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면 처벌 안 받나?" 교실까지 파고든 온라인 도박...
만 10세 이상은 보호처분 대상…14세 이상은 형사처벌도
사이버도박으로 입건된 청소년 10년 새 5배 이상 늘어
중독성이 강한 온라인 도박이 최근 10대 청소년 사이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경찰청이 지난 11월 초 발표한 청소년 사이버 도박 검거 실태에 따르면 만 9세 어린이까지도 사이버 도박에 손을 댔다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과거 몇몇 학생들이 교과서 위 동전을 뒤집던 '판치기' 수준을 넘어, 이제는 성인에게도 부담스러운 금액이 학생들의 휴대전화 속에서 몇번의 손짓으로 빠르게 오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사이버 도박이 엄연한 범죄임에도 청소년에 대한 실효적인 처벌이 없어 경각심을 심어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연 사이버 도박을 한 청소년들은 처벌에서 자유로울까?
사이버도박 검거 절반이 청소년…형사 입건도 10년 새 5.5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해 9월 25일부터 지난 10월 31일까지 전국의 시 도청 사이버범죄수사대를 중심으로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을 했더니 검거된 9천971명 중 청소년은 전체의 47.2%인 4천715명에 달했다.
연령별로는 17세(1천763명·38%)가 가장 많았고, 16세(1천241명·26%), 18세(899명·19%), 15세(560명·12%)가 뒤를 이었다. 초등학생인 9세(1명·0.02%)도 검거됐다. 성별로 보면 남학생(4천595명·97.45%)이 여학생(120명·2.55%)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들이 주로 한 도박은 '카지노'(3천893명·82.6%)로, 그중에서도 '바카라'(3천227명·68%)가 다수를 차지했다. 스포츠도박(535명·11%)은 카지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범행 유형은 도박행위자가 4천672명으로 가장 많았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청소년과 개발·관리한 청소년도 각각 16명과 13명 붙잡혔다.
도박 금액은 입금액 기준 총 37억원으로, 1인당 평균 78만원 정도로 집계됐다. 판돈은 최저 1천원부터 최고 1억9천만원까지 다양했다.
유입 경로는 '호기심'(2천12명·42.7%), '친구 소개'(1천582명·33.6%), '온오프라인 광고'(935명·19.8%), '금전 욕심'(186명·3.9%) 등으로 조사됐다.
도박 청소년의 증가세도 해를 거듭할수록 가파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도박 범죄소년 및 촉법소년 검거 현황'에 따르면 도박으로 형사입건된 범죄소년은 2015년 59명이었으나 올해는 8월까지만 해도 328명으로 집계됐다.
입건된 14세 미만 촉법소년(형사미성년자)은 관련 통계를 잡기 시작한 2021년 3명에서 올해 45명으로 늘어 3년 만에 15배 폭증했다.
형사입건은 도박 액수와 전과 여부 등을 따져 죄질이 좋지 않을 경우에만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도박을 한 청소년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스마트폰에 친숙한 청소년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불법 웹툰 공유 사이트 등에 무분별하게 퍼져있는 온라인 도박 광고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영향이 크다. 감정 기복이 심한 청소년기가 주변의 영향에 유독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를 부추긴다.
2018년 한국콘텐츠학회에 실린 '청소년의 돈을 딴 경험과 도박 유해환경이 문제도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주변에 도박자가 있는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에 비해 도박할 가능성이 약 5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돈을 딴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과 비교해 도박할 가능성이 약 8.4배 높았다.
만 10세 이상은 보호처분, 14세 이상은 형사 처벌도 가능
그렇다면 검거된 청소년들은 어떤 처분을 받게 될까?
경찰은 도박행위를 한 청소년에 대해 관할 경찰서에 설치된 선도심사위원회에 회부해 범행 정도에 따라 훈방, 즉결심판 청구 또는 송치하고 있다.
통상 판돈 50만원 미만은 훈방, 전과가 없고 도박 금액이 50만원 이상 500만원 미만인 경우 즉결심판을 청구한다. 즉결심판은 경미한 범죄에 대해 정식 형사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는 약식재판을 말한다.
판돈이 500만원 이상 또는 재범 이상자는 형사입건 대상인데, 도박사이트 운영에 가담하거나 도박행위자 모집 등 운영을 방조하는 등 주도적 역할을 한 청소년도 입건될 수 있다.
미성년자의 처벌은 현행법에 따라 나이별로 다소 복잡하게 나뉜다.
먼저 만 10세 미만은 이른바 '범법 소년'으로, 형법과 소년법 모두 적용받지 않아 보호처분도 내릴 수 없다. 다만 학교 자체 선도위원회에서의 징계는 가능하다.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촉법 소년'은 흔히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 법의 사각지대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형법상 처벌만 받지 않을 뿐 소년법상 법원의 보호 처분 대상이다.
소년 보호 1∼5호 처분은 감호위탁,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 보호관찰 등이다. 6∼10호 처분은 아동복지시설, 소년 보호시설, 소년원 등에 일정 기간 수용된다. 신체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된다는 점에서 금고·징역형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만 14세 이상 19세 미만 '범죄 소년'은 소년법과 형법 모두 적용돼 보호처분뿐만 아니라 성인과 같은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형법 246조는 '도박을 한 사람은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일시 오락 정도에 불과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상습범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더 무겁게 처벌하도록 한다.
불법 스포츠토토를 했다면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도 있다.
다만 소년법에 따라 이들 미성년자에게는 장기와 단기로 나눠 형기의 상·하한을 둔 부정기형이 선고되고 교화 정도에 따라 구체적인 수감 기간이 결정된다.
검찰은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를 이용해 도박 청소년들을 재판에 넘기지 않는 대신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등에서 도박 중독을 치료하도록 처분하기도 한다.
한 부장검사는 "미성년자에게 어떤 처분을 할지는 연령, 부모의 선도 의지, 보호처분 등 전력, 반성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결정한다"고 말했다.
뇌 성장 막는 청소년기 도박…2차 범죄 우려도
인간의 뇌는 청소년기에 완성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25세까지도 발달하는데, 자제력·절제력과 관련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발달이 늦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뇌는 '감정의 뇌'라고 불리는 변연계가 '사고의 뇌'라고 불리는 전두엽보다 먼저 발달한다.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을 표현할 수는 있어도 이런 감정을 통제·조절하는 전두엽이 덜 발달해 충동성, 공격성이 높은 시기가 청소년기다. 그 때문에 한 번 도박에 중독되면 성인보다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청소년 시기에 도박에 빠지면 온전한 뇌 발달이 이뤄지지 않아 성인이 되어서도 충동적이고 계획적이지 못하는 사춘기 상태의 뇌를 지니게 된다"며 "덜 중독적인 놀이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큰 예방책이자 치료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또래를 협박·폭행해 금품을 갈취하거나 중고 거래 사기와 불법 대출까지 손을 대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한 학교전담경찰관(SPO)은 "학내 문제를 살펴보다 보면 학생들끼리의 괴롭힘이나 다툼의 원인에 도박이 껴 있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라고 말했다.
경찰과 금융 당국은 보이스피싱처럼 도박에 쓰이는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의 지급을 정지해 청소년의 온라인 도박 사이트 이용을 원천 차단하는 방안 등의 입법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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