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가을 최고의 선수
랜디 존슨, 커트 실링, 매디슨 범가너. 가을이면 떠오르는 이름이다. 그야말로 빅게임 피처(Big Game Pitcher)다.
2025년에 또 한 명이 추가됐다. 야마모토 요시노부(27)다. 작년 PS에서 가장 반짝였다. 6경기에서 37.1이닝을 던졌다. 5승 1패, ERA 1.45라는 뛰어난 숫자를 남겼다. 9이닝 1실점 게임이 두 번이나 된다.
월드시리즈는 그를 위한 무대였다. 혼자서 3승을 책임졌다. MVP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그전까지는 회의적인 시선도 많았다. “MLB에서 공 1개도 던진 적이 없다. 그런 투수에게 왜 그리 많은 돈을 주냐.” 날카로운 주장에 끄덕이는 사람도 꽤 있다. 12년 간 3억 2500만 달러(약 4700억 원) 계약을 비판하는 목소리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못한다. 다저스의 혜안에 감탄할 뿐이다. 어떻게 확신을 갖고, 그렇게 엄청난 거액을 투자했냐. 그런 찬사가 쏟아질 뿐이다.
물론 다저스라고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 갸웃거리고, 망설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돌아섰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오, 대단한데?’
‘알면 알수록 좋은 투수인데?’
같은 식으로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것이 오늘 <구라다…>의 궁금증이다.

회의적이던 다저스 수뇌부
3년 연속 MVP, 3년 연속 최고투수상(사와무라상), 3년 연속 4관왕, 노히트노런 2회, 5년 연속 WHIP 0점대…. NPB 시절은 단연 발군이었다.
그러나 께름칙한 부분이 있다. 하드웨어, 혹은 피지컬 문제다. 즉 체격 조건 말이다. 한 마디로 투수 몸이 아니다.
키는 178cm에 불과하다. 몸무게도 80kg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도 작고, 가벼운 편이다. MLB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190cm, 100kg이 넘는 덩치들이 대부분이다. 따지자면 하위 5%에 속할 것이다.
스카우트 관련 최고 결정권자는 ‘야구 부문 사장’이다. 다저스에서는 앤드류 프리드먼이다. ‘프기꾼’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선수 보는 안목은 자타공인 업계 최고다.
그의 첫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소문은 요란한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장기계약을 주기는 리스크가 너무 큰 데’. 같은 마음이었다. 한마디로 영 탐탁지 않았다. 바로 외적인 요인 탓이다.
아무튼. 그럼에도.
미국행이 유력하다. FA 랭킹 최상위권이다. 자세한 조사는 필요하다. 그런 상황이다. 직접 보기로 했다. 국제 담당 부사장 갤런 카와 실무자 등으로 출장팀을 꾸렸다.
이 무렵 오사카 교세라돔(오릭스의 홈)에는 MLB 고위급 인사의 출입이 잦았다. 뉴욕 양키스의 브라이언 캐시먼 GM(단장),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파한 자이디 사장, 시카고 컵스의 제드 호이어 사장 등이 출동했다.
다저스 사장도 그중 한 명이다. 말했다시피 큰 기대는 없었다. 그래도 중요한 선수 아닌가. ‘현장 체크는 해야 한다’는 기본 절차에 가까웠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생긴다. 프기꾼을 매료시킨 장면이 나온 것이다.

프리드먼 사장이 감탄한 장면
경기 전 준비 과정이다. 멀리 외야에서 몸을 푼다. 프리드먼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 야마모토가 캐치볼을 시작한다. 점점 거리를 늘려간다. 그러더니 오른쪽 펜스 앞에서 홈까지 뿌린다. 우리식 현장 용어로 롱토스, 혹은 원투(遠投)라고 부르는 세션이다.
교세라돔은 꽤 큰 구장이다. 좌우측 폴에서 홈까지 100m에 이른다. 좌우중간은 더 멀다. 116m에 이른다. 그러니까 줄잡아 110m 넘는 거리를 던진 것이다.
일단 포지션 플레이어에겐 불가능한 거리다. 어깨가 아주 좋은 외야수 정도라면 모른다. 스텝을 하면서 (앞으로 두어 걸음 나가면서) 전력으로 뿌리면 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노-스텝이었다. 제자리에 서서, 보통의 편한 폼으로 뿌렸다. 그런데 그게 ‘아무렇지 않게’ 홈까지 도달한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 프리드먼 사장이다. 정상급 투수들의 캐치볼을 얼마나 많이 봤겠나. 그런데 그가 깜짝 놀라며, 감탄할 정도였다. 그만큼 부드럽고, 안정적이고, 생생하면서도 매끄러운 포물선이었다는 얘기다.
여기서부터 생각이 바뀐다. 갑자기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다. ‘도대체 저 몸으로, 어떻게 저런 공을 던지는 거야.’ 호기심이 강하게 작동한다.
그러고 보니 몸 풀 때도 이상했다. 큰 가방을 들고 나온다. 거기서 묘한 물건들을 꺼낸다. 요가 매트, 나무 블록, 축구공, 작은 훈련용 창(槍),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는 엉뚱한 동작만 반복한다. 마치 레슬링 선수 같다. 물구나무서기, 백스프링으로 한 바퀴 돌기, 한 손으로 팔 굽혀 펴기…. 공 대신 장난감처럼 생긴 창도 던진다. 옆에서 다른 선수가 뭐라고 한다. 멋쩍은 지 혼자 키득거린다.

접골원에 급파된 스카우트 책임자
프리드먼 사장은 전문가다. 그런데 난생처음 보는 훈련법이다. 아령, 바벨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철저히 멀리한다는 소문이다. 멀리 던지기 캐치볼도 그렇다. 요즘 방식과는 정반대로 간다는 얘기다.
수소문 끝에 스승을 찾아냈다. 뜻밖에도 동네 접골원장에게 배운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야다 오사무라는 70대 노인이다.
프리드먼 사장의 지시가 떨어진다. “가서 한번 알아보고 오라.” 동행한 갤런 카 국제담당 부사장을 급히 접골원으로 보냈다.
원장을 만났다. 온통 뜬구름 잡는 얘기만 듣고 온다.
“제대로 서지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 걸을 수 없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 달릴 수 없다.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 던질 수 없다.”
이게 야다 오사무의 철학이다.
“몸의 밸런스가 전부다. 체중만으로 힘을 생산한다. 공을 던지기 위해서는 600개의 근육이 필요하다. 각각을 10%만 작동시킨다. 그런 다음 우선순위를 정한다. 어떤 불균형이 있는지,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 그걸 깨닫고, 해결하는 과정이 곧 훈련이다.”
온통 아리송한 얘기뿐이다. 우리가 들어도 그런데, 미국인에게는 오죽하겠나. 그런데 무시할 수 없다. 왜? 야마모토 본인의 확고한 믿음 때문이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야다 선생이다.”

스카우팅 리포트 ‘Something Special’
결국 다저스는 동양의 신비로움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야마모토에게 역대 투수 최고액을 안긴다. 접골원장도 함께 계약서를 쓴다. 트레이닝 파트의 스태프로 채용한 것이다. 어엿한 직함도 준다. 경기력 강화 부문의 자문역(Performance Consultants)이다.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96개를 던졌다. 다음날 또 등판했다. 34개를 던지며 우승을 완성시켰다. 올라가지도 않던 팔을 다시 던지게 만들어준 것 역시 야다 자문역이다. 밤새 곁을 지키며 컨디션 회복을 도왔다.
다저스는 굴지의 구단이다. 자산 가치가 77억 달러로 평가된다. 우리 돈으로 12조 원이 넘는 금액이다.
당연히 명문대 출신의 전문가가 각 분야에 포진됐다. 고도의 수학적 통계를 기반으로 팀을 운영한다. 최첨단 장비와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한다. 의외성, 불확실함, 신비로움은 파고들 여지가 없다. 객관적이지 않고, 위험을 초래할 요소일 뿐이다.
그러나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소함이나 다름에 대한 존중을 잊지 않는다. 선입견과 편견을 수정하는 용기를 가졌다. 그 결과가 바로 ‘야마모토’라는 결실이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훈련법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론이다. 갸웃거리게 되는 투구폼이다. 그걸 온전히 받아들였다. 인정하고, 수긍했다. ‘공 1개도 안 던진 투수에게….’ 그런 비웃음도 극복했다.
그 다름, 생소함, 낯섦에 대한 다저스의 생각이다. 당시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이렇게 적혔다. ‘Something Special(뭔가 특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