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림 정신 되새긴 가을 문학잔치…그의 號를 딴 ‘어떤 숲’도 열렸다
- 나림이 쓴 역사 인물 소설 통해
- 사상가로서의 작가 영향력 조명
- 깊은 존경·애정 담긴 토론 활발
- 국제문학상 대상에 김종성 작가
- 나림 나고 자란 고향 하동 북천
- 고향 사람들이 숲 가꿔 개방도
경남 하동군 북천면 들판에 아직 코스모스는 만개하지 않았다. 지난 28일이었다. 여름은 너무 더웠고, 10월 첫 주말에 주로 열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를 조금 앞당겨 9월 끝자락에 열게 된 사정과 상관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런데 올해는 코스모스 대신 ‘어떤 숲’이 문학제를 찾아온 사람들을 먼저 반겼다.
▮‘지리산의 어떤 숲-하동 나림’
이병주문학관에 가려면 거치게 되는 북천면의 옛 북천중학교 자리에 올해 생태공원이자 체험공간인 ‘지리산의 어떤 숲-하동 나림(那林)’이 조성됐다. 나림은 하동군 북천면 태생 대문호 이병주의 호이다. 대개 ‘어떤 숲’이라는 뜻으로 새긴다. 나림 선생이 생전 “들을 누비는 길, 산을 기어 오른 오솔길, 병풍처럼 둘러친 산의 능선, 아니 풀 한 포기, 돌 하나까지 안타까우리만큼 그리운 것이다”고 쓴 고향 복천 좋은 자리에 고향 사람들이 숲을 가꿔 그를 기리니, 좋은 일이다. 안내판을 조금 더 읽어본다.
“하동군 북천면은 소설가 이병주(李柄注 1921~1992)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이병주는 대하소설 ‘지리산’, ‘관부연락선’ 등 당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시련을 작품화한 소설가이다. … 이병주의 고향인 이곳에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담아 ‘지리산의 어떤 숲’을 조성했다. … 이곳에는 마가목, 참빗살나무, 히어리, 만병초, 투구꽃 등 지리산에서 볼 수 있는 식물 130여 종을 식재하였다.”
▮이병주 역사소설 펼친 후배들
‘경남스틸과 BNK금융그룹이 함께하는 2024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가 지난 28일 경남 하동군 북천면 이명골길 이병주문학관에서 이병주기념사업회·국제신문 주최로 열렸다. KBS진주방송 또한 공동 주최기관이다. 학술심포지엄은 해마다 이 문학제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마련돼 이병주문학을 가꾸고 알리는 구실을 한다. 이병주기념사업회(공동대표 이기수 김종회)는 올해 학술심포지엄 주제를 ‘이병주 역사소설의 범주와 명암’으로 잡았다. 방대·장쾌한 이병주 문학에서 ‘역사’는 필수불가결 요소이므로 이 선택은 돋보인다.
김종회 공동대표의 기조발제 ‘1970년대 이병주 소설의 여러 면모’에 이어 나림이 쓴 ‘역사 인물 소설’인 ‘허균’ ‘정도전’ ‘정몽주’에 관한 주제발표 3건이 이어졌다. 연구가 김민수의 ‘역사·소설·말년의 양식-나림 이병주의 ‘허균’과 ‘소설 장자’를 중심, 소설가 김병덕의 ‘사료와 허구로 묘파한 삼봉의 삶-이병주의 정도전론’, 평론가 김유석의 ‘이병주의 정몽주와 휴머니즘 인간론’이었다. 권혁률 중국 길림대 교수, 김용희 소설가·평택대 교수, 김한상 스페인어학자·전 경희대 부총장, 손정순 문화전문지 ‘쿨투라’ 발행인, 전수용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등 10명은 토론에 나섰다.
김민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발표에서 ‘허균’ 속에 나림이 쓴 ‘프롤로그를 대신하여’라는 글이 갖는 의미를 짚는 등 왜 1980년대 이후 이병주가 역사인물을 직접 형상화하는 일에 나서고 그속에서 어떤 일을 감행하는지 흥미로운 토론이 붙었다.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하태영 교수는 나림이 “나는 다산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와 한(恨)을 알았다 …. 정 다산(정약용)은 나의 가장 가까운 혈연적인 스승이라고 할 수가 있다”고 쓴 점에 관해 토론에 붙이자, 50년 다산을 연구한 김언종 한국고전번역원 원장이 받아 이야기했다.
“다산은 10년 안 되는 벼슬살이 뒤에 귀양 가면서 가려진다. 다산의 책은 1926년에야 발간되며 그전엔 이런 책이 있는 줄 몰랐다. 다산의 관심사는 병들고 못 살았던 시대, 어떻게 하면 백성의 삶과 사회를 개선할지에만 집중했다.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선진국이 되면서 다산은 역할을 다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단지 작가에 머문 게 아니라 사상가였던 나림은 (방대하고 치열하며 여러 방면에 걸친 작품과 사상으로 볼 때) 다산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는 “김병덕 선생이 주제발표에서 나림 이병주가 ‘우리 민족이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슬기의 부족’을 지적했다고 밝혔다. 이 중요한 가르침이 이병주의 모든 역사소설에 깔려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덧붙였다. 토론 진행을 맡은 김종회 공동대표는 “김언종 원장께서 다산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정을 바탕으로 이와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고 열기를 정돈했다.
▮이병주국제문학상 시상식
올해 이병주국제문학상 시상식이 오후 5시 시작했다. 대상(상금 2000만 원)은 김종성 작가가 가 받았다. 경희대 고려대 교수 등을 지낸 김종성 작가는 연작소설집 ‘가야를 찾아서’로 특히 주목받았다. 단편소설 ‘가야를 찾아서’ ‘가야를 위하여’, 중편소설 ‘가락국’ ‘님의 나라’ ‘검과 현’으로 이뤄진 이 소설책 등을 통해 “가야사의 중심에 있었던 가야 소국은 가락국(금관가야)”이라는 결론에 닿는 등 한국 고대사에서 중요한 주제인 가야를 깊이 다뤘다. 그런 점에서 가야사를 친근하게 여기는 부산·울산·경남 독자에게도 뜻깊은 수상이다.
김종성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역사 기록자로서 소설가, 증언자로서 소설가라는 이병주 작가의 문학 지향”에 깊은 공감을 표명했다.
경남문인상(상금 500만 원)을 받은 박우담 시인은 시집 ’초원의 별’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나림 선생의 대하소설 ‘지리산’을 한때 머리맡에 두고 읽었고 덕산과 마천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오래 살았다”고 떠올렸다. 박우담 시인은 형평지역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이형기시인기념사업회 회장으로 활동한다.
연구상(상금 500만 원)을 받은 안준배 평론가는 부산 태생으로 최근 이병주 문학을 더 깊이 연구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글 읽기를 속독보다는 천천히 지속적으로 읽었다. 계간 ‘크리스천문학나무’에 김은국 이범선 김승옥 이청준 백도기 박완서 이문열 황석영 최인호 박경리 소설을 평론했다”며 “나에게 ‘지리산’의 서사는 사상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한 이병주 작가께 깊은 감사를 올린다”고 했다. 세 수상자는 하승철 하동군수, 강대선 하동군의장, 이종수 이병주문학관장 등 하동군민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주최 측은 상금 후원 등의 방식으로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을 실천한 경남스틸·BNK금융그룹에도 감사를 표했다.
▮부산의 나림연구회
2024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에는 부산의 이병주 문학 읽기·토론 모임인 ‘나림연구회’(회장 조광수 전 한국아나키즘학회 회장·전 영산대 교수) 회원들이 동참했다. 이에 따라 시민·독자의 참여 폭이 넓어졌고 행사에도 활력이 돋았다. 나림연구회는 지난 2월 부산 울산 경남의 나림 독자 10여 명이 모여 결성했다. 한 달에 한 번 이병주 문학 작품을 놓고 토론하며, 조광수 회장은 국제신문에 현재 ‘이병주 문학과 인문 클래식’이라는 깊은 글을 격주로 연재한다.
나림연구회는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5주에 걸쳐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부산 연제구 부산교대 앞 커피숍 긱스 2층에서 ‘나림 문학 특강’을 펼치는 등 활동을 늘리고 있다. 이날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에는 조광수 회장을 비롯한 여러 회원이 참여해 문학 잔치의 활기를 보탰다.
▶후원·협찬: BNK금융그룹·경남스틸·하동군·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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