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없이 ‘中 때리기’ 나선 美 의회[글로벌 현장]
올 9월은 미국 의회, 특히 하원엔 ‘중국의 달’이었다. 하원은 9월 9일 회기를 시작하며 ‘중국 주간’을 선포했다. 중국과의 친선 우호를 위한 주간이 아니다.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 기업의 활동을 억제하는 각종 법안을 잇달아 통과시키기 위한 주간이었다.
2년제인 미 하원 435명의 임기는 내년 1월 3일까지다. 현재 하원의원 자리 모두 오는 11월 5일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의회 선거에서 당선된 인물들로 교체된다. 선거 직전인 10월에는 의회 활동이 중단되기 때문에 9월은 현 하원의원들이 임기 마지막 불꽃을 태워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이들이 집중하는 분야는 뚜렷했다. 중국 때리기다. 하원은 9월 27일까지 중국 관련 법안 30여 건을 줄줄이 통과시켰다. 양당 의원들이 함께 구성한 중국공산당 특별위원회는 물론이고 법사위원회, 국토위원회, 감시위원회 등 다른 위원회에서도 중국을 직간접적으로 겨냥한 법안을 계속 내놨다. 대부분 법안은 반대가 없어 법안 설명부터 하원 통과까지 10여 분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시바이오·DJI·CATL·BOE 등 견제
통과된 법안은 생물보안법, 라우터법, 중국 전기차 미국 장악 종결법, 중국 공산당 드론 대응법 등 전 산업 분야를 망라한다. 생물보안법(바이오시큐어 액트)은 우시바이오로직스, 우시앱테크, BGI그룹, MGI, 컴플리트 지노믹스를 구체적으로 거명해 미국 연방정부와 관련 기관의 자금을 받은 기업이 해당 5개 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브래드 웬스트럽(오하이오주, 공화당) 하원의원은 “해당 기업들은 글로벌 바이오 산업을 장악하려고 하는 중국 공산당과 연계돼 있다”며 “수백만 명의 미국인 데이터가 잠재적으로 위험에 처해 있다”고 강조했다.
표결에 부쳐져 찬성 217표, 반대 192표로 통과한 중국산 전기차 미국 장악 종결법은 금지된 외국 단체가 추출 가공 제조 조립한 부품을 포함하는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주지 않는 내용이 골자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CATL과 비야디(BYD) 등 기업 6곳을 구체적으로 거명해 연방정부 등의 사용을 중단하도록 하는 중국산 배터리 의존도 감소법도 함께 통과됐다. 이 법안을 발의한 카를로스 기메네즈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위원장(공화당)은 “화웨이, 틱톡, 항만크레인 등 (중국 정부가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무차별 수집한) 사례를 교훈 삼아야 한다”며 “CATL 등의 기업이 전기차에 악성코드를 설치해 민감 정보를 수집하거나 충전 네트워크를 차단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세계 1위 드론회사인 DJI의 신형 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중국 공산당 드론 대응법’은 DJI산 드론이 촬영 데이터를 중국으로 전송하고 있다는 우려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소비자용 라우터와 모뎀 등으로 인한 국가 안보 위험을 연구하려는 ‘라우터법’도 하원을 통과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에서 중국 위안화 비중을 억제하는 법안과 중국 유학생을 통한 기술유출을 방지하는 법안 등도 눈에 띄었다. 미 하원은 직구 형태로 관세 부과를 회피하는 테무·알리 등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도 조만간 심사할 예정이다.
선제대응이 목적
많은 법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선제대응’이다. 이 법안들은 DJI(드론)나 우시바이오로직스(바이오), 화웨이(통신), CATL(배터리), BOE(디스플레이) 등을 구체적으로 거명하고 거래 금지를 정부와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무엇을 잘못해서 제재하는 게 아니다. 잘못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목적이다.
하원 공산당 특별위원장을 맡은 존 물르나르 의원(공화당, 미시간주)은 이런 법안들에 대해 9월 25일 미국경제연구소(AEI) 행사에서 “스모킹 건(연기 나는 총)이 아니라 로디드 건(장전된 총)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총이 격발(국가안보 위협)되고 나서 연기가 나는지 확인하고 제재하면 늦는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 지도자들이 큰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진주만 공습과 9·11 테러 같은 재앙이 뒤따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9월 24일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와 티엔마가 화웨이처럼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이들을 국방부가 발간하는 ‘중국군사기업목록(1260H)’에 포함해 달라는 서한을 최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에게 발송했다. 또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당, 플로리다주)과 함께 중국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 자금은 세액공제 계산 대상에서 제외하는 ‘애국투자법’을 9월 26일 발의했다. 이 법안은 중국 투자에 대한 세율을 높이고 투자자에게 중국 증권을 매각할 시간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의 마음속에서 중국은 적(敵)이고 미국은 이미 전쟁 중인 국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 본격화한 미·중 갈등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전혀 완화되지 않았다. 11월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이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마르크 뤼터 신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이 10월 1일 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 문제에 대해 우리(유럽)를 압박했고 나는 그가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취지다. 중국과 경제적으로는 가까이 지내면서 정치적으로는 견제할 방법은 없다. 미국 우선주의 기조도 이런 맥락 안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중국은 서방이 만들어 둔 자유무역 질서에 편입되는 대신 기존 질서를 악용하고 흐트러뜨렸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공급망 혼란과 우크라이나, 가자 전쟁에서 확인된 정보기술(IT) 의존의 위험성은 미·중 관계의 본질을 워싱턴 정가에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지난 9월 17일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조직원들이 주로 사용하던 무선호출기(삐삐) 테러를 통해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삐삐가 폭탄이 될 수 있다면 집집마다 설치된 모뎀이나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가 어느 순간 트로이 목마가 되어 폭탄 혹은 폭탄 같은 역할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한국 기업 수혜 볼까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모두 법제화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 우위에 있는 상원을 통과해야 하고 대통령이 서명해서 공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들 법안 중 대다수는 양당의 초당적인 지지를 받는 만큼 빠르든 늦든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 대한 견제가 강해지는 상황은 한국 기업에 위기이자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 대중국 매출을 포기하거나 중국을 통한 공급망 구성을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는 위기지만 한편으로는 가파르게 치고 올라온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한숨 돌리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시바이오로직스가 제재를 받으면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이 그 빈 자리를 차지할 여지가 생기는 식이다. CATL의 배터리가 제재당하고 BOE의 디스플레이가 미국과 동맹국 사이에서 덜 사용되면 그만큼 한국 기업에는 움직여 볼 공간이 생기게 된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 연구위원은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경제는 중국의 성장에 힘입어 함께 성장하는 수혜를 봤다”며 “이제부터 수십 년 동안은 다시 미국과 함께 성장을 도모해야 할 때”라고 평가했다.
워싱턴=이상은 한국경제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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