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성적인 차주영이 본능적 최혜정을 만나 생긴 일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의 혜정은 상당히 감정적인 인물이다. 욕설도 거침없이 하며 모욕을 당하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얼굴이 일그러진다. 재준과 만나기 시작한 이후로는 무리 중 서열이 가장 높은 연진에게도 거리낌 없이 맞선다. 그러나 인터뷰를 위해 만난 차주영은 혜정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깊은 고민이 담긴 답변은 혜정의 모습이 전혀 연상되지 않았다. 애초에 화려한 스펙을 뒤로 하고 배우라는 길을 선택한 이유도 이성적인 판단이 배경에 있었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문동은(송혜교)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지난 10일 파트2가 공개됐다. 최혜정 역을 맡은 차주영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화하는 혜정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파트2가 공개되고 나서야 뜨거운 반응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차주영은 최혜정이라는 캐릭터를 만나기까지의 순간을 돌아봤다.
"사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혜정이라는 인물이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탄탄한데 혜정이는 입체적인 모습이 있긴 하지만 힘들겠더라고요. 제가 나왔을 때 튀어 보일까 걱정했어요. 감독님에게도 혼자 튀지 않냐고 많이 물어봤어요. 결국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으로 해답을 찾았어요"
최혜정은 가해자 무리 중에서 가장 많이 변화한 인물이다. 박연진, 전재준, 이사라는 부모의 재력, 지위를 그대로 물려받았기에 인생에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명오는 과거나 지금이나 가장 밑바닥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혜정은 끊임없이 신분 상승을 갈망한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힘으로 스튜어디스가 되어 '상승혼'을 노린다.
"저에게는 어려웠어요. 어찌 됐든 혜정이는 가해자이기 때문에 옹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동은이 없었다면 혜정이 그 위치가 됐을 것이기 때문에 애틋하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그래도 동정심을 유발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잡고 있었어요. 동은은 건강한 마음상태를 유지했지만 혜정은 결국 뒤틀리고 굴복하고 같이 나쁜 일을 저질렀잖아요. 그 중간에서 치우치지 않고 전달해야 하는데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사실 이 관계를 끊어내도 잘 살 수 있는 친구 같아요. 그런데 본인의 허영, 욕망, 욕심에 잠식되고 중독됐다고 봤어요. 내 것이 아닌 것을 알지만 마치 그런 사람인 양 스스로르 가스라이팅했다고 생각했어요,"
혜정이 가장 특별한 감정을 가지는 대상은 재준이다. 재준을 향한 혜정의 감정은 파트1에서부터 드러났다. 부잣집 아들 태욱과의 결혼을 준비했던 혜정은 재준이 자신을 유혹하자 곧바로 태욱과의 관계를 정리한다. 다만 재준을 향한 혜정의 감정이 사랑이었냐는 것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함께 연기했던 친구들과도 이야기 해봤는데 시작은 사랑이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본인이 인지하지 못했던 거죠. 그러나 어느 순간 연진에 대한 집착, 현실을 마주하며 뒤바뀐 감정 등이 섞이며 오기처럼 변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도 그 기저에 사랑은 존재했다고 생각해요"
차주영은 혜정이 재준의 연인이 되고 서열이 올라가는 과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노출 연기도 감행했다. 노출 장면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지만 차주영은 "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인터뷰를 통해 노출이 CG이었음이 알려졌지만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주영 역시 노출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도 준비가 됐고, 대역도 준비가 됐고, CG도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노출에 대한 부담은 없었어요. 별개로 혜정에게는 꼭 필요했던 신이라고 봐요. 혜정이는 수술로 자존감을 채울 정도로 가진 게 그거밖에 없잖아요. 혜정이 연진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말고는 없기 때문에 몸뚱이 하나로 한 방 날리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말레이시아로 유학을 간 차주영은 이후 미국에서 대학교를 마친 뒤 배우라는 길을 선택했다. 화려한 스펙을 뒤로 하고 배우를 선택한 이유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뒤에 있었다.
"기본적으로 예술 관련된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성적인 고민 끝에 배우의 길을 선택했어요. 어떤 것을 했을 때 내 걸 활용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의 확률은 어떻게 될까 고민했어요. 신인 때는 이런 부분에서 오해가 많이 생기기도 하더라고요. 전력을 다해서 할 때까지 하고 안 되면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했는데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다른 쪽을 해보려고 했어요.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서 노력했어요."
차주영은 '뇌섹녀'라는 수식어와 함께 데뷔 했지만 배우의 길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차주영은 극 중 에덴 빌라 집주인으로 출연한 손숙의 대사 "우리 봄에 죽자"가 와닿았던 대사 중 하나라고 전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는 있잖아요. 그때는 앞이 안 보이고 끝날 것 같지 않은데 허우적거리다가 보면 좋은 날이 찾아오는 것처럼 '그것만 버텨보자'는 뜻인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시간들을 겪고 작품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이런 날도 있으려고 버텨왔구나'라는 감정이 들면서 울컥하는 것도 있어요. 힘들 때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나 싶기도 했죠. 가족에게 만 서른 살을 이야기했는데 그 시간을 조금씩 쓰고 있더라고요.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시금 마음을 잡았어요.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마인드로 다시 시작했어요. '더 글로리'를 찍으면서 다른 작품도 찍었는데 그 직전까지도 개인적으로도 일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어요. 나름 잘 극복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유리 멘탈이었는데 그런 시간들을 겪으면서 나름 단단해지기도 한 것 같아요."
차주영에게 혜정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연기에 대한 호평, '인생 캐릭터' 같은 것 뿐만은 아니다. 최혜정이라는 캐릭터는 배우 차주영을 넘어 인간 차주영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혜정이를 연기하면서 긍정적인 영향이 왔어요. 그 전에 많이 조심하고 신중한 성격이 있었다면 지금은 가감 없이 표현하고 조금은 단순하게 바라보게 되면서 삶을 편하게 만들었어요. 혜정이가 가진 것 중에 좋은 부분만 가져온 것 같아요"
차주영은 25일 첫 방송되는 KBS 2TV 주말드라마 '진짜가 나타났다!' 방송을 앞두고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작품에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최혜정을 만나 새롭게 피어난 차주영이 앞으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아직 못 해본 게 많고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부담도 없어요. 해보고 싶은 배역도 못 꼽겠어요. 제가 입히는 대로 달라져서 저도 기대돼요. 제 얼굴이 사라지는 것에 싫어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좋아요. 분명 어느 순간 확실히 인식되는 경우가 생길 텐데 그 전까지는 즐겨보고 싶어요. 이제 저도 재미있는 연기, 제 색깔을 입힌 연기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어서 들어오는 모든 작품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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