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뉴욕으로

한겨레21 2024. 10. 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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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의 플레이리스트]그림책으로 스타트업 도전한 박수경의 플레이리스트
바바북스에서 펴낸 어린이 명화책 ‘뭐야? 명화!’ 시리즈. 바바북스 제공

‘엄마가 되니 창업밖에 없더라'라는 인터뷰(제1455호)로 그의 첫걸음을 소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인터뷰를 요청하게 될 날이 빠르게 찾아왔다. 영아기에 초점을 둔 책으로 시작해 낱말 카드, 명화 전집으로 영역을 넓힌 어린이 예술서적 출판사 바바북스는 1년 만에 대형 출판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했다. 바바북스는 10년차 박수경 아트디렉터, 35년차 이희재 북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출판사다. 둘은 모녀 사이다. 최근 사업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박수경 바바북스 대표를 다시 만났다.

“정말 힘들었어요.” 지난 1년을 회고하며 박 대표가 던진 첫마디였다. 저출생 국가인 한국에서 아동 출판업으로 스타트업을 한다는 건 예상보다 험난한 길이었다.

―‘엄마 창업가'에서 이제는 정말 대표님이 됐어요!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바바북스는 고객들의 사랑을 받아가며 성장했지만, 초기 제작비가 늘 큰 부담이었어요. 제조업 특성상 큰돈을 들여 제작비를 납부했는데, 비수기가 겹치면 사업이 꼬이기 쉬워요. 시장에서 정말 좋은 신호가 많았거든요. 한번은 큰 고비가 있어서 예물로 받은 가방을 팔아야 하나 했는데 남편이 반대하더라고요. ‘좋지 않은 습관이 될 것 같다'고 만류했어요. 맞는 말이에요. 그렇게 도처에 널린 유혹과 리스크를 피하며 살얼음판을 걸어왔죠. 그때 마침 동아줄처럼 스타트업 대상 창업기획사인 프라이머에서 하는 배치 프로그램(초기 창업 투자를 위한 창업 경연 프로그램) 1차에 합격해 대면 발표를 하게 됐어요. 최종 프라이머 클럽(프라이머가 투자하는 기업)에 선정되지 못했지만, 다행히 예비 멘토링 팀에 뽑혔어요.”

―멘토링 과정은 어땠나요?

“멘토링 미팅을 갈 때면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창업가들을 마주치기도 했어요. 저도 뒤질세라 인공지능(AI) 해커톤에 도전했죠. 대회 기간 내내 인기투표 1위를 유지하니 ‘혹시 내가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하는 기대도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발표날, 다른 팀들과 비교하며 제 부족함을 실감했죠. 그래도 프라이머 파트너 한 분이 저희에게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이렇게 좋은 콘텐츠는 오래가야 한다'며 도와주시기로 했어요. 마치 제 고민을 꿰뚫어 본 것 같은 제안에 미팅 중 눈물이 났어요. 한 달간 신중히 조건을 검토하고 계약을 마무리할 때 ‘꼭 성장해서 윈윈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돈 벌어달라는 게 아니라, 좋은 콘텐츠로 사회에 기여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아직도 가슴을 울려요.”

유행하는 기술로 포장해야 투자를 받는 창업 생태계에서, 박수경 대표는 아날로그 출판으로 승부를 봤다. 그리고 바바북스 콘텐츠의 가치를 알아본 투자자를 만나 이제 장기적인 그림을 함께 그려나갈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바바북스와 함께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아마 모든 출판업자가 설렜을 거예요. 장르는 다르지만, 저 또한 그랬어요. 바바북스도 우리의 콘텐츠가 세계적인 무대에 서는 모습을 꿈꾸고 있어요. 뉴욕 현대미술관 또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아트숍에 우리가 만든 키즈 아트북이 진열되고, 바바북스가 개발한 디자인물이 건물 전체에 전시된 모습을 상상하곤 해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보며 웃는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요. 그런 모습이 많아질수록, 나아가 저출생 문제에도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치며 박수경 대표는 휴대전화에서 프랑스의 그래픽 디자이너 장 줄리앙 작가와 허재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함께 기획한 전시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이미지를 휴대전화에 품고 사는 그를 보며, 바바북스의 꿈이 곧 현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진 컬처디렉터

박수경 제공

박수경의 플레이리스트

❶ 넷플릭스: 일세 크로퍼드 편

https://youtu.be/5f7fHHEr_NA?si=QLRFx3JsM0zwjG5W

영국 인테리어 디자이너 일세 크로퍼드는 공간의 아름다움에만 치중하지 않고 ‘편안하고 에너지를 주는 공간’을 만든다. 제품도 다르지 않다. 최고의 디자인을 우선으로 하지만, 그 안엔 실용성과 지속 가능성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좋은 디자인이란 그런 것이다.

❷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그의 제자인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

https://youtu.be/3NYfrht6TU8?si=fcR8qYWdIaerzT9d

‘갑자기 웬 피아노 레슨 영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영상에는 인생에 대한 조언이 들어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힘을 잘 빼는 것의 중요성’이다. 랑랑의 기세 넘치는 연주를 스승은 만류한다. ‘너무 급하다. 강하게 치는 부분에서 왜 강해야 하는지 생각해봤느냐.’

❸ 이우환 화백 인터뷰 영상

https://youtu.be/frXfV4usVOI?si=ingGhpFnH0ahgDhc

거장의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짧은 영상으로 담았다. 미술사 강의를 할 때 늘 보여주는 영상 중 하나다. ‘다른 차원으로,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눈을 뜨게 만드는 게 아티스트 역할’이라는 이우환 화백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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