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지인에게 배신당해 북한에 납치되기 직전 기적 탈출한 예술가 부부

1971년, 독일 뮌헨의 오페라 극장 계단에서였다. 윤정희는 ‘효녀 심청’ 상영 행사로 독일에 왔고, 우연히 좌석을 찾지 못해 도움을 청한 청년이 있었다.

순수한 인상의 그는 백건우였다.

오페라가 끝난 뒤 식사 자리에서 피아니스트라는 소개를 받고서야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시간이 흘러 프랑스에서 다시 이어졌다. 자장면이 먹고 싶어 들른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백건우.

윤정희는 그 순간을 "운명"이라 불렀다.

1976년, 이들은 화가 이응노의 집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예물은 단 하나, 백금 반지 한 쌍뿐. 몽마르뜨 언덕의 작은 집에서 시작된 신혼은 소박했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만큼은 깊었다.

그러나 이 결혼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위기를 맞게 된다.

윤정희&백건우 납치 미수 사건, 이응노와 박인경이 앞잡이 노릇

1977년 여름, 막 결혼 1년 차였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배우 윤정희 부부는 지인의 권유로 연주 여행에 나선다.

화가는 이응노, 그 부인은 박인경.

유럽에서 오랜 인연을 이어온 이들과 함께한 여행이, 이들 부부 인생의 가장 아찔한 순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윤정희/이응노/백건우/박인경

당초 목적지는 스위스 취리히였다.

박인경은 본인의 지인이 스위스 부호라며 연주를 요청했고, 부부는 믿고 일정을 수락했다.

그런데 비행기의 목적지가 돌연 유고슬라비아 자그레브로 바뀌었다.

이유는 "부호 가족이 유고슬라비아에서 휴가 중이라 연주 장소도 그쪽으로 바뀌었다"는 설명뿐.

의심할 틈도 없이 항공권과 지도가 담긴 봉투가 건네졌다.

자그레브 공항에 도착한 부부는 비자도 없이 입국 허가를 받았다. 안내원은 없었고, 봉투에 적힌 주소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일반 주택이라 보기엔 너무나 이상한 3층 건물.

그곳에서 기다리던 남성이 다가와 “이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서툰 영어, 설명 없는 응대. 직감이 이상했다.

백건우는 택시를 그냥 보내지 않고 대기시켜둔 상태였다. 그게 부부를 살렸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판단에 두 사람은 곧장 그 택시를 타고 자그레브 소재 미국 영사관으로 향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엔 한국 대사관이 없었다.

영사관은 업무 시간이 끝난 상태였지만 다행히 인근 도서관에 불이 켜져 있었다.

줄리아드 음대 유학 시절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던 백건우는 그곳에서 도움을 요청했고, 마침 있던 미국 부영사 리처드 크리스텐슨이 이들을 받아들였다.

상황은 긴박했다. 그날 밤, 부부가 묵고 있던 호텔 문을 누군가 격하게 두드렸다.

문밖에는 흰 옷 차림의 낯선 이들이 서 있었다. 리처드의 조언에 따라 문을 열지 않고 새벽까지 버틴 뒤, 다음 날 첫 비행기로 파리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들은 프랑스로 돌아간 뒤, 곧장 주불한국대사관을 찾아갔다.

그리고 1977년 8월 9일, 백건우와 윤정희는 본인의 실명과 서명이 담긴 자필 진술서를 제출했다.

그 안엔 납북 시도의 정황, 장소, 인물, 경로가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이후 이 사건은 국내 정부 기록에 ‘납북미수 사건’으로 분류됐다. 놀라운 건 그 뒤의 전개였다.

백건우 부부가 사건을 알리자, 오히려 박인경과 이응노 측은 이들을 ‘납치범’으로 몰아간다.

한국과 미국이 짠 계략이라는 주장이었다. 그 후 이응노 부부는 잠적했고, 프랑스에 정치망명을 신청했다.

당시 외무부와 주불대사관, 중앙정보부까지 얽히며 사건은 정치·외교 문제로 번졌지만, 백건우·윤정희 부부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예술가의 삶을 지키고자 그들은 이 사건에 대해 수십 년간 공식 언급을 삼갔다.


그 이후의 삶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알츠하이머 환자 역을 맡은 윤정희.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이미 초기 증상이 있었고, 몇 년 뒤 실제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며 병세는 악화됐고, 백건우와 딸 백진희는 프랑스 외곽의 요양처에서 그녀를 보살폈다.

백건우는 오랜 침묵 끝에 윤정희의 투병 사실을 밝혔다. "더는 숨길 수 없는 시점이 됐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때"라며 고백했다.

2023년 말, 윤정희는 프랑스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향년 79세.

많은 이들이 ‘스크린의 여신’이라 불렀던 그녀는 조용히, 그리고 아름답게 퇴장했다.

마지막 작품이 ‘시’였다는 건 어쩌면 운명 같았다. 그 영화 속에서처럼, 그녀는 고요히 기억의 강 너머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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