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라”... 추상에 삶을 새긴 조영동 화백

강렬한 색감과 붓질로 인상적인 작품을 남긴 빈센트 반 고흐. 그는 평생 불안정한 정신 상태와 고독 속에서 살았다고 하죠. 이를 통해 작품 속 소용돌이치는 하늘과 생생한 빛이 내면의 투쟁과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걸 유추해볼 수 있는데요.
이처럼 에술가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일은 작품 속에 담긴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격동의 역사를 살아낸 한국의 예술가들 역시, 작품 속에 그들의 삶과 시대적 고뇌를 담아냈습니다.
그 가운데 최근 활발하게 조명받고 있는 한국 추상미술 2세대 조영동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조영동 작가는 충북 음성 출신으로 지난 6일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렸습니다.

오픈을 앞둔 전시장에는 한 여인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눈에 슬픔이 가득하셨어요. 웃고 있는 사진인데도 눈은 슬퍼요.”
그는 다름아닌 조영동 작가의 셋째 딸, 조윤신 씨. ‘많은 사람이 보고 희망이 될 수 있는 곳에 자신의 그림을 기증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애써온 지 수 년째. 고향에서 열린 그의 첫 전시를 보기 위해 스페인에서 날아온 것입니다.

이번 충북문화관 기획전에서는 유족이 소장한 유작 중 50여 점을 선정해 공개됐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은 조 화백이 후학을 양성한 성신여대에 기증됐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8일 성신여대 박물관에서도 회고전 ‘조영동, 다시 성신에서’가 개막했습니다. 서울과 충북에서 동시에 조영동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죠.

조영동 작가는 평생을 추상 작업에 천착한 작가입니다. 일찍이 미국 미술계의 인정을 받은 조 화백은 휴스턴 대학의 교수로 초청받아 가게 됩니다.
‘그때 거기 계속 계셨어야 되는데’ 딸을 포함해 세상 사람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는 성공과 명예로 이어지는 길을 두고 귀국을 선택했습니다. 미국 생활에서 겪은 인종 차별과 불평등 때문이었습니다.
“흑인이 크락션을 두 번 울리니까 앞 차에 타고 있던 백인이 와서 총으로 탕 쏘는 걸 아버지가 보신 거예요. 아버지는 이런 곳에서 예술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셨대요. 견딜 수가 없는 거죠.”
딸 윤신 씨가 기억하는 아빠의 변에서 그의 타고난 성품이 읽힙니다.

윤신 씨는 “아버지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며 “항상 옆에 있는 사람들을 챙기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옷이라도 벗어주고 와서 엄마한테 혼도 많이 나셨다”고 회상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조 화백은 화업에 전념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지성인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는 고뇌와 고통 속에서 무수히 파내고 긁어낸 흔적들로 캔버스를 가득 채웠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빠 이 그림은 뭐야 그랬더니 저한테 손과 발에 이렇게 물감을 묻히고 뛰어놀으라고. 그러고 캔버스를 보여주면서 ‘이게 예술이야’, ‘네가 생각한 걸 캠퍼스에 이렇게 옮기는 게 예술이야’ 그렇게 말씀하셨던 게 기억이 나요.”
딸이 기억하는 맨발의 화가는 ‘예술’이 인간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1998년 성신여대를 퇴직할 때까지 미술 교육에 헌신한 이유입니다.

‘아버지는 여성의 사회 진출과 남녀평등을 항상 강조하셨고 특히 아버지 자신의 내부에 있는 남성우월 주위의 모순을 분석하시며 차세대에 이것들을 어떻게 변신 적응해야 할지 항상 고민하셨던 것 같다.’
조영동 화백의 셋째 딸 조윤신의 글 중
조 화백에게는 중요한 이력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한국가톨릭 미술협회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성화를 제작한 것인데요.
10대 시절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가 되었고, 그의 모든 작업에는 사랑, 생명 등 카톨릭 사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최근 대중에 공개된 수십여 점의 에케호모(Ecce Homo, 라틴어로 ‘이 사람을 보라!)’는 그의 삶과 예술, 신앙을 아우릅니다.
특히 딸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은 이후, 그는 슬픔과 절망, 인간의 한계를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죽음보다 삶이 어렵고 구상보다 추상이 어렵다”
‘절망의 끝자리에서도 희망의 빛으로 온 힘을 다해 달려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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