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대홍수' 리뷰 - 압도적 비주얼과 빈약한 서사가 빚어낸 '대환장' 시뮬레이션

'더 테러 라이브', 'PMC: 더 벙커'를 통해 제한된 공간 내에서의 긴박감을 조율해온 김병우 감독이 넷플릭스와 손잡고 돌아왔다. 지난 12월 19일 공개된 영화 '대홍수'는 소행성 충돌로 인한 대홍수라는 거대한 재난을 80% 이상 수중 촬영과 정교한 VFX로 구현하며 한국 영화 기술력의 정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화려한 포장지를 뜯어낸 알맹이는 지독하게 불친절하고, 장르적 혼선을 거듭하며 시청자를 '대환장'의 혼돈 속으로 밀어넣는다.
초반 40분의 미덕: 숨 막히는 수중 생존극

영화의 도입부는 완벽에 가깝다. 갑작스러운 폭우와 해일로 서울이 물에 잠기고, 아파트 3층에 고립된 연구원 안나(김다미)와 아들 자인(권은성)의 사투는 하이퍼리얼리즘 재난물로서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물이 차오르는 계단, 수압으로 깨져나가는 유리창, 산소가 부족한 비좁은 실내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김병우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관객은 이 영화가 훌륭한 재난 탈출극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환장'의 시작: 장르 이탈과 과잉된 설정

문제는 보안팀 요원 희조(박해수)가 등장하며 영화가 본색을 드러낼 때 발생한다. 단순 재난 영화인 줄 알았던 '대홍수'는 갑자기 인공지능(AI), 복제 인간, 그리고 타임루프(Time Loop) 설정이 뒤섞인 하드 SF로 급커브를 튼다.
안나가 단순히 생존자가 아니라 인류 보존을 위한 핵심 알고리즘을 쥔 '설계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현재의 고난이 실제 재난인지 혹은 최적의 생존 해법을 찾기 위한 AI 시뮬레이션인지 모호하게 처리되면서 서사는 급격히 난해해진다. 감독은 "사랑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려 했으나, 관객 입장에서는 생존의 긴박함과 SF적 난해함 사이에서 갈지자 행보를 걷는 전개에 "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건가"라는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기술은 차올랐지만 개연성은 가라앉았다

VFX 기술력만큼은 이견이 없다. 쏟아지는 물의 무게감과 수중에서의 빛 굴절을 표현한 디테일은 할리우드 대작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 뛰어난 시각 효과는 공허한 서사를 가리기 위한 장식에 그친다.
특히 후반부,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우주로 나아가는 인공지능 배아 설정이나 반복되는 루프의 인과관계는 충분한 설명 없이 나열된다. "끼워 맞추면 이해는 가지만, 끝까지 불친절하다"는 평단과 대중의 공통된 지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김다미의 절절한 모성애 연기와 박해수의 묵직한 존재감이 장르의 균열을 메우려 사투를 벌이지만, 구멍 난 각본을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대홍수'는 재난 영화의 외피를 쓴 '알고리즘 윤리학' 강의에 가깝다. 김병우 감독은 아파트라는 폐쇄된 공간을 통해 인간의 선택과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려 했으나, 그 야심이 너무 컸던 탓인지 서사의 둑이 터져버렸다. 기술적 성취는 '대홍수'급이지만, 관객의 감정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는 '대환장' 수준의 불통을 보여준 아쉬운 작품이다.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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