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 '색(色)의 역사'가 있다

조회 542025. 3. 30.

[지질해설사 박태웅의 지구 속 이야기]

달에서 본 지구.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지구'

1990년 2월 14일 미국 항공우주국의 태양계 탐사선인 보이저 1호가 지구에서 60억 ㎞이상 떨어진 먼 우주에서 지구를 촬영했다. 이 작업은 보이저 1호의 사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 교수(1934~1996)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다. 미 항공우주국에 이야기해 보이저 1호의 방향을 지구로 돌릴 수 있게 해달라는 세이건의 설득이 성공한 것이다. 세이건은 우주의 한 부분인 검은 광대함 속에서 픽셀 하나 크기로 보이는 그 사진에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란 이름을 붙이고 인간의 어리석은 자부심을 알게 하는 데 그만한 사진이 없다는 말을 했다.

지구의 푸른 색은 두껍고 투명한 대기층(에 의한 산란)과 깊은 바다의 물(에 의한 산란)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이는 파장이 짧은 푸른 빛이 대기(大氣) 상층을 이루는 입자들에 의해 흩어져 우리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물이 없어도 지구에는 대기층이 있어 푸른 색으로 보이지만, 그랬다면 더 창백한(more pale) 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구는 태양계에서 표면에 물이 있는 유일한 행성이다. 지구 표면의 70%를 물이 덮고 있다.

칼 세이건 교수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

마그마의 바다

그럼 지구 속을 들여다보자. 지구과학 진영에서 파악하는 지구는 차례로 어떤 색들을 가진 구체(球體)였을까? 멀고 아득한 시간 동안 지구는 하나가 아닌 여러 색을 보였었다. 그것은 몇 종류의 암석, 대양(大洋), 광합성과 산소급증 사건, 눈덩이 지구 등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들이었다.

가장 먼저 보아야 할 부분은 원시 지구의 탄생 과정이다. 유력한 '지구 탄생' 가설은 태양 주변의 원시 행성계 원반 내에서 작은 먼지와 자갈 등이 정전기 작용으로 뭉쳐 미(微)행성이 된 뒤 자체 중력으로 다른 미행성들과의 충돌을 통해 출현했다는 가설이다. 충돌은 창백한 푸른 점이 주는 멋진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지구를 오늘의 크기로 만든 출발점이자 '마그마의 바다'를 만들어낸 계기가 되었다.

마그마의 바다는 대형 암석체의 형성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다. 과학계는 태양계의 거의 모든 대형 암석체가 적어도 한 번은 마그마의 바다 단계를 거친 것으로 보고 있다. 충돌에 의해 생기는 열과 원시대기가 만들어주는 보온효과 때문에 지표의 온도가 올라가 암석이 녹아 마그마의 바다가 형성된 것으로 본다.

마그마는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녹은 암석을 말하고, 마그마의 바다란 지표 온도가 올라 ‘암석이 녹은 모습’인 마그마가 바다를 이룬 것 같아서 부르는 말이다. 지표에 처음 만들어진 녹은 암석은 마그마라 부르고, 고체 지구의 내부에서 녹았다가 지표로 흐르면 '용암(lava)'이라 부른다.

수십억년간 지구를 감싼 여러 색들

마그마의 바다 이후 나타난 것이 현무암 때문에 조성된 '검은색 지구'다. 현무암은 무겁고 어두운 색의 암석이다. 지구가 검은색 세상이 된 것은 철과 마그네슘이 가장 풍부한 감람암보다 밀도가 낮은 현무암이 지구 표면을 덮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지구에 대양이 형성되기 시작해 지구는 파란 색을 띠었다.

이어 지구는 젊은 대양지각 아래에서 올라온 마그마에 의해 현무암이 녹음에 따라 철과 마그네슘이 분리되고 규소 등이 풍부해지는 등 화학적 조성(組成)이 달라졌고, 색도 회백색으로 바뀐 화강암으로 인해 잿빛 세상이 되었다. 또 붉은 색 지구는 산소가 이끈 표면 풍화작용으로 철을 함유하는 현무암과 자철석을 함유하는 화강암이 붉게 녹슨 결과다.

'눈덩이 지구'는 7억 4천만년전에서 5억 8천만년 전 사이에 지구 표면 전체가 적도 부근까지 빙상으로 덮인 상태를 말한다. 눈 덩어리 지구를 일으킨 원인들로 지구 궤도의 변화, 운석 충돌, 생물학적 활동 등이 꼽히지만, 광대한 지역에 영향을 미친 용암의 초거대 분출에 주목할 만하다. 용암이 초거대 규모로 분출하면 풍부한 유황 가스 에어로졸에 태양빛이 가려져 지구 온도가 하락하게 된다. 이런 효과가 지속되면 눈덩이 지구가 생길 수 있다.

암석의 탄소 저장, 풍화, 광합성 이야기

암석은 가장 큰 탄소 저장소다. 그 뒤를 이어 해양, 대기 순으로 탄소를 많이 저장한다. 풍화도 주목할 만하다. 풍화는 암석에 틈을 내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흡수하게 한다. 엄청나게 증식한 광합성을 하는 조류(藻類)가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수거한 사건도 주효했다. 이렇게 보면 초거대 규모 용암 분출과 풍화, 조류(藻類)의 왕성한 광합성 등이 눈 덩어리가 적도까지 덮이게 한 '눈 덩어리 지구'(하얀 지구)를 만드는 데 함께 몫을 한 것으로 볼 만하다.

이 사태를 반전시킨 주요 원인은 화산활동이었다. 눈 덩어리 지구라는 말을 만든 지구생물학자 조셉 커슈빙크는, 화산 가스인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계속 방출되어 축적되면서 온실효과가 나타나 얼어붙은 지구 표면이 녹아 온난한 기후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눈덩이 지구 즉 하얀 지구 이후에 나타난 '푸른 지구'는 대양 형성으로 인해 생긴 '파란 지구'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 '푸른 지구'는 육상 생물권의 탄생으로 인한 결과다. 광합성을 하는 조류(藻類)가, 생명이 탄생해 줄곧 살아온 바다를 떠나 빛을 마음껏 쬘 수 있는 육지로 진출했다.

그들은 산소를 방출해 오존층을 형성함으로써 생물체에게 유해한 자외선을 막을 수 있었다. 이렇게 식물이 먼저 육상으로 진출(4억 7천만년 전)하고 양서류의 조상인 어류가 상륙(3억 6천만년 전)했다.

지질 여행을 떠나며

진화생물학자 션 캐럴은 “우리는 지구의 역사와 활동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생명의 경로에 온갖 우주적 사건과 지질학적 사건이 끼어들었음을 발견하고는 놀라고 있다. 이런 사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기 없었을 것이다”라고 썼다.

지구과학이 다루는 주요 세 분야인 대기, 해양, 육지는 긴밀하게 상호작용한다. 그 작용의 중심에 이산화탄소가 있다. 지질권과 생물권을 매개하는 이산화탄소는 화산 분출시 용암, 파편성 고체 물질 등과 함께 나오는 화산가스의 하나로 큰 역할을 한다. 대기에서 수증기와 결합해 약산성의 탄산 비가 되어 내려 지각을 녹여 다양한 광물질과 염분 등을 생성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겨난 이 물질들은 바다까지 흘러가 해양생물의 먹이가 된다. 상호작용하는 지구과학의 세 영역에 미치는 인간의 작용도 빠질 수 없다.

우리는 깊은 땅속과 교감한 수많은 지구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시의성도 갖춘 글을 통한 지질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머리말격인 이 글 다음에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구체적 개념, 현상, 인물 등이 이야기될 것이다. (‘창백한 푸른 점 이전 수십억년간 지구를 감싼 여러 색들‘은 로버트 헤이즌의 지구 이야기에서 주로 영감을 얻었습니다.)


※ 박태웅 자연 칼럼니스트는 자연과 인문의 창의적 어울림을 목표로 하는 독서인이다. '새와 생명의 터(Birds Korea)'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평소에는 서울 역사/문화해설사(2017년~ )로 활약중이다. 특히 한탄강(연천) 세계지질공원해설사(2020년~ ) 일을 하고 있다, 해인사(海印寺) 월간지 해인지 등에 기고했다. 저서로는 ’공공역사를 실천중입니다‘를 출간(2023년; 푸른역사 刊 공저)했고 ’한국의 세계지질공원‘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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