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의 찬란한 유산, 빈미술사박물관을 거닐다

조회 1772025. 4. 2.
한국인에게 빈미술사박물관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이나 런던의 영국박물관만큼 익숙하진 않지만, 그 위상은 다른 미술관과 비교해 보았을 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서양미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이곳의 소장품 가운데, 반드시 감상해야 할 대표 작품을 꼽았다.
ⓒshutterstock

빈미술사박물관의 건설자, 프란츠 요제프 1세
19세기 개관한 빈미술사박물관에서는 서양 예술의 열정적인 후원자였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빈미술사박물관 건축을 명한 이는 1848년 오스트리아 황제가 된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란츠 요제프 1세다. 그는 1857년 도시 빈의 정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컬렉션 전체를 보관하고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계획했다. 빈미술사박물관은 궁전, 성과 같은 기존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것이 아닌, 애초에 박물관을 위해 건축되었다는 점에서 19세기 이전 개관한 유럽의 다른 미술관들과 차별점을 보인다. 그만큼 예술에 대한 황제의 열의는 대단했으며 이는 DNA 속에 각인된 선조들의 것이기도 했다.

빈미술사박물관을 만든 프란츠 요제프 1세는 합스부르크 왕가 역사상 최장기간 제위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비록 제국의 황혼기에 황제가 되었지만, 세기말까지도 자신의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그러나 시민사회로 향하는 시대의 흐름과 불행한 가족사는 그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황제는 첫눈에 반한 바이에른 공주 엘리자베트와 결혼했지만 부인과 어머니의 고부갈등은 커져만 갔고, 엘리자베트 황후는 해외여행을 다녀온다며 수시로 자리를 비웠다. 할머니 손에 엄격하게 자란 아들인 루돌프 황태자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고, 그는 결국 1889년 내연녀와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연이어 9년 뒤, 황후는 스위스 여행을 하던 중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사망했다. 가족을 잃은 황제는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차기 후계자로 낙점했지만, 조카 역시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황제정을 반대하는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당했고, 황제는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유럽의 동맹국들이 참전하면서 결국 이 일은 1차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와 합스부르크의 중심지 빈과 합스부르크의 영광이 담긴 빈미술사박물관은 묘하게 프란츠 요제프 1세와 그의 시대를 닮았다. 그들의 시선은 다소 과거지향적이고, 빛났던 과거를 쫓은 만큼 우울감과 좌절이 배어 나온다. 그러나 근대와 현대, 제국과 공화국, 전통과 혁명 사이의 모순은 19세기 말에 빈의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을 세계와 자신에 대한 성찰로 이끌었고,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클림트, 쇤베르크 등 대가들을 짧은 시기에 한 공간에서 대거 배출하는 토양이 되었다. 이처럼 황제가 탈바꿈시킨 빈과 빈의 예술품들은 영원히 살아있는 과거가 되었다.

프란츠 요제프 1세. ⓒwikipedia

합스부르크의 컬렉터들
합스부르크는 16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한 거의 전 유럽을 통치했을 정도로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고, 오스트리아의 정체성과 문화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무엇보다 프란츠 요제프 1세와 같이 이 가문은 ‘서양미술사’ 속 거장들의 대표적인 후원자로서 예술에 진심인 사람들이기도 했다. 따라서 빈미술사박물관을 말하기에 앞서 합스부르크 가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컬렉션이 곧 박물관의 컬렉션이기 때문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들은 수집품을 보관하기 위해 공간을 따로 마련할 정도로 정치 못지않게 예술에 열성적이었다. 황제들은 회화, 공예품, 광물, 등 종류의 구분 없이 귀한 사물들을 모았는데, 루돌프 2세(재위 1576-1612)는 본격적으로 수집에 박차를 가한 대표적인 황제다. 그는 정치에 관한 관심도, 수완도 부족하여 무능력한 왕으로 낙인찍혀 동생 마티아스(재위 1612-1619)에게 왕위를 빼앗긴 인물이지만, 동시에 열렬한 예술애호가로 알브레히트 뒤러, 피터르 브뤼헐 등 당대 최고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했으며 지금까지도 독특한 상상력으로 이목을 끄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이들의 작품은 빈미술사박물관에 현재까지 소장되어 있다. 17세기 스페인계 합스부르크인 펠리페 4세(재위 1621-1665) 역시 열성적인 예술애호가로 스페인 바로크 미술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있게 한 장본인이자, 유럽의 미술작품을 스페인으로 가져와 스페인의 예술 발전에 공헌하였다. 그의 소장품은 현재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뿐만 아니라, 빈미술사박물관에도 상당수 소장되어 있다.

빈미술사박물관 회화관 컬렉션 구성의 상당 부분은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의 공이 크다. 그는 1647년부터 1656년까지 9년간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으로서 브뤼셀에서 활동하며 무려 1,400여 점이 넘는 회화작품을 수집하여 빈으로 왔다. 대공은 틴토레토, 베로네세 등의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의 작품과 더불어 17세기 플랑드르 지역의 다양한 장르화를 수집했는데, 그 컬렉션의 수준과 종류가 어느 때보다도 다채로움을 자랑한다. 합스부르크 유일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오스트리아 왕 재위 1740-1780)의 시대에 그려진 궁정 초상화 역시 빈미술사박물관 곳곳에 전시돼 있다.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면서도 예술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던 합스부르크의 군주들에게 예술이란, 자신들의 권력을 영속할 수 있는 수단이자 고단한 현실에서의 위안이었다. 그 결과 1891년 개관한 빈미술사박물관에는 수장고에 보관된 작품을 제외하고도, 7천여 점의 작품들이 남아 관람객들과 만나고 있다.

빈미술사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작품

ⓒwikipedia

사물로 그린 얼굴
정물-초상화

밀라노 출신 거장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1593)는 페르디난트 1세(재위 1556~1564)의 눈에 띄어 궁정에 입성했다. 이후 아들 막시밀리안 2세, 손자 루돌프 2세까지 3대에 걸쳐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화가로 활동한 그는 왕과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 이외에도, 축제를 기획하고 무대의상을 디자인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왕실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특히 루돌프 2세가 그를 총애했는데, 황제는 노년이 된 화가에게 백작 작위를 내려주었다. 아르침볼도는 미술사에서 가장 독특한 회화 장르를 개척했는데 각종 과일과 채소, 꽃과 나무, 물고기부터 책과 촛불에 이르기까지 정물화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를 인간의 얼굴 형상으로 조합해 기발한 정물-초상화를 제작했다.

아르침볼도의 정물-초상화 중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과 공기·물·불·흙 4원소를 표현한 시리즈가 가장 유명하다. 네 점이 한 세트를 이루는 두 시리즈 중 ‘여름’(1563)과 ‘겨울’(1563), ‘불’(1566)과 ‘물’(1566)이 빈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르침볼도는 단순히 기발한 아이디어만으로 작품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문학, 철학 등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알레고리적으로 계절과 원소를 표현했다. 사계절은 인생의 단계와 세상의 순환을, 4원소는 만물의 존재 근원을 암시한다. ‘여름’에는 싱그러운 과일과 채소로 이루어진 여인의 옆모습이 등장한다. 밀짚으로 된 여인의 옷 목 부분에는 화가의 이름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어깨 부분에는 제작 연도 ‘1563’이 새겨져 있는 것도 독특하다.

아르침볼도의 정물-초상화를 감상할 때는 작품에서 조금 떨어져 전체 형상을 본 다음 가까이 다가가 개별 사물들이 어떻게 조합되는지 파악해 보자. 그림의 주제, 사물로 표현된 인물, 사물의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그림을 더욱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계절 시리즈는 각 계절에 맞춰 인간의 생애를, 4원소는 각 물질의 특징을 관련 사물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wikipedia

피터르 브뤼헐의 독특한 풍속화
눈 속의 사냥꾼들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은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중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현재까지 그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40여 점으로 그중 12점이 빈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박물관은 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피터르 브뤼헐은 주로 민간 전설, 신앙, 관습 등을 화폭에 담으면서 전쟁과 혼란에 따른 인간의 난폭함, 교활함, 비극 등을 함께 묘사했다. 피터르 브뤼헐은 농민의 일상을 담은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빈미술사박물관에는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1559), ‘농가의 혼인’(1568) 등이 소장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16세기 플랑드르 사람들의 일상 풍경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피터르 브뤼헐의 풍속화 중 ‘눈 속의 사냥꾼들’(1565)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영화 <솔라리스>(1972),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2011)에 등장하는 등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다. ‘눈 속의 사냥꾼들’은 총 7점으로 구성된 계절 연작 중 하나로, 겨울의 적막함과 우울함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화면은 사냥꾼들이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왼편,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과 멀리 눈이 쌓여 있는 뾰족한 겨울 산이 있는 오른편으로 구분된다. 새 한 마리가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 같은 회색 하늘을 가로지르며 겨울의 황량함을 강조한다.

피터르 브뤼헐의 풍속화는 ‘풍속 백과사전’이라 할 정도로 한 화면에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세밀하게 담았다. 먼저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를 본 다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뜻밖의 흥미로운 광경, 재미난 장면,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wikipedia

사랑스럽지만 슬픈 초상
푸른 드레스를 입고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

빈미술사박물관의 왕족 초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가 그린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 3점일 것이다. 두 살, 다섯 살, 여덟 살 무렵 공주의 모습을 담은 초상에는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왕족으로서의 의젓함이 동시에 담겨 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자신들의 신성한 핏줄을 유지할 명목으로 근친결혼을 했다. 그 결과 후손들은 대부분 일찍 사망하거나 유전병으로 고통받았다. 위아래 턱이 맞지 않는 부정교합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표적인 유전병이었다. 스페인계 합스부르크 마르가리타 공주는 오스트리아계 합스부르크인 신성로마제국의 레오폴트 1세와 혼인하기로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고, 스페인 왕실에서는 공주의 성장 과정을 보여줄 목적으로 어린 공주의 초상을 그려 시댁이 될 집안에 정기적으로 보냈다.

공주의 초상 중 ‘푸른 드레스를 입고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1659)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파란 벨벳과 실크가 어우러진 드레스는 화려한 광택이 돋보이고, 공주의 오른손에는 미래의 남편, 즉 현재의 삼촌이 보낸 방한용 모피 토시가 들려 있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소녀의 눈동자에는 슬픔이 서려 있다. 벨라스케스는 훗날 19세기 인상주의에 영향을 줄 정도로 빛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화가로, 가까이서 보면 형태가 흐릿하지만 거리를 두고 보면 느슨한 붓질이 하나의 형상이 되는 것을 넘어 실제로 빛이 반짝이는 것 같은 사실성이 드러난다. 공주는 평생 유전병에 시달렸으며, 열다섯 살에 결혼 후 4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그중 세 아이는 세상을 일찍 떠났고, 공주 또한 스물한 살에 사망했다. 운명 앞에서의 자포자기와 초연함을 드러낸 공주를 벨라스케스는 미술을 통해 위로했다.

작품을 관람할 때는 공주의 성장 과정을 비교 감상하면서 아이에서 소녀가 되는 모습을 통해 인물의 심리적 분위기를 살펴보자. 인간의 내면까지 그리고자 했던 벨라스케스의 섬세한 감각을 읽을 수 있다. 빛의 움직임과 사실적인 사물 표현도 놓칠 수 없으니, 가까이에서 보면 듬성듬성한 색채가 어떻게 사물을 실제처럼 묘사하는지도 함께 파악해 보자.

ⓒwikipedia

회화의 영광을 기리는 대작
회화예술의 알레고리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로 유명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대작 '회화예술의 알레고리'(1666)가 빈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태생의 페르메이르는 작가와 관련된 빈약한 자료와 35여 점의 적은 작품 수로 인해 베일에 둘러싸인 화가이기에 여전히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는 주로 시민계급 가정의 실내 풍경을 그렸는데, 한쪽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방안의 인물과 사물을 고요히 감싸며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로 100cm에 달하는 '회화예술의 알레고리'는 50cm 정도의 화면으로 작업한 작가의 작품치고 상당히 큰 크기를 자랑한다. 부유한 가정집의 실내를 배경으로 벽에는 값비싼 커다란 지도가 걸려있고, 신성로마제국을 상징하는 머리가 둘 달린 독수리 장식의 황금빛 샹들리에가 반짝인다. 월계관을 쓰고 책과 트럼펫을 손에 든, 푸른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역사의 여신인 ‘클리오’이다. 그녀 앞에는 관람자로부터 등을 돌린 화가가 여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업복이라기엔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은 화가의 뒷모습에서 당당함과 신중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벽에 걸린 네덜란드 지도는 페르메이르의 작품과 네덜란드 회화를 역사의 지평 위에 올려놓는다. 이 작품을 마음에 들어 했던 히틀러는 2차 대전 당시 소유자로부터 반강제로 작품을 구입한 뒤 빈미술사박물관에 전시했으며, 전쟁의 혼란함을 견딘 작품은 오스트리아 정부로 반환되어 현재 빈미술사박물관의 주요 걸작 중 하나가 되었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Online
글 박송화 (<새롭게 읽는 서양미술사> 저자)
에디터 김보미 (jany6993@mcircle.biz)



Copyright © 저작권자 © 덴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콘텐츠가 마음에 드셨다면?
타임톡
타임톡이 제공되지 않아요

해당 콘텐츠뷰의 타임톡 서비스는
파트너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

이런 콘텐츠는 어때요?

최근에 본 콘텐츠와 구독한
채널을 분석하여 관련있는
콘텐츠를 추천합니다.

더 많은 콘텐츠를 보려면?

채널탭에서 더 풍성하고 다양하게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