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FE 대표 영입…신동국 최대주주 힘 보여줬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한미약품 대주주인 신동국 회장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사진=주샛별 기자

올해 한미약품의 새 수장으로 사모펀드(PE) 소속인 황상연 대표가 낙점됐다. 공식적으론 4자 연합의 합의로 추천했지만, 사실상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29.8%)이 주도한 인사다. 신 회장이 본인과 대척점에 있었던 박재현 대표의 교체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업계 안팎에선 모녀 측 핵심인물인 박 대표가 물러나게 된 만큼, 향후 한미약품에 신 회장의 입김이 더욱 강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외부인사 첫 수장…신동국 회장 영향력 부각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2일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와 핵심 계열사 한미약품은 이사회를 개최했다. 회사는 박재현 대표를 교체하고 황상연 HB인베스트먼트 PE부문 대표를 한미약품의 대표 후보로 내정했다.

황 대표는 서울대 화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과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 최고투자책임자(CIO), 종근당홀딩스 대표를 역임했다. 그는 신 회장의 추천을 받은 인물로 알려졌다. 최근 박 대표가 연임을 그에게 부탁한 사실이 밝혀진 것처럼, 대표이사 선임에는 신 회장의 의중이 크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4자연합(송영숙·임주현·신동국·라데팡스)’이 공동의결권으로 묶인 가운데 사실상 신 회장이 이번 인사를 밀어붙였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한미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가 대표직에 오르게 된 것은 처음이다.

박 대표는 최근까지도 임직원들과 함께 신 회장이 압박한 ‘저가 원료’, ‘성추행 비호’, ‘R&D 비용 감축’에 대해 피켓 시위 등으로 저항했으며, 한미약품의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의 뜻을 지키기 위해 힘써왔다. 이에 송 회장도 “누구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사과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며 “대주주는 경영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견실한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오너일가에서 30여년이 넘게 오랜 호흡을 맞춰온 박 대표를 퇴진시킬 이유가 없었다는 점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외부 출신 안 된다더니…입장 바꾼 신동국 회장

황 신임 대표의 내정은 과거 신 회장의 한미약품그룹 경영참여 논리와 대비된다. 과거 그는 모녀 측과 형제 측을 넘나들며 내부출신의 경영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지난 2024년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당시, 송영숙·임주현 모녀 측이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하자 결정적인 순간에 임종윤·임종훈 형제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회사의 정체성을 모르는 OCI라는 외부 세력이 경영을 장악하는 것은 임성기 회장의 뜻이 아니다"라는 취지를 밝혔다.

신 회장은 이후 오너일가의 상속세 문제가 불거지면서 임종윤·임종훈 형제 측이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KKR 등에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처분해 자금을 확보하려고 하자 "행여나 아버지가 물려준 회사의 소중한 지분을 값을 많이 쳐주겠다고 유혹하는 사모펀드에 팔아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송 회장의 의견에 동조하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 회장 본인은 정작 한미약품 대표이사 자리에 외부 출신이자 사모펀드인 HB인베스트먼트PE 부문 황 대표를 수장으로 앉힌 건 가장 역설적인 장면"이라고  말했다.

오너 서포터에서 플레이어로...R&D 구조조정 본격화

신 회장은 그간 장남인 임종윤 북경한미약품 동사장의 지분을 넘겨받으며 지분율을 30% 가까이 확대해왔다. 지분율이 높아질수록 그의 경영 개입도 활발해졌다. 신 회장은 국산 원료로 사용됐던 고지혈증 치료제인 ‘로수젯’에 대해 중국산 저가 원료를 써야한다고 압박했고, 이에 따라 대학약사회까지 원료 변경에 대한 반박 입장문을 냈다. R&D 역량을 중심으로 제품 신뢰도를 최우선으로 했던 한미에 이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신약 개발은 임상부터 상용화까지 10~20년이 소요되는 장기전인 만큼, 여든을 바라보는 신 회장(76)이 당장의 수익성을 쫓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실제 그는 제약 전문성과도 무관한 한양정밀을 운영 중이다. 시장에서는 신 회장의 추천으로 황 대표가 한미약품 수장에 앉게 된 만큼, 두 사람이 뜻을 함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향후 한미약품이 불확실한 신약 창출에 천문학적 R&D 비용을 쏟아넣는 대신, 유망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기업들에 동시다발적으로 투자해 리스크를 분산하고 수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런 과정에서 성과가 낮은 회사의 지분은 재매각할 수 있다. 다만 제약사의 이 같은 사업 전략은 수익성만을 쫓는 회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통상 조직의 수장이 바뀌면 책임자들이 교체되는 일은 흔한 일이다. 황 대표를 중심으로 새로운 라인업을 구축할 수도 있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이미 글로벌 빅파마에서는 해당 투자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들이 많다”며 “창업주의 기업 정신과는 반대될 수 있지만 이러한 방식도 회사를 운영하는 하나의 방향이지 않겠냐”고 말했다.

12일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에서 임직원들이 신동국 회장을 상대로 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주샛별 기자

주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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