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도 휴대전화도 포기한 마을

휴대전화도 와이파이도 사용할 수 없는 마을이 아직도 존재한다니, 믿어지시나요? 여러분이 이 마을에서 생활하신다면, 어떠실 것 같나요? 이 마을에서 생활하실 수 있으신가요?

사실 10여 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 없는 세상에서 살았으니, 가능할 것도 같아요. 하지만 10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는 게 일상이 된 만큼,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는 환경은 꽤 답답할 것 같네요.

그런데, 실제로 와이파이도 휴대전화도 쓸 수 없는 마을이 존재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것도 미국에요! 바로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 위치한 그린뱅크(Green Bank) 마을이에요.

국가 전파 제한 구역(National Radio Quiet Zone, NRQZ)은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린뱅크 천문대와 슈가 그로브 역 사이에 위치한 약 34,000㎢ 크기의 주황색 직사각형 지역. 출처: TUBS, National Radio Astronomy Observatory

그린뱅크 마을, 왜 특별한가요?

그린뱅크 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1958년 미국 정부에 의해 ‘국가 전파 제한 구역(National Radio Quiet Zone, NRQZ)’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에요. 전파 신호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정된 특별 보호 구역으로, 이곳에서는 전파를 방출하는 대부분의 전자기기 사용이 엄격히 제한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곳에 세계에서 가장 큰 움직이는 전파 망원경이 있기 때문이에요. ‘로버트 C. 버드 그린뱅크 전파망원경(Robert C. Byrd Green Bank Telescope, GBT)’으로 불리는 이 망원경은 구경이 1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합니다.

그린뱅크 전파망원경은 우주에서 오는 아주 미세한 전파 신호를 포착하는데요, 이 신호들은 매우 희미하고 미약해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많은 전자기기들이 같은 종류의 전파를 방출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휴대전화, 와이파이, 라디오, 전자레인지, 심지어 TV 같은 가전제품도 전파를 사용합니다. 이 기기들이 내뿜는 전파는 우주에서 오는 중요한 신호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린뱅크 마을에서는 전자기기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움직이는 전파 망원경인 구경 100미터 그린뱅크 전파 망원경. 출처: National Radio Astronomy Observatory

전파망원경과 전자기기, 어떤 관계가 있냐면요,

전파망원경은 전파라는 빛을 사용해 우주를 관측합니다. 이 전파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기기에서 사용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휴대전화 신호나 와이파이, 심지어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전파도 우리가 실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것이죠. 문제는 그린뱅크의 전파망원경이 관측하는 100 MHz – 116 GHz 주파수 대역에 이런 생활 전파들이 포함된다는 점이에요.

만약 이곳에서 휴대전화나 와이파이를 사용하게 되면, 전파망원경이 우주에서 오는 신호를 잘못 읽거나 방해받을 수 있어요. 와이파이 신호는 멀리서도 관측을 방해할 수 있어요. 얼마나 큰 영향을 받냐면요, 공유기에서 약 1 km 떨어진 곳에서도 여전히 와이파이 신호가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에서 오는 신호보다 무려 만 배나 더 강하답니다. 블랙홀이 내보내는 전파 신호보다 와이파이 신호가 만 배나 더 강하다니, 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없는지 감이 조금 오시나요?

그린 뱅크 천문대가 위치한 국가 전파 제한 구역의 넓이는 약 34,000 km²로, 가로 세로 길이가 약 180 km 정도인 직사각형 영역이에요(첫 번째 사진에서 주황색 지역). 와이파이 공유기로부터 약 90 km 떨어진 곳에서는 와이파이 신호가 0.15배 정도로 약해져요. 망원경으로부터 약 90 km 이상 떨어진 곳에서는 우주로부터 오는 신호가 와이파이 신호에 의한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마치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공부할 수 있도록 떠들지 않는 것처럼 국가 전파 제한 구역을 설정해서 과학자들이 우주를 잘 관찰할 수 있도록 전파 방해를 최소화하는 거랍니다.

긴급 상황 시에는 어떻게 연락하냐고요?

그린뱅크 마을에서는 일반적인 휴대전화와 인터넷 사용이 제한되어 있지만, 긴급 상황에서는 예외적으로 통신이 가능해요. 주민들은 유선 전화 시스템을 사용하여 119와 같은 긴급 전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요. 이러한 유선 시스템은 전파망원경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특별히 설계되어 있으며, 긴급 상황 시 가족이나 응급 서비스와 연락할 수 있도록 보장합니다. 또한, 마을 내에는 공용 통신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주민들이 필요한 경우 신속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답니다.

주민들의 생활은 어떨까요?

그린뱅크 마을 주민들의 생활은 현대 사회와는 사뭇 다를 거예요. 이분들은 자발적으로 휴대전화, 와이파이, 심지어 전자레인지까지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어요. 전자기기의 사용이 제한된 환경 속에서, 이분들은 사람 간의 직접적인 소통과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 소금이나 설탕이 떨어졌을 때, 옆집에 방문해서 얻는다고 해요. 우리는 바로 새벽배송을 시킬 텐데 말이에요.

올해 4월에 그린뱅크 천문대에 방문했었는데요.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천문대에서도 물론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데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는 편이에요. 천문대에서 일하시는 과학자분들과 직원분들뿐만 아니라 그린뱅크 주민들 모두 불편함을 감내하면서도 과학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린뱅크 천문대에는 그린뱅크 망원경뿐만 아니라 14 m부터 100 m까지 다양한 크기의 전파 망원경이 있어요. 그린뱅크 마을 주민들과 과학자들의 배려와 노력 덕분에 1957년 그린뱅크 천문대가 설립된 이후 중요한 과학적 발견들이 이루어졌어요. 하나의 예로, 2008년에는 우주에서 최초로 생명체의 기초가 되는 분자를 발견했어요. 이 발견은 생명체의 중요 구성 요소인 단백질, 지질등의 재료가 될 수 있는 분자를 처음으로 확인한 것으로,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과학을 위한 이분들의 희생은 단순한 생활의 불편을 넘어, 인류의 과학적 진보를 위한 중요한 기여로 여겨집니다. 이분들은 본인의 생활이 우주 연구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묵묵히 그 불편을 감내하며, 망원경이 우주 깊은 곳에서 오는 신호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우리가 불편을 감수함으로써 우주의 신비를 밝혀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입니다"라는 그분들의 마음은 과학을 위한 헌신과 배려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그린뱅크 주민들의 일상은 과학과 함께하며, 이분들의 희생은 더 넓은 세상을 향한 창으로 이어지고 있답니다.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과학자이지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Copyright © 우주툰(@uju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