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의 멋, 딥프로바이제이든 김정근 작가

사진=월간 아웃도어

취향의 시대, 흔한 자전거는 재미없다. 같은 모델이라도 딥프로바이제이든 김정근 작가의 손을 거치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자전거가 탄생한다. 자전거에 영혼을 불어넣는 자전거 커스텀 페인팅의 세계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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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함께 하며 일상을 사는 물건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스마트폰을 자신을 닮은 케이스로 꾸며내는 것처럼, 늘 메고 다니는 가방에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나 브랜드의 키링을 다는 것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자전거가 그런 의미다. 일상에 더해 힘든 종주까지 함께 했다면 그 의미는 더 커진다.
물 좋은 청계산 아래 자리한 딥프로바이제이든은 커스텀 페인팅Custom painting 전문 업체다. 바이크나 자동차, 스키, 스케이트보드, 캠핑 용품 등 다양한 제품군을 다루고 있지만, 메인은 자전거다. 이미 알음알음 소문이 나서 하하, 진태현 등 자전거 애호가 연예인들의 자전거를 작업하기도 했고, SPECIALIZED, Super73, 신세계인터내셔널(DU), Hyundai Card, NEXON 등 내로라하는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도 진행했다. 딥프로바이제이든 김정근 작가가 만들어낸 자전거 커스텀 페인팅 작업물을 보면, 단순히 색을 입혔다는 느낌보다 자전거에 작품을 입힌 듯하다. 자전거 프레임의 유려한 곡선 위로 깔끔하게 그려진 풍부한 색감. 누군가 저 자전거를 타고 간다면 그 사람마저 궁금해질 것 같은 독특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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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으로 들어서자 한편에 빼곡하게 자리한 페인팅 샘플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페인팅 기법은 정말 많아요. 이렇게 에어브러시를 사용해 수채화처럼 표현할 수도 있고, 대리석 같은 느낌을 주는 마블 패턴도 있죠. 컬러 레이어가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 가장 고난도예요. 부분마다 나눠서 페인팅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작업씩 겹겹이 쌓아 올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디테일이 많이 들어갈수록 어려운 작업이 되죠.” 김정근 작가의 설명을 듣고 나자 오로라처럼 여러 색이 어우러진 곳에 눈길이 간다.
딥프로바이제이든의 김정근 작가는 뉴욕에서 패션을 전공했다. 어려서부터 미술을 했고, 다들 하던 것처럼 입시 미술을 거쳐 뉴욕으로 날아갔다. 자전거를 타게 된 것은 뉴욕에서 통학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타던 자전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거 브랜드, 비앙키Bianchi의 픽시다. 직접 타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자전거도 눈에 들어왔고, 커스텀 한 자전거도 많이 보게 됐다. 웅장한 커스텀 시장을 가진 미국에서 커스텀 페인팅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몇 년 후, 그는 비로소 커스텀 페인팅 아티스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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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근 작가가 4년 동안 몸소 겪어온 바에 의하면, 미국만큼 실험적인 작업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국내 커스텀 시장의 규모도 결코 작지 않다고 한다. 그는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커스텀 페인팅에 대해 알리고 있다. ‘보통 젊은 층이 커스텀 페인팅을 좋아하지 않냐’라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자전거를 오랫동안 타오신 연륜 있으신 분들이 의외로 유튜브를 통해 커스텀 페인팅을 알고 연락 주시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은 이런 것이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으셨던 거죠”라고 답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김정근 작가가 뉴욕에서 처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며 커스텀 페인팅에 눈을 떴을 때처럼, 자전거를 즐기는 이들을 커스텀 페인팅의 세계로 데려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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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커스텀 페인팅은 생각보다 많은 과정을 거친다. 먼저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내기 위해서 소통하고, 샘플을 작업해 떠오른 생각을 구체화시킨다. 레퍼런스를 가져오는 경우는 그대로 만들어 내면 되지만, 자신의 개성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머릿속에 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정근 작가에게는 어떤 과정보다 이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똑같은 단어를 말해도 각자 표현하는 바는 다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고객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그 간극을 좁혀나가는 게 가장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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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전거에 붙은 진흙이나 먼지들을 제거하기 위해 프레임을 세척한 후, 표면을 긁어내는 샌딩 작업을 한다. 다음으로 페인트가 잘 올라갈 수 있도록 프라이머 처리를 한 후 한번 더 샌딩 작업을 한다. 이때 긁히거나 찌그러진 부분을 복구해 주는 복원 작업을 함께 진행한다. 단계마다 샌딩 작업이 들어가는 이유는 컬러의 밀착력을 올리기 위해서다. 이후 베이스 컬러 작업을 하고, 1차 마감을 한다. “특히 많이 신경 쓰시는 부분이 로고와 베이스 프레임 컬러 간의 단차예요. 고객분들은 손으로 느껴지는 미세한 차이에도 신경을 많이 쓰시기 때문에 1차 마감 후에 다시 한번 샌딩을 해줍니다. 이 작업을 컬러 샌딩이라고 하는데, 그런 단차들을 최대한 제거해 주기 위해서 하는 작업입니다. 이때 너무 깊이 작업하게 되면 깔아놨던 베이스 컬러가 다 벗겨지기 때문에 굉장히 섬세하게 작업해야 하죠. 이 작업을 마치면 2차 마감 후 열처리를 하고, 폴리싱 작업 후 마무리 하게 됩니다.” 총 작업 기간은 보통 1주일에서 열흘. 한 단계도 실패하지 않았을 때 기준이다. 실수를 하게 되면 직전 단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넘어갔던 실수들은 다음 단계, 혹은 마지막 단계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단계도 소홀히 하고 넘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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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텀 페인팅이 가능한 물건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자전거는 쉽지 않은 편에 속한다. 자동차나 바이크는 약간의 입체감이 더해졌지만 베이스는 평면이다. 크기도 크고, 자전거보다는 수월한 편. 반면 자전거는 비교적 크기도 작고, 부품도 작다. 프레임은 튜브가 여러 개 합쳐진 형태로 되어 있어 도색 과정은 동일하지만 훨씬 더 디테일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김정근 작가는 자부심을 가진다. “보통 문의 전화를 받으면 ‘자전거 색칠하는 거 얼마냐’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 표현을 들으면 조금 속상하죠. 색칠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요. 커스텀 페인팅은 분명히 전문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작업자의 스킬과 센스로 고객님이 떠올린 영감과 개성을 만족스러운 결과물로 실현 시켜주는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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