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이 아니라 역사 싸움” 안세영, 단일 시즌 10승 눈앞, 호주오픈 8강 진출.

세계 여자 단식 무대를 지배해온 안세영의 시계는 호주 시드니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호주 시드니 올림픽파크 콰이 아레나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500 호주오픈 여자 단식 16강에서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은 대만의 둥추퉁(59위)을 33분 만에 2-0(21-7, 21-5)으로 제압하며 8강에 안착했다. 전날 32강에서 셔나 리를 상대한 경기처럼, 이틀 연속 상대에게 10점 미만만 허용한 압도적 퍼포먼스였다. 단순한 전력 차이가 아니라 코트 전반을 지배하는 ‘클래스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1게임 초반부터 흐름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1-1 이후 연속 5점을 가져가며 일찌감치 주도권을 잡은 안세영은 둥추퉁이 변칙적인 공격 패턴으로 템포를 흔들려 할 때마다 수비 각도와 길이를 바꿔 대응하고 역공의 출발점으로 전환했다. 14-6에서 다시 점수 차를 벌리며 21-7로 마무리한 첫 세트는 사실상 경기의 흐름을 보여주는 예고편이었다. 2게임 역시 초반 1점을 내준 뒤 연속 9점을 가져가며 순식간에 승부를 확정했고, 19-3까지 벌어진 격차는 이날 경기의 본질을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32강에서 셔나 리를 29분 만에 꺾었을 때도 많은 이들은 “가벼운 몸풀기” 정도로 의미를 축소하려 했지만, 16강에서도 같은 흐름이 반복되자 시선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상대가 약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안세영이 ‘리듬을 완성하고자 한다’는 태도, 시즌 막판을 향한 국가대표의 집중력, 그리고 스스로 설정한 기준을 더 높이려는 의지가 동시에 드러났다. 긴 랠리에서의 볼 관리, 순간 스피드, 코트 전체를 100% 활용하는 각도, 그리고 상대의 멘탈까지 흔드는 템포 조절은 세계 1위의 경기술이 절정에 다다랐음을 보여줬다.

안세영이 호주오픈을 이렇게 시작부터 가볍게 제압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재 그는 이미 올 시즌 말레이시아오픈, 인도오픈, 전영오픈, 인도네시아오픈, 일본오픈, 중국마스터스, 오를레앙마스터스, 덴마크오픈, 프랑스오픈까지 9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23년에 자신이 세웠던 한 시즌 최다 우승 기록(9회)에 도달했고, 이제는 여자 선수 최초의 ‘단일 시즌 10관왕’ 달성이 눈앞에 있다. 즉, 이번 대회는 단순한 일정이 아니라 기록의 문턱을 넘어서는 결정적 무대다.

더불어 이번 대회 환경은 안세영에게 유리하게 흐르고 있다. 세계랭킹 2~5위를 차지한 왕즈이, 한웨이, 천위페이 등 중국 선수들은 중국 전국체육대회 참가로 이번 대회를 불참했고,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 역시 구마모토 마스터스 일정으로 빠졌다. 세계랭킹 1~5위 선수 중 오직 안세영만 시드니 코트에 서 있는 상황, 자연스럽게 대회 구도는 ‘안세영 독주 체제’로 재편되었다.

그나마 결승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상대는 2번 시드 푸트리 쿠수마 와르다니(7위·인도네시아) 정도라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상대 전적을 보면 이마저도 큰 변수가 되기 어렵다. 와르다니, 툰중, 인타논, 미야자키 등 이번 대회에 남아 있는 주요 경쟁자들과의 기록은 대부분 압도적 우위다. 즉, 이 대회에서 변수라고 부르기엔 상대들의 체급 자체가 다르고, 이들은 코트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부담을 안고 시합을 시작한다.

대회 측 역시 이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다. 호주오픈 조직위와 BWF 공식 채널은 개막 전부터 안세영을 전면에 내세우며 홍보했다. “막을 수 없는 안세영이 시드니로 온다”, “그녀가 코트에 서는 순간 에너지가 달라진다”는 문구는 물론, 경기 전 관중석에서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까지 따로 포착해 홍보에 활용할 정도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어차피 이번 대회의 주인공은 안세영”이라는 글로벌 공감대를 반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세영 자신이 이 모든 기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랑스오픈 우승 이후 약 3주간의 재정비 기간을 거친 그는 호주오픈에서 마치 새 시즌을 여는 것처럼 날카로운 집중력으로 코트에 들어섰다. 두 경기 모두 10점 미만 실점이라는 스코어는 우승 의지를 넘어,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준다.

이제 안세영의 앞에는 세 가지 목표가 놓여 있다. 첫째, 단일 시즌 10회 우승이라는 여자 단식 최초 기록. 둘째, 12월 월드투어 파이널에서의 재도전. 셋째, 남자 배드민턴 레전드 모모타 겐토가 보유한 단일 시즌 11승(남녀 통틀어 최다)과의 어깨 나란히 하기다. 올림픽·세계선수권·월드투어 파이널을 모두 제패한 선수로서, 이 기록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를 정의하는 위업에 가깝다.

여전히 대회는 진행 중이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시드니에서의 이번 여정은 단순한 대회 참가가 아니라 역사로 나아가는 과정이며, 우리는 지금 그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다. 안세영은 그저 ‘출전 의무’를 수행하러 시드니에 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대를 또 한 번 증명하러 코트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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