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 장관 · 대권주자 전부 한 가족…미국 상류사회 정복한 ‘호텔왕 가문’

이민자 가정➞글로벌 호텔재벌 4대 걸친 가문의 영광…국제사회 영향력 확대 예의주시
[사진=콜럼비아 대학교]

글로벌 럭셔리 호텔 ‘하얏트 호텔’과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 상’으로 유명한 미국 재계서열 10위 프리츠커 가문의 행보가 최근 부쩍 분주해진 모습이다.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미국 정계에서의 영향력을 빠르게 늘려 나가고 있다. 국제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미국 정계가 ‘돈에 의한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프리츠커 가문의 국제적 위상은 물론 영향력 또한 갈수록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크라이나계 이민자 가정➞변호사 집안➞호텔왕 가문…3대가 함께 일군 ‘하얏트 신화’

프리츠커 가문의 역사는 가문의 선조인 니콜라스 프리츠커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19세기 미국으로 건너온 우크라이나계 이민자로 당시 흔치 않았던 법률 전문가였다. 덕분에 1세대 이민자임에도 유복한 삶을 영위했다. 니콜라스의 아들 아브람 니콜라스 프리츠커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변호사의 길을 걸었으며 투자를 통해 부를 축적한 가문으로 도약시키는 데 성공했다.

▲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프리츠커 가문의 역사는 3대 때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아브람 니콜라스의 세 아들 제이 프리츠커, 로버트 프리츠커, 도널드 프리츠커 등은 부친이 일군 자산을 기반으로 두 개의 거대 사업체를 설립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은 지금의 프리츠커 가문의 핵심 사업체인 하얏트 호텔이며 다른 하나는 산업 복합 기업 ‘마몬그룹(Marmon Group)’이다. 이들 형제는 각자의 사업적 수완을 발휘해 두 기업을 미국 최고 반열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먼저 장남인 제이는 하얏트호텔의 전신으로 불리는 ‘하얏트 하우스(Hyatt House)’의 경영을 도맡았다. 그는 당시 파격적이었던 대형 아트리움 로비 디자인을 도입해 최고급 호텔 이미지를 구축했다. 해당 로비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하얏트 호텔의 상징으로 평가되고 있다. 건축에 남다른 재능을 지녔던 제이는 로비 디자인 외에도 건축적인 요소에서 다양한 혁신을 시도해 하야트호텔을 미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호텔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건축업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 역시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차남인 로버트는 마몬그룹을 이끈 실무자 스타일의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수백 건의 기업 인수합병(M&A)을 시도해 마몬그룹을 125개의 계열사를 보유한 글로벌그룹 반영에 올려 놓았다. 당시 마몬그룹이 진출한 분야는 철도, 수도관, 전선, 파이프, 밸브, 유조탱크 등 산업의 핵심 기반이 되는 분야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지난 2007년 마몬그룹은 워렌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45억달러(약 4조1000억원)에 매각되면서 프리츠커 가문의 품을 떠났다.

삼남인 도널드는 삼형제 중 가장 혁신적인 경영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형인 제이를 도와 하얏트호텔 실무를 담당자로 활약하면서 하얏트호텔의 글로벌 체인화를 주도했다. 당시 동생의 탁월한 능력을 눈여겨 본 제이는 추후 경영권까지 넘겨줄 계획이었지만 도널드가 40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계획을 현실화시키진 못했다.

4대에서 꽃 핀 프리츠커 가문, 정재·계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장관·대권주자 줄줄이 배출

▲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프리츠커 가문은 4대 시대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명문가문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제이의 장남인 토마스 프리츠커가 가문의 수장이자 하얏트호텔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2012년까지 하얏트호텔 코퍼레이션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한 뒤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으나 여전히 이사회 의장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토마스는 호텔의 운영 방식과 브랜드만 판매해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전략을 통해 하얏트호텔의 글로벌 프랜차이즈화를 성사시켰다.

제이의 차남이자 토마스의 동생인 존 프리츠커 역시 하얏트호텔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는 하얏트호텔 부회장으로 활동하다 따로 독립해 만다라 스파(Mandarina Spa), 버나드 오션(Bernard Ocean), 투로드 호스피탈리티(Two Roads Hospitality) 등 독자적으로 호텔 사업을 전개했다. 이 중 투로드 호스피탈리티가 큰 성공을 거뒀는데 향후 형이 이끄는 하얏트호텔 코퍼레이션에 4억8000만 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제이의 삼남 댄 프리츠커와 외동딸인 지지 프리츠커는 일찌감치 가업 대신 예술계와 인연을 맺었다. 댄은 미국 유명 밴드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다 영화감독으로 변신해 다수의 영화를 제작했다. 지지 역시 영화계와 인연을 맺고 여전히 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제이에겐 또 사남이자 막대 아들인 낸시 프리츠커도 있었는데 그는 20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 프리츠커 가문은 4세대에 들어 미국 정치권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은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악수하는 페니 프리츠커 전 미국 상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프리츠커 가문 5대의 인물들은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 그나마 대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토마스 프리츠커의 장남 제이슨 프리츠커와 존 프리츠커의 장남 애덤 프리츠커 정도다. 제이슨 프리츠커는 현재 프리츠커 재단에서 부의장직을 맡고 있으나, 하얏트 호텔 경영에는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다. 애덤 프리츠커는 ‘어셈블(Assemble)'’이라는 기업을 설립하고 CEO로 활동 중이다.

마몬그룹을 이끌었던 로버트의 자녀들 중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먼저 티와니 엔터프라이즈 CEO로 활약 중인 장녀 제임스 프리츠커는 사실 장녀가 아닌 장남이었으나 성전환 수술을 통해 완벽한 여성으로 거듭났다. 덕분에 그에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트랜스젠더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차녀가 된 린다 프리츠커 역시 독특한 직업을 택했다. 그는 일찌감치 출가해 ‘티벳 수도승’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생인 카렌 프리츠커와 매튜 프리츠커 등도 대외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찍 세상을 떠난 삼남 도널드의 자녀들은 프리츠커 가문을 재계를 넘어 정계까지 아우르는 명문 가문으로 도약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장녀인 페니 프리츠커는 가문의 4대 인물 중 가장 영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과거 가문의 수장이자 사촌 오빠인 토마스는 일찍이 그녀의 영특함을 알아보고 경영권을 물려줄 생각까지 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 제이비 프리츠커는 차기 대권주자로 까지 언급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있다. 바이든 전 대통령과 대화중인 제이비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 [사진=AP/연합뉴스]

그러나 그는 가문의 사업을 뒤로한 채 일찌감치 정계에 입문해 정치인의 길을 걸었고 오바마 행정부에선 제38대 미국 상무부 장관을 역임하며 프리츠커 가문의 영향력을 정치권까지 확장시켰다. 그는 우리나라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상무부 장관 시절 무역사절단을 이끌고 한미 FTA 회의에 참석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 한미 에너지 산업 협력도 논의했다.

페니의 친동생인 제이비(JB) 프리츠커 역시 정계에 진출해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2008년 민주당에 입당한 그는 2019년 일리노이주 주지사에 당선된 이래 거침없는 행보로 단순에 주목을 받았다. 지난 대선에선 해리슨 미국 대통령 후보의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미국 정계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그가 민주당의 유력한 부통령 후보로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차기 대권 주자로의 부상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제이비 역시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CJ대한통운, CJ 슈완스, 수산중공업 등을 포함해 50여곳의 한국 기업이 그가 주지사를 맡고 있는 일리노이주에 사업장을 두고 있다. 주지사는 기업에 각종 세금 감면과 보조금 지급 등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지녔을 뿐 아니라 지역 기업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호텔사업 기반 투자활동 보폭 확대, 재력·권력 동시에 쥔 글로벌 명문家 도약 기대감

▲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프리츠커 가문의 재력은 하얏트호텔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프리츠커 가문이 신탁사를 통해 지주회사인 하얏트코퍼레이션을 지배하고 지주회사가 나머지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는 방식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보고서에 따르면 하얏트코퍼레이션의 주식은 보통주(Class A)와 차등의결권주식(Class B)로 나뉜다. 차등의결권주식의 경우 보통주보다 10배 많은 의결권을 지니고 있다. 총 발행 주식은 보통주 4191만주, 차등의결권주식 5351만주 등이다. 이 중 프리츠커 가문은 전체 차등의결권 주식의 95.8%를 보유하고 있다. 보통주까지 합친 전체 지분율도 53.7%에 달한다.

프리츠커 가문이 지닌 하얏트코퍼레이션 지분은 마론 프라이빗 신탁사(Maron Private Trust)와 프리츠커 가족 신탁사(Pritzker Family Trust)가 각각 22.7%, 31% 씩 보유하고 있다. 마론 프라이빗 신탁사의 경우 수탁자가 현 프리츠 가문의 수장인 토마스 한 명 뿐이다. 프리츠커 가족 신탁사의 경우 수탁자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전부 프리츠커 가문 구성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얏트코퍼레이션은 럭셔리, 프리미엄, 셀렉트, 리조트 등 총 4개 카테고리를 통해 총 30여개의 호텔·리조트 브랜드를 자회사 형태로 소유하고 있다. ‘그랜드 하얏트’, ‘파크 하얏트’, ‘앤다즈’, ‘하얏트 리젠시’ 등이 대표적이다. 또 하얏트 브랜드의 이름을 딴 호텔과 리조트는 전 세계 약 70개국, 1300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랜드 이름만 빌려준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수익구조 역시 탄탄한 편인데 SEC 연간보고서 기준 지난해 하얏트코퍼레이션 순이익은 12억9600만달러(약 1조7000억원)로 집계됐다.

▲프리츠커 가문은 호텔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다양한 산업에 재투자 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하얏트 호텔 전경. [사진=북킹닷컴]

프리츠커 가문은 호텔 사업으로 벌어들인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다양한 투자 활동도 전개해나가고 있다. 프리츠커 가문 소유의 투자회사로는 프리츠커 오게니제이션(The Pritzker Organization), 프리츠커 프라이빗 캐피털(Pritzker Private Capital), 지오로 캐피탈(Geolo Capital) 등이 있다. 프리츠커 오게니제이션은 현 가문 수장인 토마스 프리츠커가, 프리츠커 프라이빗 캐피탈은 앤서니 프리츠커가, 지오로 캐피탈은 존 프리츠커가 각각 CEO를 역임 중이다.

이들 기업은 한 울타리에 있는 만큼 투자 전략은 서로 다르다. 프리츠커 오게니제이션의 경우 장기투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유망 기업 및 사업을 선정해 선제적 투자를 시도하는 식이다. 프리츠커 프라이빗 캐피탈은 사모펀드 회사로 중견 제조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지오로 캐피탈의 경우 호텔과 부동산 투자에 특화돼 있다. 미국 현지 IB업계 관계자는 “호텔 사업이 가문의 뿌리라면 투자 회사는 줄기라고 볼 수 있다”며 “호텔과 투자업으로 재계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고 미국 정계까지 장악한다면 프리츠커 가문은 부와 권력을 전부 가진 세계 최고의 가문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Copyright © ⓒ르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