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무기력이랑 싸워서 이기는 방법 [정지우의 잡동사니]
우울이나 무기력과 싸워 이기는 방법은 나의 '사회적 의미'를 찾는 일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기력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그 힘을 자기 내면에서 찾으려고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서고, 무엇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으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해법은 다소 다르다.
나는 무엇이 되었든 인간은 사회적 의미 속으로 걸어나올 때, 자기 고유의 힘도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의미란, 무척 다양할 수 있다. 누군가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누군가는 교회에서 집사 활동을 하면서, 누군가는 동호회 리더를 하면서 자기의 의미와 역할을 그 작은 사회 속에서 얻을 수 있다. 사회적 의미를 얻는 가장 흔한 방식은 '직업'이지만, 꼭 직업만이 있는 건 아니고, 직업이 항상 그런 의미를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사회에서 '직업'은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서, 아무런 '사회적 의미'를 개인에게 주지 못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오히려 우울증, 무기력, 번아웃에 시달리는 직장인도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진정으로 관계 맺고 싶은 방식으로 자기의 위치를 찾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말단 직원이나 시키는 일만 반복적으로 하더라도, 저녁에는 봉사활동을 하며 누구보다 주체적으로 자기에게 어울리는 방식의 '사회적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진정으로 관계 맺고 싶은 방식으로, 자기의 사회적 위치를 찾는 것이다.
흔히 알코올이나 도박 중독을 치료하는 과정에서도, 처음에는 상담이나 약물 치료 등이 동반되지만, 궁극적으로 가장 문제되는 건 중독자를 '사회'로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사회에서 적절한 자기 의미 찾기에 실패하면, 그는 다시 중독자로 돌아오고 만다. 그러나 그가 사회 속에서 의미와 역할을 찾고, 그 속에서 관계 맺으며,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면, 그는 중독의 늪에서 벗어나 계속 '걸어갈' 수 있다. 사람은 '타자 속'으로 계속 걸어가야만 한다.
일단, 이 '나'의 사회적 의미를 찾게 되면, 우리는 무기력의 늪에빠지지 않게 우리를 계속 끌고 가는 밧줄 달린 구명보트를 얻은 것과 같다. 우리가 늪에 빠지는 것과 반대로, 일종의 이 '사회적 의미'에 이끌려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 안에서는 힘이 생성된다. 이렇게 자기의 사회적 의미를 찾게 된 영역을 '안전지대' 혹은 '구명보트'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그 구명보트를 타고 삶을 나아간다.
알코올이나 도박 중독 치료 과정에서도, 가장 문제 되는 건 중독자를 사회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글쓰기 또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구명보트의 역할을 독톡히 한다고 믿는다. 글쓰기는 자기 내면에만 있는 것들을 타자와 소통 가능한 형태인 '언어'로 번역하는 행위로, 그 행위 자체가 타자와 접속하는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이해받고, 받아들여지면서 우리는 '나'를 '타자들' 사이에 놓게 된다. '나'라는 존재가 사회적으로 관계망 속에 배치되고, 우리는 그 관계로 나아갈 힘으로 살아난다.
그렇게 힘이 생성되면, 더 다양한 일들도 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사회적 의미가 공고한 영역이 생기면, 그렇지 않은 무의미의 시간과 영역도 버틸 수 있다. 밤이 되면 나를 찾는 글을 쓰고, 낮이 되면 기업의 부품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 나의 사회적 의미가 구명보트 속에 안착하면, 다른 곳에서 메마른 채로 상처받아도 금방 회복할 힘을 지니게 된다. 인간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근원적으로 타자들 속에 자리잡는 일이다. 그것을 직시하면, 때론 구원이 된다.
* 정지우 - 문화평론가 겸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서재' 및 '세상의 모든 문화'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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