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면 영주권 부여” 트럼프 발언에 귀국 늦추는 美유학생들

10년간 34만 이공계 인력 유출…“전문가 대우부터 해줘야 남는다”
[사진=UCLA]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유학생 커뮤니티가 기대감에 들썩이고 있다.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서 졸업한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주권을 부여하겠다고 선거기간에 한 발언 때문이다. 트럼프는 반 이민 정책을 고수하고 있지만 이는 고급 인력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만약 해당 정책이 실제로 진행된다면 고급 인력들의 해외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유학생 커뮤니티에서 과거 트럼프의 한 발언이 조명을 받고 있다. 바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 학생들이 미국에 계속 머물며 일할 수 있도록 영주권을 주자는 제안이다. 지난 6월 트럼프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2년제 대학을 포함해서 누군가 대학을 졸업하면 자동으로 졸업장의 일부로 그린카드(영주권)를 받아 이 나라에 머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영주권은 외국인이 미국에 영주할 권리다. 범죄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박탈되지 않으며 사실상 투표권을 제외하고는 미국인들과 권리에 있어 큰 차이가 없다.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까다로운 자격요건을 갖춰야 한다. 이후 각종 시험과 심사를 통과해야지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발언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6년 첫 대선 당시에도 미국 대학 졸업생들에 한해서 영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똑같이 말한 바 있다. 미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영주권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는 배경이다.

▲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들어낸 반면 고급 인력에는 관대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은 불법 이민자와 민주당 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트럼프 당선인. [사진=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은 첫 등장부터 지금까지 계속 반이민 정서를 보여왔다. 그는 자신이 재선되면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을 단행하고, 출생 시민권을 폐지하고, 무슬림이 다수인 특정 국가에서 미국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을 다시 금지하겠다고 강조해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경계하는 것은 불법·편법 이민자와 일반 근로자들로 국한돼 있다. 고학력자나 고숙련 근로자 등 고급인력 이민에 대해서는 오히려 관대한 자세를 보여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첫 임기 당시에도 고학력·고숙련 노동자 이민을 더 많이 받아들이는 이민법 개정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트럼프가 혈연 중심으로 한 미국의 이민 제도를 ‘능력 기반’으로 바꾸려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고급인력에 집착하는 이유는 미국이 인력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인력난을 겪고 있다. 미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 비어 있는 일자리 100개당 구직자가 72명에 그칠 정도다. 특히 반도체와 AI 등 일정 교육 수준이 필요한 산업 분야는 대규모 인력 부족이 예정된 상황이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2030년까지 반도체 업계에 약 7만여명의 이공계 졸업자 인력이 부족할 수 있다고 집계했다.

유학생들은 경우 대학 졸업 후 1년간 인턴 취업허가를 받는다. 이 기간에 H1B(취업비자)를 지원해 주는 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직하는 것이 영주권을 향한 첫 단추다. 이후 경제활동을 통해 미국에 세금을 납부하면 미국 이민국 무작위 추첨을 통해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다. 영주권 당첨 확률은 0.05%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여러 방법이 있지만 모두 쉬운 길은 아니다. 그래서 트럼프의 발언에 유학생들이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뉴욕주립대를 다니는 김민성(가명) 씨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 박사과정까지 고려하고 있는 입장으로 트럼프 발언에 솔깃했던 것은 사실이다”며 “수많은 유학생들이 미국 영주권을 목표로 하고 있어 다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흥분해 있다”고 밝혔다.

▲ 트럼프 집권시 국내 인재 유출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미국 비자 발급을 위해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 대기중인 시민들. [사진=뉴시스]

유학원에도 대학 졸업과 영주권 관련 문의가 부쩍 늘었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에서 20여년간 유학원에서 일한 이인영(57) 씨는 “과거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유학과 영주권을 함께 물어보는 고객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최근 트럼프 당선과 연관해 유학생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냐는 질문이 종종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현지에서는 트럼프가 대학을 졸업한 모든 유학생들에게 영주권을 줄 가능성을 낮다고 평가한다. 다만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고급 인재들에 대한 미국 문턱이 낮아질 것이란 전망에는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이민 스탠스가 국내 인재 유출을 가속화 시킬 수 있단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 인재 유출은 심각한 문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3~2022년 10년간 이공계 인력 34만 명이 해외로 떠났다. 이중 석·박사만 9만6000명에 달한다. 트럼프가 고급 인재 쟁탈전을 강행한다면 국내 인재 유출 속도는 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국내도 인재에 대한 대우를 올려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는 “(인재가 유출되는 것은) 결국 전문가에 대한 대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게 문제다”며 “마스터나 펠로우 제도 등을 통해 전문가들은 정년 개념 없이 오랫동안 회사에 남아 전문직 연구원처럼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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