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우보악] 정비된 탐방로 없지만 오르기 쉬운 '바람의 언덕'
우보악은 서귀포시 색달동의 중산간에 있다. 대유랜드 동쪽에 우두커니 선 오름이다. 이름이 참 재밌다. 걸어가는 소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우보악牛步岳', 또는 소가 엎드려 있는 모양이어서 '우부악牛附岳'이라고 했다는데, 지명에 얽힌 옛사람의 안목은 알다가도 모를 때가 많다.
요리조리 아무리 봐도 도무지 소를 닮은 모습을 찾아내기 어렵다. 겉을 보는 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니 선조들의 통찰을 감지하는 건 애초에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정비된 길 없지만 탐방은 쉬워
밋밋한 세 개의 봉우리를 가진 우보악은 마주 보는 남봉과 북봉의 직선거리가 500m에 달할 만큼 오름치고는 몸집이 거대하다. 동쪽, 서귀포 시가지를 향해 뻥 뚫린 말굽형 굼부리가 눈길을 끈다. 꽤 깊고 널찍한 굼부리 안에서는 귤농사와 밭농사를 짓고, 그 사이로 몇 채의 농가도 보인다.
오름의 북쪽 사면은 가축용 사료로 쓸 풀을 기르는 초지대다. 초지대는 오름 능선과 거의 같은 높이로 이어져 굼부리가 갑자기 푹 꺼지는 모양새다. 초지 너머론 대규모 골프장이 자리를 잡았다. 무척 완만한 서쪽 사면도 풀밭이 두텁다. 그 아래로 사륜바이크와 오프로드용 자동차 체험장이 들어섰다. 상대적으로 가파른 남쪽 사면은 삼나무와 해송이 주종을 이뤄 빼곡하다.
우보악은 안내판이나 조성된 탐방로가 따로 없다. 앞사람의 발자취를 찾아가며 올라야 한다. 남쪽 색달동에서 오르는 길이 있으나 수풀에 뒤덮여 희미하다. 대부분은 서쪽, '중문오프로드체험장'을 들머리로 잡는다. 체험장의 거친 길을 따라 들어선 후 넓은 초지를 가로질러 서쪽 능선에 올라서면 된다. 방향을 잘 가늠하면서 초지를 훼손하지 않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완만하고, 훤히 보이는 곳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능선에 오를 수 있다.
들머리인 오프로드체험장은 가을이면 억새와 수크령이 장관이다. 오르내리는 동안 멀리 산방산과 군산, 송악산, 모슬봉 등이 배경을 이뤄 풍광도 더할 나위 없다. 10월 중순이 지나면 초지의 풀베기가 끝난 때라서 오르내리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능선에서 마주하는 놀라운 풍광
해발고도 301.4m, 오름 자체의 높이가 96m나 되는 우보악이지만, 들머리에서 보면 밋밋한 언덕 같다. 그러나 능선에 올라서면 놀라운 풍광의 연속이다.
북쪽으로 넉넉하고 가없는 품을 한껏 펼친 한라산이 익숙한 모습으로 서 있고, 거의 같은 높이로 이어지는 능선 아래로 깊이 파인 굼부리(분화구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도 흥미롭다. 전체 모양이 고대 로마의 노천극장을 떠올리게 한다.
가을께, 풀베기가 끝난 초지를 걷는 기분이 참 좋다. 능선에서 발아래의 서귀포를 조망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억새를 흔들고 불어온 바람도 마찬가지. 폭이 널찍한 서쪽 능선은 트랙의 100m 직선주로처럼 산불감시초소에 닿기까지 곧게 뻗었다. 이 구간은 수크령과 억새, 띠가 뒤덮여서 걷는 맛이 더 좋다. 세상의 모든 가을 풍광을 혼자 만끽하는 듯 기분 나는 능선이다.
능선 끝의 산불감시초소는 이 모든 우보악 절경을 다 끌어안고 홀로 즐기는 고독한 전망대다. 알파벳 U자 모양을 한 능선과 까마득히 내려선 굼부리 바닥이 한눈에 들어오고, 초지대 능선 너머로 겹겹을 이룬 한라산 남쪽 풍광도 훤하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오름 정상인 남봉까지는 150m 거리. 초소 바로 앞의 산담을 끼고 길이 이어진다. 그러나 수풀이 우거지는 때면 들어서기가 쉽지 않고, 남봉은 나무와 웃자란 풀로 인해 조망도 막힌다.
해발 0m에서 1,950m까지 한눈에
사실 우보악은 산불감시초소에서 조망하는 풍광만으로도 차고 넘칠 지경이다. 한라산 정상에서 서귀포 앞바다의 범섬과 문섬, 섶섬까지 비스듬히 이어진 제주 남쪽 풍광이 한없이 평화롭다.
그 사이로 삼각뿔 모양을 한 녹하지악과 시오름, 각시바위오름, 고근산 같은 게 불쑥불쑥 솟아 단순한 풍광에 역동적인 하늘금을 그었다. 해발 0m에서 1,950m까지 다 보이는 제주만의 절경이다.
초소 주변은 억새와 띠, 수크령이 바람결 따라 춤추며 한껏 가을 분위기를 띄운다. 때문에 탐방객 대부분은 산불감시초소까지 왔다가 작은 벤치에 앉아 우보악 정취에 빠져들곤 한다. 제주의 가을이 마련한 선물이다.
북쪽 능선을 따라 걷는 것도 좋다. 따로 탐방로가 조성된 곳은 아니지만, 트랙터가 다니는 너른 길이 초지대 사이로 나 있다. 능선을 걷는 내내 커다란 굼부리와 서귀포 앞바다, 한라산을 맘껏 조망할 수 있다. 봄날이면 이 부드럽고 너른 초지대를 따라 고사리가 지천이다.
길은 너른 밭뙈기를 만나며 끝난다. 다시 능선을 되짚어 서쪽 능선까지 간 후 오프로드체험장으로 내려서면 된다. 전체 3km쯤 되는 우보악 탐방은 2시간이면 넉넉하다.
Info
교통 주변을 지나는 버스가 없다. 내비게이션에 '중문오프로드체험장' 입력. 체험장 주차장 건너편으로 들어서면 된다.
맛집(지역번호 064)
제주 바다에서 서식하는 보말 중에서 삼각뿔 모양의 수두리보말은 쫄깃하면서도 깊은 맛이 좋아 '보말의 여왕'으로 부른다. '중문수두리보말칼국수(739-1070)'는 수두리보말로 만든 칼국수와 죽 맛집으로 널리 알려진 곳. 보말 내장으로 맛을 낸 칼국수 국물이 시원하고, 톳을 넣고 직접 반죽해 검은빛을 띠는 면이 특징이다. 무료로 제공되는 보리밥도 인기다. 수두리보말칼국수 1만1,000원. 보말죽 1만3,000원.
주변 여행지
천제연폭포
한라산에서 시작된 중문천이 3단 폭포를 만들었다. 천상의 선녀들이 다녀갔다는 전설로 인해 '천제연天帝淵'으로 불린다. 3단 폭포 중 첫 번째 폭포의 못을 천제연이라고 부른다. 병풍처럼 펼쳐진 주상절리 아래에 에메랄드빛의 깊은 물웅덩이가 아름답다. 평소엔 물이 떨어지지 않다가 큰비가 올 때만 폭포수가 형성된다. 입장료 2,500원(어린이 1,350원).
여미지식물원
1989년에 문을 연 제주 대표 식물원이다. 동양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3,800평의 유리온실 안에 열대와 아열대 식물과 선인장, 수생식물이 자라는 풍광이 이채롭다. 온실 중앙의 전망대에 오르면 중문과 한라산 풍광이 멋들어진다. 맑은 날엔 가파도와 마라도도 잘 보인다. 3만 평의 야외식물원엔 세계 각국의 정원이 조성되어 눈이 즐겁다. 식물원 입구에서 관광열차가 운행한다.
입장료
1만2,000원(어린이 7,000원).
문의
064-735-1100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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