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65살 남편에게 아내가 출근을 강요한 이유

퇴직 첫날 저녁, 꽃다발과 상자 두 개를 들고 집에 들어섰다. 서른다섯 해를 다닌 회사였다. 이제 좀 편하게 쉬라며 아내가 케이크를 꺼냈다.

내일은 늦잠도 자고, 새벽에 전화도 안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사흘 뒤, 아내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다시 출근하면 안 돼?"

찬장을 고친 뒤 시작된 정리벽

퇴직 첫 아침, 찬장 경첩이 풀린 걸 고쳤더니 아내가 고맙다고 했다. 그 기분에 문구와 공구를 종류별로 나누고, 가위는 다용도실 높은 선반의 공구함 속으로 들어갔다. 오후에 뜨개실을 자르려던 아내는 의자까지 끌고 가서야 가위를 찾았다.

리모컨은 상자에 넣었고, 냉장고에는 할 일과 시간이 적힌 종이가 붙었다. 거실 수납장을 옮기자는 제안에 아내는 지금 자리가 좋다며 몇 번을 거절했지만, 대화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친구 약속 장소까지 바꾼 날

목요일 아침, 아내 친구의 전화를 대신 받아 거실 정리를 이유로 만날 장소를 커피숍으로 바꿔버렸다. 머리를 말리고 나온 아내가 문자를 보고 물었다. "왜 자기 약속까지 바꿨느냐고."

냉장고에는 "거실 수납장 정리, 목요일 오전 열 시. 영숙 협조"라고 적혀 있었다. "나 여기 취직했어?"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자기 상자 하나는 못 버렸다

친구들이 온 사이 작은방에서 자기 서랍을 정리했다. 다른 사람 서랍은 빠르게 비우던 손이 이번엔 자꾸 멈췄고, 낡은 줄자와 옛 동료들 이름이 적힌 수첩 앞에서 결국 버린 건 펜 몇 개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온 아내가 발밑의 빈 상자를 가리키며 버려도 되냐고 물었다. "그건 둘래. 마지막에 저기다 내 것 넣어 왔거든." 거실에 그대로 남은 아내의 수납장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고, 식탁에 마주 앉아 냉장고 종이의 "영숙 협조"라는 글씨를 지웠다.

다음 주, 아내가 손잡이 헐거워진 뜨개 바구니를 내밀며 손잡이만 봐달라고 했다. 칸도 나눠줄지 물으려다 말을 멈추고, 나사만 조인 채 실과 가위 자리는 그대로 두었다. 두 주 뒤 회사 후배의 전화를 받고 나서는 길, 오늘 뭐 하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재촉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