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눈높이’ 공언했지만···윤 대통령 못바꾼 한동훈 100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라는 명령에 우리는 응해야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월23일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했던 말이다. 그는 30일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민심’을 18차례 언급하며 ‘국민의 눈높이’를 재차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한 대표가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정치를 내세웠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과정에서 정치력보다 윤·한 갈등, 친윤석열(친윤)계·친한동훈(친한)계 갈등만 도드라지면서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대표의 100일을 규정하는 단어는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다. 그는 당대표에 출마하며 여당의 해병대 채 상병 제3자 특검 자체 발의를 공약했다. 대통령실이 특검 추진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수차례 “제 생각은 변함 없다”고 밝혔다. 수평적 당정관계 정립도 공언했다. 그간의 수직적 관계에서 당정이 상호 토론하며 해법을 모색하는 수평적 관계로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1일 대표 취임 후 윤 대통령과의 첫 면담에서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활동 중단, 대통령실 인적쇄신, 의혹 규명 등 3대 요구와 특별감찰관 추천 의지를 전달했다.
한 대표가 밝힌 추진 과제 대다수는 현재 미완이다. 채 상병 제3자 특검 추진은 여전히 가시적인 움직임이 없다. 그는 지난 8월27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이 여권 분열 포석을 두는 건데 따라갈 건 아니다” “공수처 수사 결과를 보고 특검 여부를 정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취재진에게 “제가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입장이 바뀐 게 없다”고 말을 아꼈다.
친한계의 시선은 이미 채 상병 특검을 떠나 김 여사 이슈로 옮겨갔다. 한 친한동훈(친한)계 인사는 “채 상병 특검은 이미 지난 이슈”라며 “이제 민주당이 김 여사 이슈로 공세하는 상황이다. 특별감찰관 추진으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감찰관 추천을 김 여사 이슈의 ‘핵심 과제’로 띄우지만 김 여사 특검 찬성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민심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특별감찰관 추천마저도 친윤석열(친윤)계 반발로 막힌 상황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메인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 (채 상병) 제3자 특검법”이라며 “한 대표가 약속했던 것 중 왜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았는지 심각하게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정관계에서는 쇄신보다 갈등만 부각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면담에서 한 대표의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와 특별감찰관 추천 추진을 사실상 거부했다. 당정 갈등은 곧 계파 갈등으로 번졌다. 친한계는 면담 다음날 만찬 회동을 하며 세를 결집하고 친윤계 추경호 원내대표는 ‘원내 사안’이라며 한 대표에게 선을 그었다.
이를 두고 한 대표의 당내 입지가 확고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안을 관철하거나 갈등을 조정해 나가는 데 한계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 등 비한동훈(비한)계 국민의힘 중진 5명은 전날 성명에서 “대통령과 당대표의 내분만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정치적 리더십 부재”라고 밝혔다. 소장파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채널A 유튜브에서 “지금처럼 예민한 당정 관계에서는 (한 대표가) 조금 더 섬세하고 정제된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친한계는 당이 대통령실에 민심을 전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 한 대표의 성과라고 반박한다. 그 결과가 10·16 부산 금정구·인천 강화군 보궐선거 승리로 입증됐다는 것이다. 신지호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은 이날 채널A 유튜브에서 “민주당이 어떻게든 윤 대통령을 탄핵시켜 조기 대선을 만들어보려고 만방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한 대표가 당정 갈등을 감수하면서 의료공백 문제, 김건희 여사 문제 등 민심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다”며 그 성과가 지지율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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