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명 얼어 죽을라… 전력난 우크라 “겨울만이라도 해외 피란 가달라”
한겨울에 접어드는 우크라이나 일반 국민의 삶이 전쟁 발발 이후 최악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러시아의 무차별 미사일 공격으로 에너지 기반 시설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주요 도시의 전력난이 극심해진 탓이다. 보일러와 수도, 가스 공급 펌프마저 작동을 멈추면서 난방은 물론 따뜻한 음식도 없이 겨울을 나야 하는 처지가 됐다. “수만명이 얼어 죽는 대규모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올겨울만이라도 해외 피란을 가라”는 권유까지 나왔다.
영국 BBC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 DTEK의 막심 팀첸코 대표는 19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국민을 대상으로 “가능하면 올겨울을 외국에서 보내는 것을 고려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전력 공급 시스템이 크게 불안정해져 전력 시스템의 붕괴가 우려된다”며 “3~4개월 만이라도 해외에 피란을 가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럴 경우, 군 시설과 병원, 철도 등에 안정적 전력 공급이 가능해지고, 전력 부족으로 인한 인도적 참사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중순부터 한 달 넘게 지속된 러시아의 공격으로 발전소의 약 50%가 파괴되면서 전력과 난방 공급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넘는) 1000만 명이 암흑 속에 살고 있다”고 할 정도다. CNN은 “이런 와중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눈도 내리기 시작하면서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 도시 주민들도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수복된 헤르손의 경우, 철도역을 제외한 도시 전역에 전력 공급이 중단돼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다. CNN은 “헤르손 수복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던 피란민들마저 다시 짐을 싸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우크라이나군의 헤르손 수복을 축하하던 행사는 추위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며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물과 음식을 받으려는 주민들의 줄만 길게 늘어섰다”고 전했다.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헤르손과 미콜라이우 등 (전력 사정이 악화한) 일부 지역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수도 키이우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키이우 현지의 한국 교민은 “정전·단전이 하루 12시간씩 지속되고, 난방은 거의 끊겼다”며 “(단수에 대비해) 주방과 욕실에 받아 놓은 물에 살얼음이 낄 만큼 집안이 춥다”고 말했다. CNN 등은 “온수 샤워, TV 시청, 인터넷 사용은 사치가 됐다”며 “전등이 아닌 촛불로 겨우 빛을 밝히고, 요리를 하는 건 운이 좋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고 보도했다. 하르키우와 오데사, 드니프로, 르비우 등 다른 대도시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들은 “최악의 경우 올겨울 수만 명이 동사(凍死)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겨울철 위기에 대한 우려가 본격화하면서 ‘평화 협상’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달 초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평화 협상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진 데 이어, 18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평화 협상을 위한 중재 의사를 밝혔다. 교황은 이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화해는 가능하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바티칸은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다음 날 “진정한 평화는 러시아군을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당시의 국경 밖으로 몰아내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완전 철군 없는 휴전이나 평화 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일각에서는 이르면 내년 봄까지 러시아군을 완전히 격퇴할 수 있다는 ‘희망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영국을 방문 중인 볼로디미르 하우릴로우 우크라이나 국방 차관은 이날 “우크라이나군이 크리스마스 때까지 크림반도로 진격하고, 내년 봄에는 전쟁을 끝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러시아 내에서 (푸틴 대통령의 실각 등) 급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 못 한다”는 전제를 깔았다.
한편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이날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우크라이나가 마땅히 누려야 할 평화와 안보를 쟁취할 때까지 영국이 계속해서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이날 대공포와 레이더, 대(對)드론 장비 등 5000만파운드(약 800억원) 규모의 방공 무기 체계 지원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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