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치과의사와 결혼식 당일 웨딩드레스 입은 채로 파혼한 여배우

1974년 MBC 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경진은 70~8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손꼽혔다.

단아하면서도 도도한 이미지로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큰 인기를 얻었고, 유지인·장미희·정윤희 등과 함께 신 트로이카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잘 나가던 전성기에도 이경진은 결혼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당시 30대 초반,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주변의 결혼 압박을 받아 결국 국제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미국 교포 신랑과의 결혼을 준비하며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이 결정이 평생의 후회로 남게 된다.

1986년 이경진은 재미교포 치과의사와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피로연 직전 파혼을 선언하며 그대로 귀국했다.

상대 남성이 과거 약혼과 파혼 이력이 있다는 사실을 결혼 직전에 알게 된 것이다.

이경진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결혼식을 끝으로 모든 것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경진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미 마음이 정리된 상태에서 결혼식에 들어갔다. 결혼확인서에 서명하라는 말에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했다"고 고백했다.

첫 번째 파혼 이후 이경진은 오랫동안 결혼 생각 자체를 접었다.

스스로도 "파혼 후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30대 후반에는 2세 문제 때문에 다시 한 번 결혼을 고민했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30대 후반, 이경진은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상대는 능력 있는 외아들이었지만, 예비 시어머니의 질투와 간섭이 문제가 됐다.

어머니와의 갈등 끝에 결국 이경진은 두 번째 결혼마저 포기했다.

"그냥 둘이 잘 살라고 스스로 '스톱'을 걸었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이후 10년이 지나 상대 남성이 다시 찾아왔지만, 이경진은 "그땐 왜 그 사람을 좋아했나 싶더라"고 회상했다.

결혼 대신 이경진은 가족을 위해 살았다. 홀로 딸 넷을 키운 어머니 곁에서 평생 함께 지내며, 쌍둥이 조카들의 유학과 미국 의대 등록금까지 전부 지원했다.

어머니의 학구열과 아들을 낳지 못한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리고 싶어 선택한 결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국 의대가 아닌 한국에서 공부했으면 부모 곁에 있었을 텐데…"라며 씁쓸함도 드러냈다.

긴 세월을 홀로 살아온 이경진은 이제 결혼보다 건강이 더 큰 걱정이다.

"좋은 남자가 있어도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게 오히려 불편하다"는 말 속에는 홀로서기에 익숙해진 인생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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