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군사협력 가속화, 한반도 안보지형 급변

정인환 기자 2024. 10. 2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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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특수부대 1.2만 명 파병에 포탄 지원까지… 대응카드 수위도 격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략미사일기지를 시찰하고 발사 관련 시설 등을 점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24년 10월2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따로 살기’를 헌법에 명시한 북한이 대규모 병력을 러시아로 보냈다. 파병된 북한군은 훈련을 마친 뒤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북-러 동맹’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모양새다.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공급하는 방안까지 저울질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가 한반도 밖으로 번지고 있다. 북·러에 맞서 한-미 동맹도 대응에 나설 조짐이다. 한반도가 다시 진영 간 대결 구도의 한가운데 섰다. ‘냉전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동맹 넘어선 군사 일체화”

“북한군이 러시아로 갔다는 증거가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2024년 10월23일 이탈리아를 방문 중인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미국 정부 당국자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한 것은 오스틴 장관이 처음이다. 그는 “북한군이 뭘 하고 있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북한군의 의도가 러시아를 대신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는 것이라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유럽뿐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까지 파급이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같은 날 “북한이 10월 초에서 중순 사이에 최소 3천 명을 러시아 동부로 파병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들 병력은 북한 원산에서 배편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했다. 이후 러시아 동부에 있는 여러 군사 훈련장으로 이동해 현재 훈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커비 보좌관은 “북한군은 훈련을 마친 뒤 러시아 서부로 이동해 우크라이나군과의 전투에 참여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 쪽에 이런 상황을 알렸으며, 동맹과 우방국들과 함께 대응 방안을 긴밀히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을 포함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는 국가를 겨냥한 제재 방안을 마련 중이란 점도 내비쳤다.

커비 보좌관의 발언은 한국 국가정보원이 앞서 공개한 내용과 대체로 일치한다. 국정원은 10월18일 보도자료를 내어 “북한이 (10월)8일부터 13일까지 러시아 해군 수송함을 통해 북한 특수부대를 러시아 지역으로 수송하는 것을 포착, 북한군의 참전 개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10월2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이 최정예 특수작전부대인 11군단(폭풍군단) 소속 4개 여단 1만2천 명 규모 병력을 파병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부터 북·러는 급속도로 밀착했다. 같은 해 3월2일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졌을 때, 중국·이란 등 러시아의 전통적 우방국은 기권을 선택했지만 북한은 시리아 등 4개국과 함께 반대표를 던졌다. 이후 북한은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에 나섰다. 국정원은 10월18일 자료에서 북한이 “2023년 8월 이후 현재까지 총 70여 차례에 걸쳐 1만300여 개 이상 컨테이너 분량의 포탄·미사일·대전차로켓 등 인명 살상 무기를 러시아에 지원”한 것으로 평가했다.

대통령실 “우크라에 공격용 무기 지원도 검토”

2023년 8월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러(2023년 9월)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2024년 6월)이 이뤄졌다. 북·러는 푸틴 대통령 방북 때인 6월19일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북-러 조약)을 체결하고, 양국 관계를 ‘준동맹’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북-러 조약 제3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에 대한 무력 침략행위가 감행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이 조성”되면 “쌍무협상 통로를 지체 없이 가동시킨다”고 규정한다. 또 제4조는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돼 있다.

북한이 대규모 병력을 러시아로 보낸 사실이 알려진 2024년 10월20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방송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동맹은 ‘위협’을 공유한다. 8월6일 우크라이나군이 국경을 넘어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로 진입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러시아로선 형식상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라 주장할 만한 상황”이라며 “북한 역시 북-러 조약 4조에 근거해 파병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은 ‘파병의 대가’로 모인다.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러 동맹’의 실질적 가동이다. 북쪽이 러시아에 병력을 보냈으니, 북쪽이 위험에 처하면 러시아도 병력을 보내야 한다. 북으로선 명실상부 러시아란 ‘군사적 안전장치’를 확보한 셈이다. 파병된 북한군이 러시아 무기체계에 익숙해지면 양국 군의 ‘상호운용 능력’을 높이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둘째, 북한의 무기와 병력 지원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다. 특히 1만 명 넘는 대규모 병력이 러시아군 수준의 인건비를 받는다면 그 규모는 상당할 수밖에 없다. 북에 절실한 식량과 에너지 확보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셋째, 군사 분야 협력 강화다. 정찰위성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비롯해 북한이 필요로 하는 각종 첨단 군사기술을 러시아가 제공할 수 있다.

본격화, 비상한 각오로 대비

대통령실은 10월22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북·러 협력의 단계별로 시나리오를 보면서 (우크라이나에) 방어용 무기 지원을 고려할 수도 있고, 한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마지막에 공격용 무기 지원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용 무기 제공’을 넘어선 안 될 한-러 관계의 금지선(레드라인)으로 경고해왔다. 북한군 파병의 불똥이 외교·안보 전반으로 튈 조짐이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은 이렇게 짚었다.

“그간 ‘신냉전’이란 말을 꺼렸던 건 냉전 시절의 진영 구도와 국면적 이득만 취하는 작금의 현실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북-러 관계는 급속도로 ‘진영’이 됐다. 한국전쟁 이후 북·러가 이 정도로 가까워진 때가 없다. 북·러란 진영에 맞서 한·미와 한·미·일 진영도 대응에 나설 것이다. 한반도가 진영과 진영 간 대결·대립이 펼쳐지는 공간이 됐다.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신냉전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 정세를 가르는 질서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비상한 각오로 대비해야 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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