또래에 비해 언어나 행동 발달 속도가 느린 아동에 대한 치료다. 이 중 놀이치료는 언어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운 영유아나 아동을 대상으로 표현의 매체가 되는 놀이를 이용해 상담자와 치료관계를 형성하는 심리치료 기법이다.
현대해상 "법적 근거" vs 가족연대 "자의적 판단"
이번 논란의 시작은 지난해 5월부터 현대해상이 '민간자격자'에 대한 치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방침을 내세워 실손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실손보험금을 지급하려면 치료사의 자격증 사본 또는 치료일지, 회기기록지 등에 치료사명과 자격명, 자격번호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현대해상은 의료인이 아닌 자에게 '의료행위를 단순 보조하는 정도를 벗어난 특정 치료행위'를 하게 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만약 치료행위 중 핵심 부분을 의료인이 아닌 자가 상당 부분 진행한 경우에도 단순 보조라고 볼 수 없기에 별도의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의료법을 비롯해 의료기사법·자격기본법 등 현행법상 근거가 없는 민간자격자의 치료비는 실손보험금으로 보장할 수 없다"며 "국가자격으로 인정받는 언어재활사나 작업치료사의 치료 건은 계속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가족연대는 특정 요양기관에 민간치료사가 근무한다거나, 발달치료 과정에 민간치료사가 관여됐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요양기관에서 이뤄진 발달치료 전체에 대해 일률적으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가족연대 관계자는 "지난해 5월18일부터 현대해상은 발달지연 치료비를 청구한 보험가입자와 해당 병의원을 대상으로 민간자격사의 행위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간주해 실손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알림톡으로 배포했다"며 "약관 변경이 없음에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자의적 결정"이라고 말했다.
가족연대는 치료사의 자격정보를 요구한 것도 문제 삼았다. 치료사의 자격증 정보는 환자가 임의로 발급받아 제출할 수 없으므로 보험금 청구 시 계약자에게 이 정보를 입증하도록 요구한 것은 부당하다는 금융감독원의 답변서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한 처사라는 것이다.
현대해상 "편의 고려" vs 가족연대 "병의원 차별"
또 다른 쟁점인 의료기관과 관련해서도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가족연대는 현대해상이 대학병원이나 상급병원 등의 실손보험금 지급은 인정하지만 병·의원 산하 기관의 재활 치료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똑같은 전문의의 처방과 지도로 이뤄진 의료행위임에도 이를 구별해 선택적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은 공정거래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현대해상은 고객 편의를 위해 일부 과정을 생략했는데 오해가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가족연대의 주장과 달리 현장 실사 결과 대학병원 등에는 민간자격증을 가진 치료사가 없다고 밝혔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민간자격증 보유자의 치료가 행해지지 않는 대학병원 진료는 고객의 번거로움을 덜어주고자 추가로 진료기록 등을 요청하지 않는 것"이라며 "병의원급은 민간자격을 보유한 자의 치료가 빈번하게 확인되므로 청구할 때 진료기록 등을 요청하는 것이고, 병의원이어도 작업치료사등 의료법에서 인정하는 이의 치료를 받는 경우는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발달지연 치료를 시행한 자의 자격 사항에 관한 자료를 보험금 청구 단계에서 제출받아 실손보험의 담보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치료를 시행한 자의 자격 사항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은 기초서류 준수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족연대 관계자는 "대학병원 및 상급종합병원은 정상적으로 지급하는데 이외의 병의원에서 치료하면 지급이 불가하다는 내용은 일관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병원의 유명 의사에게 예약하려 해도 대기시간이 2년 이상"이라며 "아이를 더 좋은 곳에서 치료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데 시간이 지체되면 치료가 힘들어지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까운 병의원에서 치료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족연대는 이렇게 현실적으로 대학병원이나 상급병원에 예약하기 힘든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지급에 차등을 두는 것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성토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11단독부는 이날 현대해상을 상대로 제기된 '발달지연 아동 실손보험 치료비 부지급' 소송의 판결을 유보하고 집중심리를 거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측이 사전 제출한 답변서로만으로는 결론을 낼 수 없다며 집중심리를 통해 추후 쟁점에 대한 결론을 내기로 했다. 앞으로 한 달여간 쟁점정리기일과 증인신문 등 필요한 증거 조사를 벌이는 집중증거조사기일이 진행될 예정이며, 변론 종결 후 판결이 확정된다.
박준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