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첫 골’ 이근호 “카타르 첫 골 주인공은 바로~” [국영호의 스포츠人사이드 #23]
월드컵 1차전만 다가오면 떠오르는 이름. 8년 전인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러시아와의 1차전 첫 골의 주인공 이근호(37,대구FC)다. 2022 카타르 월드컵 1차전을 앞두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소환된다. 당시 평범한 득점이 아닌 비범(?)한 득점이라 그럴 것이다.
이름하야 ‘기름손 골’이다. 이근호는 당시 후반 23분 중거리슛을 시도했는데 상대 러시아 골키퍼 이고르 아킨페프가 볼을 잡았다가 미끄러지듯이 놓치면서 행운의 득점이 됐다. 당시 캐스터가 “러시아가 산유국이다. 골키퍼가 기름손이라 놓친 것 같다”고 재치있게 코멘트하면서 ‘기름손 골’이 됐다.
“지금도 그 장면 돌이켜보면, 3초 정도 골 세리머니를 늦게 해요. 주춤하다가 기뻐하며 달려 나갔어요.”
이근호 본인이나 당시 멀리 기자석에서 지켜봤던 기자 모두 한 타이밍 늦게 득점을 인지하고는 얼떨떨해 하며 뒤늦게 “와”하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넣어도 골, 저렇게 넣어도 골. 특히나 월드컵이라면 어떻게 넣어도 ‘가문의 영광’이다.
“제가 넣었던 수많은 골 중에서 남다르고 기뻤던 골이 그 골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너무 기뻤어요.”
Q.행운의 골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오. 시도를 했기 때문에 득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운이라고 얘기하지만, 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이근호의 그 득점은 앞선 4년 동안 수없이 많은 슈팅을 시도한 끝에 빚어낸 골이나 다름없다. 이근호는 당시로부터 4년 전인 2010년 남아공월드컵 베이스캠프(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까지 동행해 최종 명단에 포함될 것으로 보였지만, 결과는 충격의 탈락이었다. 월드컵 예선 기간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그 기간 즈음 ‘슬럼프’에 빠졌다는 게 당시 허정무 감독의 설명이었다. 이근호는 이후 4년 간 이를 악물고 뛰었고 입대(상무)해 군인 신분으로 마침내 월드컵 첫 골의 주인공이 됐다.
“그 전에 4년 전에 아픔이 있었어서 저도 기뻐하고 동료들도 기뻐하고, 제 모든 사람들이 축하해줬어요.”
이근호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첫 골을 넣고 4년 뒤인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현역 선수이면서도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월드컵에 참여했다. 후술하겠지만 선수로서 정말이지 갖가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해설위원으로서 우리 대표팀을 멀리서 바라보고, 우리 대표팀과 상관없는 다른 대표팀도 볼 수 있었고요. 경기장 바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선수로서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해서 뜻깊었어요. 선수 시절 대표팀 생활할 때는 훈련장, 호텔만 오가며 긴장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거든요.”
Q.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선수, 해설위원이 아닌 팬으로 보게 되겠네요?
“이번에는 응원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장이 아니라 집에서 보기 때문에 아내와 편하게 보지 않을까요. 하하.”
이근호는 국가 대표팀에서 84경기(19득점), 23세 이하 대표팀에서 19경기(5득점), 20세 이하 대표팀에서 9경기(3득점)에 출전하고 프로팀에서는 국내 9팀(중복), 일본 2팀, 카타르 1팀에서 뛰는 등 경험이 많다. 호기심도, 경험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방송 해설위원을 지냈고, 장애어린이 재활을 위해 1억 원 기부도 했으며, 현재는 한국프로선수협회 회장도 맡는 등 선수 권익 신장에 앞장서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제1회 자선경기도 열었다. 물론 현직 대구FC 선수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화려하지도 않았다. ‘축구 천재’로 불린 친구 박주영과 달리 2005년 연습생으로 프로팀 인천에 입단해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정상에 올라선 사례다. 얘기해보면 사려 깊으면서도 폭넓은 축구 지식도 갖추고 있다. 복잡한 축구를 일반인의 쉬운 언어로 표현해내는 언변도 뛰어나다. 축구 선수 같지 않은 선수랄까.
이런 이근호와 MBN 스포츠 전문 토크쇼 ‘스포츠야’에서 오랜만에 만나 참 많은 얘기를 나눴다. 때가 때인만큼 월드컵 얘기만 추려서 전한다.
Q.카타르 엘자이시(2014~2015년)에서 프로 선수로 뛰었죠?
“네. 그래서 카타르는 너무나 친숙하죠. 그때 있던 일도 요즘 많이 떠올라요. 환경적인 부분과 경기장들이죠. 그래서 이번 월드컵을 더 관심 있게 보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Q.카타르 날씨는 요맘때 어떤가요?
“카타르 하면 다들 덥지 않을까 생각하시는데, 지금은 섭씨 25~30도 정도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축구하기에는 가장 좋은 날씨죠. 이상기후로 갑자기 너무 더워진다고 해도 경기장 자체 에어컨을 틀면 쌀쌀한 느낌이 들 정도죠. 팬들은 꼭 겉옷을 준비해 가야 할 거에요. 반팔 셔츠 입으면 감기 걸릴 거니까 유의해야 해요.”
Q.제가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때 30일 넘게 취재했었는데, 현지인들이 열에 아홉은 과속을 엄청나게 하던 기억이 있어요.
“기름값이 싸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대부분 운전을 거칠 게 하는 편이고요. 2011년이면 교통이 좋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굉장히 좋아진 걸로 알고 있어요. 많이 좋아졌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한 질문을 던져본다. 이근호이기에 더욱 흥미로운 질문부터 시작한다.
Q.이근호하면 첫 골인데,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선 누가 첫 골을 넣을까요?
“예상이라기보다 응원해주고 싶은 선수는 황희찬 선수예요. 손흥민 선수는 분명히 골을 넣을 거고요, 황희찬 선수가 꼭 골을 넣어서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하는데 힘을 보탰으면 좋겠어요. 저랑 플레이 스타일도 많이 비슷한데요. 제가 저돌적으로 돌파하는 그런 스타일을 많이 좋아하거든요. 희찬이를 어렸을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더욱 응원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Q.손흥민 선수 얘기가 나왔으니, 어떨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은 발 부상이 아니라는 거죠. (출전하게 되면) 심리적인 게 작용할 텐데, 몸싸움이라든지 부딪히는 장면에서 아무래도 움찔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고요. 마스크를 착용한다면 아무리 시야가 괜찮다하더라도 신경이 쓰일 거예요. 그래서 경기에 출전하기 전까지 훈련하면서 적응해나가야 하고요. 또 흥민이는 어쩔 수 없이 뛸 거예요, 제가 손흥민이란 선수를 잘 알고, 의지를 갖고 뛰는 선수라는 걸 알기 때문에 관리를 해서 결국 뛸 거라고 생각을 해요. 대한민국의 주장인 손흥민이 아픈데도 마스크를 쓰고 게임을 뛴다? 나머지 10명의 선수가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뛸지는 안 봐도 뻔하기 때문에 더욱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가벼운 질문도 해볼게요. 김민재가 포르투갈의 호날두를 묶을 수 있다?
“이제는 뭐, 김민재 선수가 호날두 정도는! 그냥 막지 않을까요. 그리고 주위 선수들도 준비를 잘해서 잘 막아내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강원에 있고 민재가 전북에 있을 때인 2017년에 처음 맞붙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때 느꼈어요 ‘아, 다르다’. 빠른데 힘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저희는 보폭을 얘기하는데, ‘잔발’이더라고요. 한마디로 체격이 큰데 민첩한 거죠. 거기다가 또 그라운드에서 부지런해요. 빠른 선수는 게으른 편인데. 제가 항상 뒷공간을 노리려고 하면 민재는 다른 선수와 다르게 대처했어요. 처음 보고는 다르다는 걸 느꼈고,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되었고 아직도 성장하고 있으니 더욱 기대가 되죠.”
Q.그리고, 이번 월드컵에선 누구를 가장 기대하나요?
“손흥민, 김민재는 워낙 얘기가 많이 나오고. 저는 황인범 선수가 기대돼요. 우리 대표팀에서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그라운드 가운데서 활동량이 워낙 많고, 볼을 지키고 연결하는 역할을 해주는 선수인데, 연결고리 역할을 잘해주지 않을까 기대가 돼요.”
Q.큰 대회에서는 ‘미친 선수’가 나와줘야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데, 이번엔 누구일까요?
“무조건 (김)승규가 미쳐야 됩니다. (Q.골키퍼요?) 그렇죠. 골키퍼를 맡는 김승규가 미쳐야 합니다. 4년 전에 독일전에서 승리할 때는 골키퍼 조현우가 미쳤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김승규가 미쳐야 됩니다. (Q.김승규가 주전 골키퍼 맡을 것 같다는 의미인가요?) 지금까지 구도를 봤을 때는 그렇죠. 누가 골키퍼 장갑을 끼든 골키퍼가 미쳐야 됩니다.”
Q.이근호 선수처럼 월드컵에 간절한 선수는 누구일까요?
“다른 분들이 다 아시지 않을까요. 김진수 선수죠. 김진수가 시즌 마지막까지 소속팀에서 정말 많이 열심히 뛰었거든요. 정말 프로페셔널 해서 경기에 나가면 몸을 사리지 않고 200% 쏟아내는 스타일이에요. 경기하는 걸 보면 의지가 느껴져요. 올해 월드컵에 대한 준비, 각오, 인터뷰를 볼 때마다 느껴져서 간절한 선수 하면 김진수 선수가 떠올라요. 솔직히 말해서 올해는 월드컵 시즌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마지막에는 (몸을 사리려) 힘을 뺀다든지 할 수 있거든요. 부상을 조심을 해야 하기 때문에요. 김진수는 그런 것 없이 매 경기 다 쏟아붓더라고요. 그러면서도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 관리를 잘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게 느껴졌어요.”
우루과이와의 1차전은 24일 오후 10시. 이제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우루과이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4위지만 화려하고 실속 있는 선수가 대거 포진해 우승 후보로 꼽힌다. 첫 판을 잘 대처하고 넘겨야 16강 진출 기회가 올 수 있다.
Q.1차전 상대 우루과이는 우승 후보로 꼽힐만큼 위협적이죠?
“그렇죠. 그런데 우리나라가 2002년(첫 4강 진출), 2006년(원정 첫 승), 2010년(첫 원정 16강 진출)에 좋은 성적을 했지만 그때도 16강 진출한다고 한 적은 없잖아요. 그런데도 해냈고, 지금도 전력을 냉정하게 보면 세 번째나 네 번째가 맞을 테지만, 우리가 개인이 아닌 팀으로 부딪히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월드컵을 앞두고 가장 궁금해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묻는 뻔하디 뻔한 질문이다.
Q.그럼,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까요?
“저는 무조건 (16강에 진출) 한다고 바라고 있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X라고 들어선 안되죠.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한 곳을 바라보고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4년 간 열심히 준비했으니 충분히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이유는요?
“지금 대표팀은 팀으로서 조직력이 잘 갖춰진 것 같아요. 벤투 감독이 4년 동안 팀을 맡으면서 선발부터 교체 선수까지 모두가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이해하려 하고 있어요. 가장 긍정적인 건 선수단 내의 분위기가 정말 좋다는 거예요. 선수들 얘기를 들어보면, 감독에 대한 신뢰라든지 전술에 대한 믿음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기대가 되고요, 그리고 4년 동안 준비해왔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믿고 응원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번 월드컵을 위해 4년 동안 빌드업을 하고, 볼 소유를 하는 축구를 했어요. 예전의 극단적인 축구보다는 이런 축구를 해서 월드컵 무대에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라고 생각해요. 설령 실패한다 해도 얼마나 보완해서 다음을 준비하느냐도 중요하고요, 완전히 뒤엎지 말고요. 그래서 이번 월드컵이 정말 기대가 되고, 얼마나 올라갈 수 있을지, 이 축구가 통할지 기대가 돼요. 단점은 경기가 끝나고 찾아보면 되죠.”
축구 취재를 십수년 해오면서 언젠가부터 ‘한국의 월드컵은 조별리그 3경기를 잘하고 돌아오는 것’이라는 인식이 부지불식간에 뿌리내렸다. 축구를 둘러싼 실망감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생각을 떨쳐내고 싶다. 이런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용기와 희망’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대표팀이 이번에는 4경기 이상하고 돌아오길 바란다. 축구에 진심인 이근호의 말을 끝으로 마무리한다.
“4년 동안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준비한 만큼 많은 분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같이 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지켜보시면서 격려해주시면 선수들이 한 발 한 발 더 열심히 뛰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쪼록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국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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