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붕당) 화가 난 영조의 정미환국

영조는 노론이 만들어준 왕이나
다름 없습니다.
노론이 경종을 압박한 덕에
연잉군이 세제로 책봉되었고
연잉군이 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배후가 되어주었고요.

그런데 경종 말년에 경종이 급발진하며
노론 세력들을 탄압하죠.
노론들은 이제 영조가 왕이 되었으니
소론들을 향한 정치적 피의 보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조 1년이었던 1725년
영조는 경종 시절
역모죄에 휘말려 희생된
노론 대표들의 신원을 복권해주고
억울한 무고에 희생되었다고
판정해주었으며

조정의 주요 요직들은 전부 노론 계열
신하들로 대체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피의 복수는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과거 노론들을 모함한 목호룡과
김일경 정도만 처벌하는 수준이었죠.

노론 신하들은 영조에게
더 큰 규모의 정치적 숙청을
요구했습니다.

‘토적’이라고 소론 신하들을
역적으로 매도하며
노론들은 이 역적들을 토벌해야 한다는
용어를 쓸 정도였습니다.

영조는 많은 피를 흘리기 싫어했고
오히려 노론의 제멋대로식 강경 압박에
화가 난 영조는
재위 3년째이던 1727년

일전에 처벌을 했던
소론 62명을 석방시켜주고
노론 100여 명을 해고시킨 뒤
소론 계열 신하들을 중용하는 환국을
일으킵니다.

정미환국이라고 부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