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대형 댐 붕괴 … 주민 수천 명 대피 중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카호우카 댐이 지난 6일(현지시간) 일부 파괴돼 급류가 하류로 쏟아져 내리면서 주민 수천 명이 대피에 나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노바 카호우카 지역 근처 해당 댐이 파괴되며 마을 80곳이 물에 잠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댐이 파괴되며 드니프로 강을 따라 물이 밀려 내려오고 있으며, 헤르손 도심 지역 또한 엄청난 홍수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며,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폭격으로 댐 파괴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BBC는 서로를 배후로 지목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주장 모두 검증하지 않은 상태다.

한편 대규모 카호우카 저수지 하류에 자리한 카호우카 댐은 이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댐이다.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남부에 식수와 농업용수 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에 물을 공급하는 주요 수로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국영 수력 발전소 관리시설 측은 저수지 하류로의 유출량이 7일 아침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경고했으며, 이후 4~5일 후에 빠르게 가라앉는 “안정화” 기간이 찾아올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해당 댐은 인근에 있는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에도 물을 대기에, 유럽의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리자 발전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으나,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상황이 통제되고 있으며, 현재 “즉각적인 핵 관련 안전 위험은 없다”고 한다.

온라인상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댐 구조물 파괴로 틈이 생기며 급류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주변의 몇몇 마을은 물에 잠겼으며, 더 하류 쪽에 사는 주민들은 버스와 기차를 타고 대피에 나서야만 했다.

빅토리야 리트비노바 검찰부총장은 현지 TV에 홍수로 대피해야 하는 주민이 드니프로 강 서쪽의 우크라이나 통제 지역 1만7000명과 러시아 통제 지역 2만5000명 등 약 4만 명이라고 언급했다.

이호르 클리멘코 내무장관 또한 현지 TV를 통해 지금까지 약 1000여 명이 대피했으며, 정착지 24곳이 침수됐다고 설명했다.

클리멘코 내무장관은 러시아가 주민들이 대피하는 남부 헤르손 지역에 포격을 가했다며 비난하는 한편, 수위 상승으로 인해 노출된 지뢰를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해당 댐이 자리한 주변 지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난 2월 이후 줄곧 러시아가 점령 중이다. 이 지역 주민인 안드리는 러시아가 이 도시를 “침수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헤르손 내 우크라이나 군 점령지에서 만난 여성 류드밀라는 세탁기 등 가전을 낡은 차에 부착된 트레일러에 싣고 있었다. 류드밀라는 “홍수가 두렵다. 물건을 싣고 지대가 높은 곳으로 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군을 “이곳에서 쫓아내야 한다 … 저들은 우리를 향해 총을 쏘고 있다. 우리를 침수시키는 등 여러 가지 짓을 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또 다른 주민인 세르히는 “모든 생명체가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며 두려워했다.

세르히는 근처의 가정집과 정원 등을 가리키며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와 사람들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말했다.

헤르손 시내는 댐 하류에서 50마일(약 80km) 떨어져 있다

러시아가 임명한 블라디미르 레오니예프 노바 카호우카 시장은 도시가 물에 잠겨 900명이 대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국은 노바 카호우카와 인근 정착지 2곳의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자 버스 53대를 급파했다고 설명했다.

레오니예프 시장에 따르면 현재 수위가 11m(36ft) 이상으로 높아졌으며, 병원으로 이송된 주민들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인구가 많지 않은 올레슈키라는 지역도 침수 피해가 크다는 설명이다.

한편 마찬가지로 러시아 점령지에 자리한 ‘카즈코바 디브로바 동물원’ 측은 동물원이 완전히 물에 잠겼으며, 동물 300마리가 모두 사망했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6일 이른 아침 댐이 파괴된 원인에 대해선 아직 분명히 밝혀진 바가 없으나,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가 고의로 댐을 폭파했다며 비난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군이 반격하는 과정에서 댐을 넘어 러시아 점령지로 넘어올까 우려했기에 이는 그럴듯한 설명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점령한 영토를 지키려고 애쓰는 러시아에 해당 댐은 명확한 문제였다. 지난 가을 우크라이나 군이 헤르손 안팎의 러시아군을 고립시키고자 도로와 철교를 공격했듯이, 이번엔 러시아가 여러 방면에서 펼쳐질 수 있는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막고자 해당 댐을 파괴하기로 했을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카호우카 댐 위치

한편 러시아 측은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반격에 실패하자 이에 관한 관심을 돌리고, 크림반도에 공급되는 담수를 빼앗고자 댐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헤르손 남부 크림반도는 지난 2014년 러시아가 불법으로 합병한 지역이다.

줄곧 우크라이나가 대대적인 반격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측은 반격 시점을 사전 경고하지 않을 것이라 설명했으나, 최근 군사 활동이 증가하며 반격이 시작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6일 저녁 영상 연설을 통해 이번 댐 파괴도 우크라이나를 막을 수 없다면서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모든 영토를 해방시킬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같은 날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댐 파괴에 대해 논의하고자 안보 및 국방 위원회를 긴급 소집했다.

댐 균열로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듯한 모습

한편 앞선 5일, 한나 말리아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은 우크라이나군이 바흐무트 내 “적군의 진원지” 주변으로 진격했다고 설명했으나, 반격 시작 여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바흐무트는 지난 몇 달간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전략적 가치는 거의 없으나 양측에 상징적으로 중요한 곳이 됐다.

유리 삭 우크라이나 국방부 대변인은 BBC 라디오 4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전화 도청을 통해 러시아가 더 많은 댐 파괴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점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러시아 측이 드니프로 강에 있는 여러 댐을 추가로 파괴하고자 전화를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측은 이번 댐 공격을 ‘에코사이드(생태살해)’로 규정하며, 엔진유 150톤이 드니프로 강으로 유출됐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국영 수력 발전소 관리시설 측은 댐과 연결된 발전소가 “완전히 파괴됐으며” 이에 “(발전소의) 유압 구조물이 떠내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각국 정상은 이번 사태에 대해 러시아를 비난했다. 이는 전쟁 범죄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일례로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만약 이번 댐 파괴가 러시아의 책임으로 밝혀진다면, 이는 “이번 러시아 침공에서의 새로운 저점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이번 댐 파괴가 이번 전쟁에서의 러시아의 잔혹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고 비난했으며,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전례 없는 공격에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국제 사회의 ‘제네바 협약’은 민간에 끼치는 피해가 우려되기에 전쟁 중 댐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