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콤플렉스'가 촉발한 뉴라이트 20년... 논리는 더 정교해졌다
위안부 연구자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
"뉴라이트 계열 인사에 파묻힌 윤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는 '업데이트된 뉴라이트'"
편집자주
한국의 당면한 핫이슈를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20년이다. 2004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권철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금성사 역사교과서를 '친북반미 교과서'로 매도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동아일보의 기획기사 '뉴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는 결집의 나팔소리였고, 광복 60주년인 이듬해 1월 교과서포럼을 시작으로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뉴라이트'를 내건 이런저런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런 대대적 결집은 2002년 노무현의 극적인 대통령 선거 승리, 2003년 검찰의 '차떼기당' 수사, 그리고 2004년 노무현 탄핵 시도와 촛불시위, 그리고 이어진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참패 끝에 일어난 일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 배운 아이들이 좌파 좀비가 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고 본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 때 '역사교과서 좌편향' 공세가 있었다면, 이명박 정부 때는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발간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한국현대사학회가 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었으나 채택률 0%로 참패했다. 그러자 아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고 역사학계의 거센 저항에 표류를 거듭하다 탄핵으로 정권이 붕괴하면서 유야무야됐다.
2024년 이 풍경은 다시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고착화되고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하더니 한국학력평가원의 한국사 교과서가 나타났다. 이 교과서를 두고 '뉴라이트인 데다 엉터리 교과서'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예전에는 4·19 혁명 관련 단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나서서 강력히 항의했다면, 이번엔 이종찬 광복회장이 총대를 멨다. 광복 80주년, 한일협정 70주년 등이 돌아오는 2025년에는 아마 이 싸움이 절정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모두가 뉴라이트지만 아무도 뉴라이트는 아닌 시대
2024년엔 달라진 풍경도 하나 있다. 관련 당사자들이 전부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지난 20년간 교과서포럼을 거쳐 2017년 문재인 정부 시절 출범한 '한국자유회의'까지, 참석자 면면을 보면 그 이름이 그 이름인 경우가 허다한데도 그렇다.
'모두가 뉴라이트이지만 그 누구도 뉴라이트는 아니라고 하는' 이 희극적 상황을 두고 사회학자 강성현(49) 성공회대 교수를 만났다. '위안부' 문제를 파고들다 노골적으로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 그리고 뉴라이트를 들여다보게 됐다. 뉴라이트 역사관을 비판한 '탈진실의 시대, 역사 부정을 묻는다'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등의 책을 펴냈다.
-뉴라이트 20년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특히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강한 반감 때문에 이들이 등장한 것 같다.
"그렇다. 주사파에서 전향한 일군의 그룹이 1990년대부터 북한 민주화와 인권문제 같은 것들을 제기해왔다. 말하자면 뉴라이트 1세대다. 이념적 전환을 거치면서 이합집산하다가 2004년부터 뉴라이트로 조직화됐다. 대선, 총선에서 이긴 노무현 정부는 친일반민족행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관련 과거사 청산 등이 포함된 4대 개혁입법을 추진했다. 과거 행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기록되고 평가받게 된 데다 '친일은 재산도 환수할 거라더라' 하는 얘기까지 돌았다."
-엄청난 압박감, 위기감이 있었겠다.
"4대 개혁입법 중 사학법 영향도 컸다. 지역의 작은 봉건 영주 같은 사학재단을 건드리면서 사학법 개정은 교육 개혁이 아닌 지역토호나 종교재단과의 싸움이 됐다. 그 이전까지 이질적이어서 잘 뭉쳐지지 않던 이들이 한꺼번에 다 연결된 것, 그게 뉴라이트라고 본다. 그 뉴라이트가 제일 먼저 벌인 건 교과서 전쟁이었고. 뉴라이트의 온상 교과서포럼에 참여했고 현재 진실화해위원장인 김광동 같은 사람은 일찍부터 '정치가 아니라 문화전쟁, 사상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고 보면 정말 다 그 이름이 그 이름들이다. 김광동(진실화해위원장)은 물론, 한오섭(전 대통령실 정무수석) 김태효(대통령실 안보실 차장) 김영호(통일부 장관) 김문수(고용부 장관) 박지향(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낙년(한국학중앙연구원장) 허동현(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배용(국가교육위원장) 등에다 최근 논란이 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까지. 대략 이름이 알려진 이들만 꼽아봐도 이렇다.
"뉴라이트의 주된 활동 무대는 학계, 출판계, 언론계 같은 곳이다. 문화전쟁과 사상전쟁의 최전선이다. 교과서는 물론 출판, 영화 등 콘텐츠의 중요성을 좌파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일본 역사 왜곡의 핵심 '새역모'를 닮은 뉴라이트
-동북아재단, 한중연 같은 한국학 관련 기관들에 문제가 생길까.
"그건 어렵지 않을까 싶다. 지난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다 역사학계 전체에 보이콧당했다. 다급해지니까 국사편찬위원회를 동원하려 했는데 국편 일부 위원들과 직원들이 완강히 거부하면서 외부로 심각한 갈등이 불거졌다. 그때 경험도 있거니와, 한국학 관련 기관 사람들은 주로 연구자들이니 마구잡이로 건드릴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 거다. 아마 그 기관들이 발주하는 연구용역이 뉴라이트 성향 연구에 많이 돌아가지 않을까 한다."
-뉴라이트 20년을 보면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을 주도한 '새역모(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가 떠오른다.
"전체적인 흐름이 비슷하다. 1993년 ‘위안부’를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 1995년 식민지배를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전달한 사과편지가 있었다. 법적 책임은 부인했지만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교과서에 싣겠다'고 하는 등 여러 전향적 조치가 있었다. 실제 그 이후 위안부, 식민지배 문제를 충실히 다룬 교과서들이 많이 나왔다. 이게 일본 우익을 건드렸다. 정재계 우익 등이 결집한 '일본회의'가 움직이더니 1997년 '새역모'가 결성되고 '자학사관'이니 뭐니 하면서 기존 교과서를 거세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나 반발했을까.
"가장 싫어한 건 ‘위안부’ 문제였다. 사실 서구도 식민지배 문제에 대해 쉬쉬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자기네들도 제국주의 국가였으니까. 그런데 냉전 종식 이후 1990년대에 유럽에서 전시 성폭력 문제가 터진다. 가장 악명 높은 것으로는 유고 내전 와중에 벌어진 보스니아의 ‘강간캠프’ 같은 게 있었다. 적으로 상정된 민족 집단의 여성을 조직적으로 성폭행해 민족을 정화하겠다는 식의 논리였다. 국제 사회 여론이 들끓어 오르면서 ‘위안부’ 문제가 함께 조명된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가장 부담스러운 얘기였겠다.
"그래서 일본 우익들 사이에서 각종 역사 부정의 논리들이 개발되는데 지금 한국의 뉴라이트 논리가 다 거기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자학사관이라는 둥, 실증적인 증거가 없다는 둥, 증언은 주관적이라 믿지 못한다는 식의 얘기들이다. 그중 제일 웃겼던 건 '궤변일지라도 열심히 목소리 높여 우겨라' 같은 것도 있었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박박 우기면 문제가 중립화되고 그러면 돌파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역사토론 아닌 전쟁 ... 박박 우겨서라도 이겨라
-대놓고 그런 방법을 쓰라고 조언한다는 말인가.
"맞다. 무조건 우겨서 문제 자체를 진실 공방, 혹은 진위 논란의 틀에다 가둬버리면 최악의 경우라 해도 우리 주장을 반이라도 넣을 수 있다고 보는 거다. 이건 역사'토론'이 아니라 역사'전쟁'이기 때문에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이기는 것 혹은 최소한 지지 않는 것'이라 본 거다. 새역모 회장이었던 후지오카 노부카츠 도쿄대 교수는 이런 제안을 한 적도 있다. '태평양 전쟁을 가르칠 때 학생들을 찬반 양 진영으로 나눠서 토론을 시켜라, 그러면 각자에겐 각자의 입장이 있음을 알게 된다'고. 이렇게 하면 '서구 열강으로부터 아시아를 보호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의견도 반영된다는 거다. 이래야 중도적이고 객관적인 태도이고, 태평양전쟁을 비판만 하는 건 너무 정치적이라는 식이다. 스스로 가장 정치적이고 비객관적이면서 남들에게 객관적이 되라고 호통치는 뉴라이트가 딱 떠오르지 않나."
-그렇게 버티던 일본 교과서들도 결국 다 무너졌다.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2년 2차 집권 때 문부성을 통해 교과서 검정 기준을 다 바꿨다. 극우 성향 교과서 서술이 무난하게 통과됐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 때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0%를 기록하면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좌절되면서, 뉴라이트가 망했다는 관점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번에 논란이 된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를 말하는 건가.
"요즘 말로 뉴라이트의 예전 책들이 '마라맛'이었다면 이번 교과서는 '순한 맛'에 가깝다. 전반적으로 선별 서술, 오류, 왜곡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무리수를 두지 않으려 애쓴 노력은 역력했다. 검정 통과와 일선 학교에서의 채택을 노린 거다. 이왕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임이 알려졌으니 보수 성향의 사학재단 등을 중심으로 채택하는 학교가 나올 수도 있다. 일단 구멍을 뚫고 그다음에 구멍을 넓히자는 거다. 시도와 달리 결과가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기적 선택만이 합리적 ... 친일, 독재 부역에 면죄부
-뉴라이트적인 관점이란 무엇인가.
"뉴라이트의 첫 책이랄 수 있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쓴 서문이 의미심장했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데 기존 역사관은 이걸 무시해서 문제라고 썼다. 역사책에다 왜 이런 말을 길게 써놨나 싶었는데 '자기 기회를 잘 찾아서 잘 살아나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말이 하고 싶은 거였다. 친일, 독재로 비판받는 사람들의 항변과 다를 바 없는 얘기다. 기회주의적인 친일 근성마저 자기 이익 중심으로 합리화하는 것, 아마 그게 뉴라이트적 사고방식의 뼈대 같다."
-스스로 뉴라이트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외적으로 보면 실패해서 그렇다. 큰 정치세력을 이룬 것도 아니고, 교과서 등에서 실적을 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개인적으론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8·15경축사를 보고 굉장히 놀랐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의 핵심은 '공산전체주의 세력' 아니었나.
"그보다 눈길을 끈 건 '우리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라면서 '단순히 빼앗긴 국권을 되찾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공산전체주의 국가가 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고 규정한 부분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까지만 해도 뉴라이트의 건국절 논리는 1948년 8월 15일 이전을 없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이 논리가 '친일에 대한 면죄부 아니냐'는 비판을 받자 살짝 튼 거다. 독립운동을 이어받되 이승만의 독립운동만 남기겠다는 거다. 때마침 용산에다 이승만 기념관도 짓겠다 하고."
1919년 시작해 1948년 완성된 건국 ... 이승만만 남기겠다는 논리
-무슨 차이인가.
"3·1운동 이후 여러 임시정부 운동이 벌어지다 모두 통합된 게 상해 임시정부다. 대통령은 이승만, 국무총리는 이동휘였다. 이동휘는 한인사회당을 이끈, 좌익계열 대표였다. 이승만이 국제연맹 위임통치를 주장했다면 이동휘 등은 무장투쟁을 주장했다. 이 상황에서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가기 위한 운동이었다? 그건 이승만만 남기고 다 도려내겠다는 뜻이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자신은 뉴라이트가 아니라면서도 '1919년에 시작돼서 1948년에 완성되는 건국운동'이라는 관점을 취한다고 했는데 같은 맥락의 이야기로 해석된다."
-김형석 관장은 '최신형 뉴라이트'인 셈인가.
"다른 뉴라이트들이 이명박 정부 시절의 뉴라이트 논리에 아직 머물러 있다면,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김 관장의 언급은 '업데이트된 뉴라이트'라 볼 수 있다."
-관련해서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신 '상해 임시정부'라는 표현을 쓰는 걸 주의해서 보라는 이들도 있다.
"임정의 시작은 상해였고 아까 말한 대로 좌우합작이었다. 그 뒤가 충칭 임시정부인데, 따지고 보면 충칭 정부가 장제스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고 김구 중심으로 뭉쳐서 가장 강력하게 저항했다. 좌익까진 아니어도 중도파도 끌어들였고, 광복군을 만들기 위해 김원봉 계열과도 합쳤고, 대일 선전포고를 한 것도 충칭 정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라 하지 않고 '상해 임정'이라고만 말하는 건 김구의 충칭 정부를 빼고 이승만만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요즘 들어 부쩍 이승만에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그거 아니겠는가."
-보수야말로 역사적 정통론에 가장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종의 '헌법적 세계관'이라 부를 만한 것인데 허탈한 것도 사실이다. 가령 제헌헌법은 지금 헌법보다 훨씬 사회주의적이다. 보수적 법률가 유진오, 권승렬 같은 사람들이 참여했는데도 그렇다. 해방된 조국은 식민지 시절과 달라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 같은 것이 반영된 결과라 봐야 한다. 뉴라이트는 건국이 그렇게 신성하다면서도 제헌헌법도 제대로 안 들여다본 것 같다."
사람도, 논리도 뉴라이트인데 모른다는 윤 대통령
-이런데도 대통령은 뉴라이트를 모른다 한다. 진짜 모른다 봐야 하나.
"개인적으로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과 정무수석을 지낸 한오섭에 주목한다. 뉴라이트가 한창 유행일 때 수많은 단체가 난립했는데 그 가운데 전국에 100여 개 지역조직, 직능조직, 산하 기관을 실질적으로 갖추고 가장 조직적으로 움직인 곳이 뉴라이트 전국연합이었고, 한오섭은 기획실장이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정무특보, 이명박 대통령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을 거쳐 윤 대통령의 '꾀주머니'라 불렸다는데, 그런 사람을 측근에 뒀으니 대통령이 뉴라이트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게 무슨 차이였을까. 그냥 자기가 모른다는 얘기 아니었을까."
-역사 부정의 시대,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면역력을 기를 수밖에 없다. 나도 연구를 하다 보면 뉴라이트는 물론, 일본 극우가 만든 자료, 동영상, 유튜브 같은 걸 보는데 참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면역력을 기른다는 건 이런 거다. 사실 관계를 명확히 밝혀라, 충실한 내용도 갖춰라, 다만 그들을 설득하려 들지는 마라, 합리적 토론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여라, 대신 그 논쟁을 지켜보고 있을 일반 사람들을 항상 염두에 둬라, 그 사람들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이렇게 접근하는 게 가장 좋다."
-도 닦는 건가.
"어떻게 저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분노만 할 게 아니라 '그래. 저런 말이 나온 김에, 우리도 이참에 교양이나 한번 쌓아볼까' 이렇게 접근하는 게 더 좋다는 얘기다. 화가 나더라도."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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