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작가를 휘두르려는 독자들
최근에 지인 작가가 ‘이 작가의 글은 다 이상하다’ ‘이게 무슨 작가냐’는 류의 인신공격성 댓글들을 받고 나를 비롯한 다른 작가들에게 하소연을 한 일이 있었다. 근거도 없는 인신공격류의 비난이라 나를 포함한 다른 작가들도 기막혀 했다. 그 작가는 고소를 할까 했으나 그러면 신경쓸 것이 많아지는 까닭에, 일단 그 댓글들을 신고하는 것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런 일은 작가들에게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나도 적지 않게 겪은 일이기도 하다.
웹소설이 일반 소설과 다른 점 중에 하나는, 바로 독자들의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가지 장점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작품에 오타가 있거나, 인물들의 이름을 엉뚱하게 쓰는 등의 실수를 했을 때, 독자들의 댓글을 보고 바로 고칠 수 있다. 혹은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대부분이 선호하는 스토리의 방향이나 주인공들을 알고 그것에 맞게 스토리를 다시 구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의 동료 작가 경우처럼 좋지 않은 점도 있다. 악플 때문에 작가가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또 댓글을 보고 독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스토리를 틀었다가 댓글을 달지 않은 독자들의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
꽤 오래 전에, 충격적인 어떤 글이 작가들의 커뮤니티에 돌았던 적이 있었다. 그 글의 제목은 ‘작가 멘탈 터뜨리는 게 취미임’이었는데, 한 독자가 어떻게 작가를 절필하게 할 수 있는지를 경험을 곁들어 설명한 글이었다. 초반 회차에는 매번 재미있다는 댓글을 달아주다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아쉬움을 토로하다가 종내에는 더는 견딜 수 없어 그만 보겠다는 댓글을 달면 작가가 결국은 작품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었는데, 그 글이 끔찍했던 것은 그 방법보다도 논조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이 작가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즐기는 듯한, 처음부터 끝까지 조롱의 논조로 쓰인 글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런 독자 때문에 글을 못 쓰고 심지어는 심한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는데, 자신이 한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가지기는커녕 오히려 희열을 느끼는 듯한 태도에 매우 놀랐고 섬뜩하기까지 했었다.
나 역시 그런 독자였던 적이 있다
나도 웹소설에 장문의 비판 댓글을 달고 다니던 적이 있었다. 웹소설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참고로 삼고자 인기 웹소설들을 읽었는데 읽다가 거슬리는 부분이 나오면 이러한 댓글을 달곤 했다. ‘아까는 이렇게 행동하다가 지금은 저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니 인물의 일관성이 없네요.’ ‘너무 주인공이 줏대 없이 끌려다니는 것 같은데 표현에 비해서 스토리가 많이 아쉽네요.’ 나름 문학 공부도 했었다고, 전문 용어까지 쓰면서 이런저런 피드백을 했다. 그 글이 꽤 전문적으로 보여서일까, 내 피드백에 동조하는 무리들도 생겼다. 그러니 나는 내가 꽤 평가를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내 글이 반드시 작가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내가 당시에 그러한 댓글을 달았던 것에는 좋은 의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작가들을 질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 데뷔 전이었으므로 나는 습작 수준의 글을 쓰고 있고 아직 출판사에 정식으로 계약도 하지 못했는데, 이 글은 내 생각에 여러가지 헛점들이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인기가 많고 계약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마침, 댓글 기능이 있고 실시간으로 작가들도 댓글 확인이 가능하니 한 번 영향을 줘 볼까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작가’보다 우위에 서고 싶었다. 그러면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서, 내 댓글을 본 다른 독자들도 동조하는 것이 좋아서, 그리고 웹소설 작가는 왠지 만만해 보여서. 나 역시 앞에서 이야기한 ‘작가 멘탈 터트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작가를 내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마음을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당시의 감정을 되돌아보게 되었던 까닭은, 후에 웹소설 작가가 되고 나서 내 작품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예전에 댓글을 달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비판하는 댓글에도 종류가 있었다. 어떤 댓글은 분명한 비판을 말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보는 내가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했다. 그런 댓글들은 보통 비판만 하지는 않는다. 이런 부분은 좋은데, 이런 부분은 좀 아쉽다며 두 가지 면을 골고루 다루어 주었다. ‘글 잘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좀 아쉬운 것 같아요.’ 얼굴을 보지 않아도, 주저하며 말하는 듯한 인상이 여실히 보이는 댓글이라 오히려 아쉬운 부분을 남긴 내가 미안해졌다.
그러나 내가 달았던 댓글보다도 훨씬 심한 비판 댓글들도 있었다. ‘임신 4개월에 무슨 만삭도 아니고 배가 그렇게 많이 나와요. 경험이 없으면 자료조사라도 제대로 해야지. 이런 사람도 작가라니.’ ‘이 상황이 너무 말이 안 되는데요. 작가가 개연성이라는 걸 잘 모르나 봐요. 진짜 작가는 아무나 되나.’ 작품에 대한 비판 같지만 따지고 보면 작가를 비난하는 댓글이다. 작가가 된 초반에는 이런 댓글에 많은 상처를 받았으나 내 예전 모습을 돌아보면서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에 대한 비판에서 끝나지 않고 작가까지 매도하는 것은, 어쩌면 독자들의 지금 마음 상태를 반영하는 지도 모르겠다고. 예전의 나처럼, 이런 ‘부족한’ 작품이 론칭된 것에 대한 질투심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자 조금은 그러한 댓글을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웹소설 세계가 아닌 곳에서도
생각해 보면, 꼭 웹소설 세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나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다. 문득 직장 생활을 할 때 만난 어떤 사람이 떠오른다. 그 사람은 초반에는 나에게 잘해주다가, 내가 이러한 점이 부족하다며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태도를 바꾸어 ‘눈치도 없는 사람’, ‘개념도 없는 인간’, ‘사회 생활도 모르는 바보’라고 나를 노골적으로 비난해댔다. 나는 점점 위축되었고 잘할 수 있는 것에서도 실수를 하기 시작했으며 종내에는 그 직장을 나오고 말았다. 지금은 안다. 그 사람이 정말 내게 애정이 있었다면,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을 것임을. 잘못을 한다고 그 잘못에 대한 피드백만이 아니라 그 인간마저 매도하는 것은, 그 매도 당하는 이의 문제라기보다는 매도하는 이가 어떻게든 상대를 휘두르려는 욕망에 자신을 내주었기 때문일 경우가 많다. 마치 웹소설 독자들이 작가를 휘두르려고 인신공격성 악플을 달듯이 말이다.
얼마 전에는 지인이 자신의 어머니와의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 사정을 잘 들어 보니 지인은 이미 독립한 지 한참이 지났고 자녀까지 있는데 그 어머니는 여전히 지인을 품안의 자식처럼 휘두르려고 하는 의도가 엿보였다.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 가장 건강하게 사는 길이다. 그런데 그것을 잘 모르고, 어떤 사람들은 그 영역을 넘어서 상대를 제 뜻대로 휘두르려고 한다. 그럴 때에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그래, 저 사람이 나에게 인신공격성 악플을 다는 구나.’ ‘저건 독자의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실시간으로 주변 인물들의 댓글을 받으며 내가 평생을 써 내려가는 장편 웹소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첨언) 이곳에 나오는 댓글들은 실제 댓글들이 아닌, 많은 경우를 미루어 창작한 ‘예시’입니다.
*글쓴이 - 김지영
한때 교직에 몸을 담았다가 그만 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웹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때로 인기 있는 글들을 보며 질투도 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재미를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늘 습작생의 기분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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