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르지 않았다, 그 일이 위험하다는 것을 [세상에 이런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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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배전 노동자였다.
직접 활선 공법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모르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배전 노동자들에게 직접 활선 작업을 맡길 때, 그 일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검증 따위는 없었다.
우리 사회는 직접 활선 작업을 하는 배전 노동자들처럼 규명되지 못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온 노동자들에게 많은 빚을 지며 발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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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배전 노동자였다. 16m 높이의 전신주에 올라 특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선에 접촉하는 방식(직접 활선 공법)으로 일했다.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감전과 추락 사고가 빈번했고, 극도의 긴장감에 따른 스트레스도 컸다. 높은 수준의 전자파(극저주파 자기장)에 장시간 노출되었을 때 혈액암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A는 그렇게 18년간 일하고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한국전력공사가 작업자 안전을 이유로 직접 활선 공법을 퇴출시키기 시작한 때는 그가 퇴사한 이후였다.
A는 자신이 직업병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상을 거부했다. 다행히 제1심 법원(서울행정법원)은 A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제2심 법원(서울고등법원)이 다시 판결을 뒤집었다. 공단과 제2심 법원의 주된 논거는 전자파 노출과 갑상선암 발병의 인과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 인과성이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못했다는 의사들의 소견을 그대로 따른 판결이었다.
나는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우리 사회가 참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직접 활선 공법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모르지 않았다. 훨씬 더 안전하고 무해한 작업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이 공법을 고집한 것은 오롯이 전기 사용자의 편의와 사회적 비용 절감을 위해서였다. 정전(비활선) 작업을 하면 인근 주민이나 기업이 일시적으로나마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불편을 겪어야 했고, 작업 효율과 비용 면에서도 간접 활선 작업이 직접 활선 작업에 비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사회는 A와 같은 배전 노동자들이 심각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온 덕에 많은 편의를 누려온 셈이다. 그런데 지금 그 노동자들이 몹시 아프다. 우리 사회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과학적 규명 문제도 그렇다. 우리 사회가 배전 노동자들에게 직접 활선 작업을 맡길 때, 그 일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검증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매우 유해할 수 있다고 의심되었다. 높은 수준의 전자파 노출이 소아 백혈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가 이미 1970년대에 나왔고, 국제암연구소가 극저주파 자기장을 발암 요인(2B)으로 지정한 때가 2002년이었으니, 직접 활선 작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규명되지 못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노동이었다.
그럼에도 사회적 편의를 위해 노동자들에게 그 불확실성을 감내하게 했다면, 그들의 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게 맞지 않을까? 왜 과학적 엄밀성이라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만 요구되는가?
산재보험은 노동자 위한 최소한의 장치
산재보험이 A와 같은 배전 노동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도 있다. 완전한 의학적 치유를 보장할 순 없다. 대단한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을 위험한 일터로 내몰았던 한국전력과 같은 사업주들에게 직접 어떤 책임을 부과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치료라도 마음 편히 받을 수 있도록, 그 치료 기간에 아픈 노동자와 그의 가족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치료비와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할 뿐이다. 산재보상이란 게 본래 그런 것이다. 그들의 위험한 노동으로 인해 많은 편의를 누려온 사회가 그들에게 그것조차 해주지 않는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는 직접 활선 작업을 하는 배전 노동자들처럼 규명되지 못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온 노동자들에게 많은 빚을 지며 발전해왔다. 그들에게 발생하는 다양한 건강 문제를 온전하게 책임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최소한이라고 나는 믿는다. A의 사건은 최근 대법원으로 보내졌다. 대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간곡히 바란다.
임자운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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