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발생 40분 전
7회 초다. 홈 팀이 5-1로 앞섰다. 4점 차이는 애매하다. 조금 더 편하게 이기고 싶다.
그런데 상대도 만만치 않다. 2사 후에 도발이 시작된다. 강승호, 윤준호의 연속 안타가 터진다. 1, 2루에 주자가 채워진다. (24일 이글스 파크, 한화 이글스 – 두산 베어스)
1차 처방이 내려진다. 진정 요법이다.
벤치에서 타임을 건다. 투수 코치가 걸어 나온다. 교체 의도는 아니다. 마운드의 주인도 마찬가지다. 류현진(39)은 내려갈 마음은 전혀 없다. 이닝을 끝내겠다. 그런 눈빛이 역력하다.
타자(임종성)와 승부가 재개된다. 4구까지 팽팽하다. 카운트 2-2로, 중립 기어가 걸린다.
문제의 5구 째다. 137㎞ 커터가 바깥쪽에서 꺾인다. 그냥 놔두면 스트라이크다. 어쩔 수 없는 스윙이 출발한다.
타이밍이 어정쩡하다. 애매하게 걸린 타구가 3루 쪽으로 향한다. 땅에 두 번을 튀긴다. 바운드는 꽤 크다.
딱 봐도 평범한 땅볼이다. ‘아웃이다.’ ‘이닝이 끝났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할 때다.
그런데 웬걸. 3루수가 이상하다. 노시환(25)이 주춤거린다. 급기야 후진 기어를 넣는다. 그러다가 결국 사달이 난다. 타이밍을 놓쳤다. 어려운 바운드와 만나게 됐다.
황급히 글러브를 뻗어본다. 하지만 공은 냉정하다. “쌩~” 하고 무시한다. 그러면서 데굴데굴, 좌익수 앞까지 굴러간다.
그 사이 2루 주자는 가속 페달을 밟는다. 3루를 돌아 홈까지 질주한다. 2점째가 올라간다. 스코어는 5-2로 바뀐다.
구장 전체가 술렁인다. 특히 1루 측이 심상치 않다. 홈 팀 응원석이다. 깊은 탄식이 터져 나온다.
공식 기록원도 난감하다. 실책(E)을 줄 수는 없다. 결국 전광판 ‘H’에 불이 켜진다. 어쨌든 안타로 표시된다.

처음 보는 ‘극대노’
그 순간을 다시 보자. 타구가 글러브를 외면했을 때 말이다.
마운드를 주목해야 한다. 투수는 아웃을 직감했다. 투구 직후 껑충껑충 뛴다. 마치 승리의 세리머니라도 할 것 같다. 그런 예비 동작이다.
그런데 곧 사태를 깨닫는다. 추가 1실점, 그리고 계속되는 위기…. 결정적인 것이 또 있다. 교체다. 이제는 공을 넘겨야 한다. 한계점이 된 것이다. 벌써 104개째 투구였다.
사실 무리에 가깝다. 100개를 넘긴 것 말이다. 그래도 7회를 마치고 싶었다. 더 폼 나게, 더 특별하게 이날을 장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산됐다. 바로 코 앞에 두고 말이다.
그의 감정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직후의 반응에서도 그대로 표현된다.
공이 빠지는 순간이다. 얼굴 표정이 일그러진다. 뭔가 큰 포효도 들린다. 흔한 말로 엄청난 ‘빡침’이 느껴진다. 이른바 ‘극대노’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일찍이 그의 이런 반응은 본 적이 없다. 팬들조차도 놀랄 지경이다.
원인 제공자는 어떻겠나. 본래는 담이 큰 플레이어다. 웬만한 삼진, 병살타, 실책에도 기죽는 법이 없다.
그런데 이날은 다르다. 벌써 눈치를 슬슬 본다. 플레이 직후 슬쩍 곁눈이 투수 쪽으로 향한다. 상황을 살핀다. 몸 둘 바를 모르는 얼굴이 된다.
무수한 시선이 쏟아진다.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옮긴다. 유격수(심우준) 곁으로 간다. 두런두런 넋두리를 나누는 모습도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 타임이 걸린다. 코치가 또 나온다. 이젠 어쩔 수 없다. 투수 교체는 기정사실이 됐다. 아웃 1개를 남기고, 공을 넘겨줘야 했다.

덕아웃의 가시방석
어찌어찌. 7회 초는 넘어갔다. 다음 투수(김종수)가 추가 실점을 막아냈다. 5-2 우세는 유지된다.
공수 교대다. 야수들은 덕아웃으로 돌아간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가시방석이다. 잠시 후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다. 둘 사이에 대화는 없다. 대신 눈빛 교환이 이뤄진다.
일단 원인 제공자는 어쩔 줄 모른다. 엉거주춤한 상태다. 반쯤 허리를 숙인다.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는 것 같다.
그러자 대선배가 마음을 연다. 손으로 툭 친다. “됐어, 인마.” 정도의 느낌이다.
또 다른 해석도 나온다. 같은 장면에 다른 말 풍선을 상상한다. 끝내 안타까웠던 일부 팬들이다. 자신들의 원망과 안타까움을 대입시킨다.
시환 “형님, 죄송해요.”
현진 “비켜, 인마.”
그리고 뒤에 있는 달 감독에게 간다. “수고했다”는 인사를 받기 위해서다.
물론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경기 후 인터뷰 때다. 진실이 밝혀진다.
기자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인데, 7회 실점 때는 아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현진 “일단 코치님이 믿음을 주셨는데(7회를 끝내도록), 실점을 해서 그 부분이 아쉬웠다. 나중에 시환이가 사과를 하길래, 엉덩이를 툭 쳐줬다. ㅎㅎㅎ”
또 다른 목격담도 전해진다.
문제의 3루수는 여기저기에 용서를 빌었다. 심지어 ‘형수님’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류현진의 아내 배지현 씨에게도 미안함을 전했다는 보도다.

200승 기념구를 머리에 ‘콩’
자칫 큰 일 날 뻔했다. 이글스는 추가점에 실패했다. 5-2에서 9회 초를 맞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 고비가 찾아온다.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는다. 1루 주자까지 들어가면 망한다. 대기록은 이번에도 날아간다.
어디 그뿐인가. 시즌 첫 시리즈 스윕도 날아간다. 5할 회복을 향한 몸부림도 찬물을 뒤집어쓴다.
그런 위기가 닥친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이다.
나인들은 덕아웃 1열에 집결한다. 200승 후보자도 마찬가지다. 다들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공 하나하나에 예민하다. 조마조마. 놀람과 한숨이 몇 번이나 반복된다.
어찌어찌. 아무튼.
아웃 3개에 불이 들어온다. 비로소 이글스 파크에 평화가 찾아온다. 승부 끝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자리를 지킨다. 손에, 손에 문구가 들렸다. ‘200’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카드다.
주인공의 모습이 비친다. 짐짓 엄숙한 표정이다. 무척 진지한 얼굴이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한다. 결국 입꼬리가 올라간다.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그라운드로 나간다. 수고한 나인들을 환영하기 위해서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200승을 위해서. 함께 뛴 동료들이다.
하나하나 인사를 전한다. 그중에는 쥐어박고 싶은 ‘동생’도 있다. 능청스럽게 웃으며 다가온다. “형님” 하면서 안긴다.
어쩔 수 없다. (장난으로) 잠깐 헤드락을 건다. 그리고 200승 기념구를 높이 쳐든다. 그걸로 말썽꾸러기에게 꿀밤을 먹인다. 다행히 전력투구는 아니다. 그랬다면 부상자 명단에 오를 것이다.
힘을 완전히 뺐다.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살포시 ‘딱밤’을 먹여준다. 아마도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 목표에 대해서) 내 개인적인 부분은 다 필요 없다. 우리 이글스가 우승만 하면 된다.” (경기 후 인터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