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툴젠이 글로벌 크리스퍼(CRISPR) 특허전 확대 국면에서 700억원대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나섰다. 회사는 브로드연구소와의 저촉심사 재개와 리보핵산단백질복합체(RNP) 특허 권리화를 앞세워 선제적 자금 확보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특허 수익화 기대가 실제 현금유입으로 바뀌기 전까지 소송비와 연구개발(R&D)비를 버틸 체력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시장의 관심은 이번 조달 이후 현금소진 속도와 특허·라이선싱 성과가 같은 흐름으로 맞물릴지에 쏠린다.
특허전 대비한 700억 조달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툴젠은 15일 이사회를 열고 보통주 77만7000주를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발행하기로 했다. 예정발행가액은 주당 9만200원이며 모집예정총액은 700억9000만원이다. 신주배정기준일은 6월29일이고 구주주 청약은 8월3일부터 4일까지 진행된다. 일반공모 청약은 8월6~7일이며 신주상장예정일은 8월24일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자금조달이 특허분쟁 대응 비용과 R&D비 집행 여력을 동시에 보강하는 성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신고서상 세부사용 우선순위는 △지급수수료(저촉심사 및 특허침해 소송에 따른 법률비용) △R&D비 △운영자금 순으로 제시됐다. 툴젠은 미국 등 주요국가에서 유전자가위 원천특허와 RNP 특허 관련 분쟁 및 권리화 절차를 진행 중이다. 특허심사와 소송대응에는 해외 법률대리인 비용, 특허유지비, 자료검토 비용이 반영된다고 알려져 있다.
조달 규모는 현재 보유 유동성과 비교해 큰 편이라는 진단도 제기된다. 툴젠은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자산 57억원, 단기금융상품 189억원으로 246억원 수준의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다. 예정 모집총액은 700억원으로 유동성의 약 2.8배에 달한다. 툴젠은 1분기 기준으로 총차입금 부담은 없지만 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45억원 유출을 기록했다. 특허전과 R&D가 이어지는 동안 외부조달 의존도가 다시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주배정 방식은 기존 주주에게 우선 참여 기회를 주지만 청약 여부에 따른 희석 부담도 남긴다. 툴젠의 증자 전 발행주식총수는 899만7629주이며 이번 신주발행 규모는 77만7000주다. 신주 규모와 기존 발행주식총수 대비 증자비율은 8.6%다. 예정발행가 산정에는 기준주가에 할인율 23%를 적용했다. 구주주는 배정분을 청약하거나 신주인수증권서를 매도할 수 있다.
저촉심사 재개와 RNP 소송

이번 유증의 배경으로는 브로드연구소와의 미국 저촉심사 재개가 지목된다. 툴젠은 진핵세포 유전자가위 원천특허를 두고 CVC그룹·브로드연구소와 선발명자 지위를 다투는 구도에 놓여 있다. 증권신고서에는 CVC그룹과 브로드연구소 간 소송으로 보류됐던 툴젠의 저촉심사가 올해 3월 미국 특허심판원(PTAB)에 의해 본격 재개됐다고 기재됐다. 툴젠은 브로드연구소와의 저촉심사에서 특허출원일 우위를 인정받아 선순위 권리자 지위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비용 부담은 저촉심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툴젠은 RNP 특허를 저촉심사 대상 원천특허와 별도 축으로 관리하고 있다. 회사가 연초 공개한 기업설명회(IR) 자료에는 RNP 등록특허가 2024년 5건에서 2025년 15건으로 늘었다고 제시됐다. 툴젠은 지난해 영국, 미국, 네덜란드에서 버텍스, 론자, 크리스퍼테라퓨틱스 등을 상대로 특허침해소송도 제기했다. 권리화 범위가 넓어지고 직접행사 단계에 들어가면서 특허 수익화 기대와 법률비용 부담이 동시에 커졌다.
실적 흐름은 특허 기대가 아직 본격 매출로 전환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툴젠의 올해 1분기 연결기준 실적은 매출 3억9000만원, 영업손실 45억9000만원, 당기순손실 44억1000만원이다. 같은 기간 영업활동현금흐름은 45억원 유출을 기록했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57억원으로 전년동기 201억원에서 71.6% 축소됐다.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한 유동성도 1년 새 453억원에서 246억원으로 감소했다. 이는 특허 수익화 전 현금 보강의 필요성을 키우는 대목으로 꼽힌다.
유종상 툴젠 대표는 "오랜 시간 이어졌던 브로드연구소와 CVC 간의 저촉심사가 종결됐다"며 "그 결과에 따라 이제 시장의 시선은 누가 진정한 유전자가위 기술의 선발명자인가를 가리는 마지막 관문인 '브로드연구소 대 툴젠'의 대결로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상보다 빠르게 저촉심사가 재개되면서 툴젠이 가진 원천기술의 선발명자 지위를 입증할 기회가 더 빨리 찾아왔다"며 "재원을 선제적으로 투입해 분쟁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현금소진 속도와 청약 변수

조달 이후 첫 과제는 현금소진 속도를 통제하면서 특허전 대응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툴젠은 1분기 기준 총차입금 부담은 없지만 매출 규모에 비해 판관비와 특허 관련 지급수수료 부담이 크다. 올해 1분기 판관비는 49억원으로 매출의 12배를 웃돌았다. 특허전과 R&D가 병행되는 동안 영업활동현금흐름, 지급수수료 집행액, R&D비 증가 속도가 투자 판단 지표로 꼽힌다.
최대주주의 청약 참여 규모는 주주가치 논점으로 남아 있다. 증권신고서에는 최대주주 제넥신이 툴젠 지분 12.4%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유증에서 9만6602주를 배정받을 예정으로 기재됐다. 다만 제넥신은 이 가운데 10% 규모만 청약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제넥신의 제한적 참여는 증자 이후 최대주주 지분율 하락으로 이어질 요인으로 우려된다. 구주주 청약률이 낮아질 경우 실권주 일반공모 비중이 커지고 공동 대표주관사의 잔액인수 물량도 발생할 수 있다.
주주 설득력은 특허전 진행과 라이선스 계약 성과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유증이 재무적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실제 매출 전환 근거가 뒤따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IR 자료에는 2026~2027년이 소송과 라이선싱 수익실현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구간으로 제시됐다. 다만 기술이전(LO)과 로열티 매출은 상대방 개발 일정, 특허분쟁 결과, 협상조건에 따라 인식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 하반기에는 확정발행가 산정, 구주주 청약율, 실권주 발생 규모가 확인된다.
유 대표는 "주주가치 희석 최소화를 최우선과제로 삼아 이번 계획을 수립했다"며 "이번 유증 비율은 최근 바이오 업계의 사례와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주주가치 희석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우 보수적으로 책정한 비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회사가 꼭 필요한 전략적 자금만을 요청드림으로써 주주부담을 덜겠다는 진정성 있는 노력의 결과"라고 덧붙였다.
이승준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