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평화를 꿈꾸는 자전거 여행자[퇴근 후, 만나요]

플랫팀 기자 2026. 4. 2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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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는 온전히 나를 위한 회복의 시간입니다. 일상에 지쳐 쉬는 방법을 잊은 당신에게, 경향신문 여성 기자들이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의 일상을 공유하는 [퇴근 후, 만나요]를 연재합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일상이 영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국토반주 스쿼드’.

이 카톡방 이름을 볼 때마다 지난해 추석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친구 두 명과 일정을 맞춰 추석 연휴 2박 3일 동안 인천에서 충주까지 가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서 쭉쭉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루트였는데, 이름이 국토종주가 아니라 ‘반주’인 이유는 절반 정도만 달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인천 아라서해갑문에서 부산까지 가는 633㎞를 보통 국토종주라 칭한다. 우리는 경험 부족(즉 체력 부족)을 고려해 충주를 목표로 삼았다.

지난해 10월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인천에서 충주까지 가는 모험길에 올랐다.

공항철도를 타고 시작 지점인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까지 갔다. 연휴여서 그런지 라이더가 꽤 많았고 외국인도 삼삼오오 눈에 띄었다.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먼 길을 가야 하는지 감도 없었던 우리 스쿼드는 연료통에 국밥을 채워 넣고는 달리고 쉬고를 반복하며 국토종주 인증수첩에 인증 도장을 하나씩 채워갔다.

얼마나 얼치기였는지, 장갑과 짐받이, 추가 안장 쿠션 같은 것들을 현지(1000원의 행복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조달해가며 달렸다. 준비되지 않은 것은 정신머리뿐만이 아니었다. 첫날 인천에서 서울 한강 자전거길에 들어와 광진구쯤을 지난 시점에 다리에 인생 최악의 근육통이 찾아와 잠깐 쉬며 폭풍 마사지를 했다. 그날 저녁 숙소에서 온갖 스트레칭과 지압, 파스를 동원했지만 차도가 없어 ‘내 모험은 여기서 끝나는구나’ 좌절했다.

국토 종주 자전거길. 행정안전부 자전거 행복나눔 홈페이지 갈무리

다음 날 기적처럼 가뿐해진 몸으로 다시 안장에 올랐다(정말 기적이었다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고통이 덜어지고 나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숲길보다는 물길을 따라 만들어진 길이 대부분이어서 탁 트인 전경을 내도록 감상할 수 있었다. 자전거길은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았다. 오르막 구간에서는 망설임 없이 내려서 끌었고, 내리막 구간은 조심스럽게 즐겼다. 블루투스로 통신할 수 있는 헬멧을 맞춘 덕에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페달을 밟았다.

갈수록 비가 심해지는 바람에 도전은 여주에서 중단됐지만, 이 경험은 자전거를 살지 말지 망설였던 시간을 완벽하게 보상해줬다. 공유자전거를 틈틈이 탈 때는 브레이크나 타이어 상태가 일정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구매까지는 몇 달이 걸렸는데, 타봐야 얼마나 타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장마철과 폭염 기간을 제외하고, 눈 내리고 길 어는 한겨울을 피해 대한민국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을 어림해 보니 일 년 중 3분의 2나 될까 싶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계절에 가장 아름다운 길을 내 자전거로 달리고 나니 ‘본전을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자전거는 내 동지이자 전우가 된 것이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우리 스쿼드의 자전거들

비밀리에 정한 자전거 애칭은 ‘적토마’다. 여포도 관우도 아닌 내가, 아무리 마음 속으로 혼자 부르는 것이라지만, 빨갛지도 않은 내 자전거를 적토마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가란 생각도 물론 했다. 평균 시속 15~17㎞로 달리는 내가 과연….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명마의 이름을 놓아주긴 싫었다. 백면서생의 몸에 갇힌 장군의 영혼을 해방한다는 콘셉트를 정하고 열심히 달리기로 했다. 열정만큼은 붉으니까.

요즘은 자나 깨나 세계 평화를 꿈꾼다. 비행기에 적토마를 태우고 날아가 그곳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직 이루지 못한 로망이다. 이국에서 기차나 버스, 트램 대신 자전거를 타며 내 두 다리와 두 바퀴로 천천히 낭만을 느낀다면 여운도 진하게 남을 것이다. 중간중간 고양이 밥도 줄 수 있고…. 설레는 마음에 전용 캐리어도 섣불리 구매했다.

원래대로라면 올해 국내에서 마일리지를 충실히 쌓아 내년 겨울쯤 두바이로 가는 것이 목표였다. 두바이에는 사막을 달리는 86㎞짜리 자전거 전용 트랙이 있다. 국내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자전거 전용 트랙, 그것도 사막 트랙이라니. 그곳에서 볼 일출과 일몰이 아른거렸다.

그 기대는 지난 2월말 두바이가 미국-이란 전쟁의 피해를 당하며 좌절됐다. 내년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당분간은 치솟은 유류할증료뿐만 아니라 안전 비용 때문에라도 중동 여행이 어려울 것 같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 여행 고민이란 참 사치스럽다. 언젠가 전 세계 분쟁 지역의 젊은이들도 안전하게 자전거를 즐길 수 있길, 일개 여행자의 바람을 보태본다.

올해는 컨디션 난조 탓에 시즌 개시가 늦었다. 아쉽지는 않다. 길은 언제나 그곳에 있고, 나는 적토마와 함께 길을 나서기만 하면 되니까.

메타몽

인간은 싫지만 인류애는 충만한 INTP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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