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시계 이어 러닝화 계급도까지…줄세우기 문화 사회갈등 우려

10명중 8명 브랜드에 상대적 박탈감 느껴…“소비로 사람 평가하면 안돼”
ⓒ르데스크

러닝 동호회가 성행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러닝화 계급도’까지 등장했다. 비싸고 성능 좋은 운동화를 강조하기 위한 콘텐츠지만 이를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러닝화의 종류에 따라 사람 등급을 매기는 등 만연한 줄세우기 문화가 사회적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온라인 운동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2024 러닝화 계급도’가 유행하고 있다. 계급도에는 호카, 아식스, 나이키, 아디다스 등 다양한 브랜드의 신발들이 계급별로 정리돼 있었다. 계급표에서는 가장 좋은 신발들을 가리켜 △월드클래스 등급이라고 부른다. 이어 △국가대표 △지역대표 △동네대표 △마실용 △입문용 순이다.

계급이 올라갈수록 가격대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월드클래스’로 분류된 신발들의 경우 50만원대 가격이 형성돼 있다. 대표적인 월드클래스 신발인 아디다스의 ‘아디제오 아디오스 프로 에보1’의 신품가는 59만9000원이다. 그럼에도 매물을 구하기 어려워 웃돈을 주고 중고마켓에서 구해야 할 정도다. 해당 모델은 중고시장에서 70만원~75만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

가장 낮은 계급인 ‘입문용’에 소개된 나이키 인피니티 런의 경우 공식스토어에서 17만9000원에 판매된다. 중고시장 가격은 7만원대 형성돼 있었다. 그밖에 계급별 신발 가격대는 △국가대표 30만원대 △지역대표 20만원대 후반 △동네대표 20만원대 △마실용 10만원 후반대로 집계됐다.

러닝화 계급도를 보는 소비자들은 눈살을 찌푸리는 분위기다.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사회적 문화가 성행하고 있는 가운데 러닝화까지 서열이 나눠져 있어 알게모르게 눈치를 보게된다는 이유에서다.

러닝 동호회에서 활동 중인 김설아(29) 씨는 “등급이 낮은 신발을 신었다고 누가 뭐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급도를 알게 된 이상 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하다하다 신발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이 온 것 같아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러닝 크루원인 박인철(31) 씨는 “학생 때는 패딩을 가지고 등급을 매겼던 기억이 있는데 성인이 되고도 운동화 계급을 나누는 모습이 유치해 보인다”며 “계급 신경 쓸 것 없이 내 발에 맞는 편안한 신발을 신는 것이 최고다”고 말했다.

▲ 운동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고있는 러닝화 등급표에 씁쓸함을 들어내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사진은 운동커뮤니티에 퍼지고 있는 러닝화 등급표. [사진=다나와]

‘러닝화 계급도’는 국내 퍼져있는 각종 계급도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특히 현재 러닝크루를 이루고 있는 2030세대의 경우 학창시절부터 각종 계급도에 노출돼 왔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겨울 패딩 점퍼 계급도’가 유행했고 성인이 된 후에는 명품 계급도가 성행했다.

중년층의 경우 어떤 차를 타는가 어느 지역에 거주하고 있느냐로 줄 세우는 경우가 흔하다. 그밖에 △스마트폰 계급도 △대학 계급도 △골프채 계급도 △그래픽카드 계급도 등 물건 계급 문화는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이러한 계급도 문화가 범람하는 이유는 타인의 시선 때문이다.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이 지난해 7월 성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어떤 브랜드를 착용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지위가 달라 보인다’는 응답이 44.3%로 나타났다. ‘명품을 들고 다니면 왠지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는 반응도 42.1%로 집계됐다.

더 나아가 브랜드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것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경우 80.9%로 조사됐다. 또 계급도가 고가의 명품 소비를 부추긴다는 답변도 86.3%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국내 급 나누기 문화로 사회적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학교에서 어떤 패딩을 입었고 어떤 스마트폰을 쓰느냐를 가지고 아이들끼리 등급을 나뉘는 행위가 있는데 이런 것들이 사회 갈등을 조성할 수 있다”며 “소비 형태를 가지고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문화는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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