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RS6·RS7 퍼포먼스 타보니 'R8보다 강력한 끝판왕' [시승기]
아우디는 참 신기한 브랜드다. 대중적인 프리미엄을 지향하는듯 똑똑하고 매력적인 자동차를 만들지만, 가끔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으로 업계를 놀라게 한다. 아우디가 표방하는 ‘기술을 통한 진보’는 절대 보여주기식 슬로건이 아닌 듯하다. 모든 임직원에게 내재된 핵심 가치로, 아우디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근본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겉으로는 매끈한 슈트 차림의 비즈니스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머릿속에 온갖 장난기 가득한 엔지니어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우디는 2026년 이후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지 않겠다면서도 2026년에 역대 최고의 엔진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 엔진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는듯 최근에는 RS를 업그레이드한 퍼포먼스 버전을 선보였다. 피할 수 없는 전동화 시대, 아우디가 얼마나 멋진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지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브랜드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내연기관인 RS6 아반트 퍼포먼스와 RS7 스포트백 퍼포먼스를 시승했다.
#40년 역사의 아우디 RS…역대 최강 엔진의 탄생
시승기에 앞서 아우디 RS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아우디는 S(Sovereign, 제왕ㆍ군주)와 RS(Renn Sport, 레이싱 스포츠) 등 두 가지 고성능 모델을 내놓고 있다. 물론 RS가 S보다 강력하지만, 이 둘을 단순히 성능 차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S가 해당 라인업의 잠재력을 한껏 끌어올렸다면, RS는 좀 더 극단적 레이싱 감성을 추구한다. 1991년 출시된 S2를 통해 S가 시작했고, 이로부터 3년이 지난 1994년 RS2가 나오며 RS가 탄생했다.
첫 RS6는 2002년 5세대 A6를 기반으로, 포르쉐와 공동 개발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에는 6세대를 바탕으로 2세대가 나왔는데, 이때까지는 세단과 아반트(왜건)가 모두 판매됐다. 2012년 7세대 기반 모델이 출시되면서는 세단이 사라지고 오직 아반트로만 남았다. 대신 '가장 아름다운 고성능 스포츠백'인 RS7이 추가됐다.
이번에 시승한 차량은 2019년 선보인 RS6ㆍRS7의 성능을 한층 더 끌어올린 퍼포먼스 버전이다. BMW M의 고성능 버전인 CS(Club Sport)와 비슷한 개념이다. 당장 제원만 살펴봐도 무려 630마력의 최고출력과 86.7kgfㆍm의 최대토크를 뿜어낸다. 아우디를 대표하는 스포츠카 R8(610마력, 57.1kgfㆍm)보다 강력한 숫자다.
#얼굴은 A6보다는 A7이 낫지?!
외관 디자인은 만족스럽다. RS6ㆍRS7의 얼굴이 거의 똑같이 생겼는데, 이 부분에서는 RS6가 혜택을 본 듯하다. RS6라고 해서 A6를 따온 것이 아니라, 좀 더 잘생긴 A7의 얼굴을 가져온 덕분이다. 고성능인 만큼, 세련되고 스포티한 A7이 확실히 더 어울린다. 실제로 RS6의 외장은 앞문과 루프, 트렁크를 제외하고 A6와 다른 부품을 썼다고 한다.
퍼포먼스라고 해서 기존 RS와 디자인이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LED 매트릭스 레이저 헤드램프, 싱글 프레임 그릴, 대형 에어 인테이크, 프론트 스포일러, 사이드 플랩 등 여전히 매력적인 요소를 갖췄다.
비슷한 전면과 달리 측면에서는 RS6ㆍRS7이 서로 다른 자태를 뽐낸다. 개인적으로는 전통적인 세단보다 왜건ㆍ스포트백의 옆태를 사랑한다. 이렇게 멋진 차를 단순한 짐차로 평가절하당하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헤드램프에서 시작해 트렁크 리드로 이어지는 전체적인 실루엣, 차체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강력한 캐릭터 라인, 차가 길고 낮게 보이게 만드는 루프 레일과 날렵한 윈도우 트림ㆍ사이드실 등이 조화롭게 눈에 들어온다.
휠과 타이어 구성도 새롭다. 시승차 모두에는 ‘RS 다이내믹 패키지 플러스’ 선택 시 적용되는 22인치 휠과 타이어가 장착됐는데, 디자인ㆍ성능ㆍ효율을 모두 만족시키는 조합이다. 일단 ‘Y자’ 형태의 5스포크휠은 기존 알루미늄 휠보다 5kg씩, 총 20kg의 무게를 줄이면서도 브레이크 냉각 성능을 향상시킨다. 콘티넨탈 스포츠 7 타이어 역시 마른 노면 및 젖은 노면에서의 제동력/안정성/핸들링 능력을 높인다.
RS6ㆍRS7의 차이는 후면에서 도드라진다. RS6는 왜건답게 루프 스포일러와 A6처럼 크롬 라인으로 연결된 분리형 헤드램프가 들어갔다. 반면, RS7은 스포트백 특유의 팝업형 스포일러와 A7처럼 한줄로 이어지는 헤드램프가 탑재됐다. 하단부의 과격한 범퍼 디자인과 가로로 긴 타원형 듀얼 머플러는 동일하게 장착됐는데, 고성능 모델 특유의 존재감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느낌이다.
#고성능도 엉덩이가 중요하다! 통풍 기능 들어간 스포츠 시트까지!
실내도 RS6ㆍRS7과 다르지 않다. 그레이를 기본으로 한 레드 포인트에 새롭게 블루 포인트가 추가된 것 정도다. 문을 열면 하단에 RS 퍼포먼스 전용 도어램프가 나오는 것도 차이라 할 수 있겠다.
전반적으로 고성능 차량에 맞는 구성을 잘 갖췄다. RS 전용 그래픽을 보여주는 계기판과 디스플레이, RS1과 RS2 모드를 작동할 수 있는 RS 버튼, 크기를 키운 패들 시프트, D컷 스티어링휠 등은 시인성도 좋고 소재 및 배치도 만족스럽다.
곳곳에 적용된 알칸타라와 카본은 고성능 차량의 특권이다. 놀라운 것은 RS6ㆍRS7 퍼포먼스는 전용 스포츠 시트가 탑재됐는데, 여기에는 무려 통풍 기능이 포함됐다. 강렬한 태양이 지배하는 나파밸리 주행에서 큰 도움이 됐다. 운전석뿐 아니라 동승석 포함이다.
#달라진 엔진, 고작 30마력 차이라고?
퍼포먼스 버전은 RS6ㆍRS7의 파워트레인을 개량해 성능을 높였다. 4.0리터급 V8 트윈터보 엔진(보어X스트로크 1:1 스퀘어 타입)인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2개의 트윈 스크롤 터보차저 크기를 각각 3mm씩 키워 과급량을 늘리고, 부스트 압을 2.4바(bar)에서 2.6바로 높여 출력과 토크를 모두 향상시켰다. ECU 맵핑으로 성능을 끌어올린 이전 퍼포먼스 버전과 확연한 차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최고출력은 600마력에서 630마력, 최대토크는 81.6kgfㆍm에서 86.7kgfㆍm로 늘어났다. 다이내믹한 변화는 아니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600마력이 넘는 천상계에서 5~6%는 꽤 의미 있는 숫자다. 여기에 다양한 경량화 기술이 추가되면서 주행 성능도 좋아졌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 시간도 3.6초에서 3.4초로 줄었다. 0.2초 역시 3초대 천상계에서는 무척 의미있는 발전이다.
변속기는 8단 팁트로닉이다. R8과 달리 듀얼클러치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86.7kg.m에 달하는 높은 토크 때문으로 보인다(R8은 57.1kg.m). 기어비는 1단 4.7:1, 2단 3.15:1로 초반에 힘이 좋은 세팅이다. 또, 6단에서 1:1을 만들어 7ㆍ8단에서 초고속 주행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주행해 보니 생각보다 빠르게 기어 단수를 바꾸며 속도를 높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효율(Efficiency) 모드에서는 시속 70km 정도에서 이미 8단을 사용하는 등 일반적인 주행 상황에서는 낮은 RPM으로 부드럽고 편하게 달린다.
#원하는 만큼 달린다! 성능과 효율의 절묘한 줄타기
쭉 뻗은 직선 도로를 만나 가속페달에 힘을 줬다. 귀를 때리는 배기음과 함께 노면을 움켜쥐며 쏜살같이 치고 나간다. 그런데 신기하다. 분명 계기판 속도계가 빠르게 올라가는게 보이는데 묘하게 안정적이다. 속도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시공간이 분리된 다른 차원을 달리는 듯했다. 청각과 시각이 요동치는 것과 달리 육감은 오히려 차분하다. 속도에 따른 스티어링 및 서스펜션 세팅이 워낙 절묘한 덕분이다. 운전자의 의지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적절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주행모드에 따라 변화가 크다는 것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RS6ㆍRS7에는 4가지 기본 모드에 개인 맞춤형 모드인 RS1과 RS2 등 6가지가 있다. 각 모드에 따라 스로틀과 회전수 등 엔진 반응, 스티어링휠 감도, 차체 강성과 ESC의 개입 정도 등이 전혀 다르다. 주행 모드를 바꿀 때마다 마치 다른 차를 타는 것처럼 새롭고 분명했다.
낯선 이질감에 조금 익숙해지니 고성능의 숨결이 자세히 느껴진다. 특히, 과격하지 않게, 속도에 맞춰 적당히 으르렁거리는 사운드가 매력적이다. 시승이 끝나고 아우디 스포츠 담당자에게 물어봤더니 퍼포먼스 버전의 사운드를 운전자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들려주기 위해 흡차음재를 8kg이나 덜어냈다고 한다. RS6ㆍRS7은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들어가면서 다소 심심하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귀를 즐겁게 해주면서 경량화까지 챙겼다니 환영할 일이다.
사실 RS6ㆍRS7급 고성능 모델에도 마일드 하이브리드가 들어간다는 것은 좀 의외다. 기술적 효용 때문에 필요할 수도 있겠고, 배출가스 규정을 맞추기 위해 넣어야 했을 수도 있겠다. 분명한건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들어가면서 RS의 활용성이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출발 가속 및 시속 22km 이하에서 주행에 도움을 주고, 55~160km/h의 항속 주행에서는 엔진을 끄고 모터로만 달려 효율을 높인다. 참고로 모터는 12kW(16마력)급이다.
#에어서스펜션 vs 스포츠 서스펜션
퍼포먼스 버전에는 RS6ㆍRS7에서 선택사양이었던 RS 다이내믹 패키지가 기본이다. 사륜 조향 시스템인 올휠 스티어링과 콰트로 스포츠 디퍼렌셜이 추가된다. 특히, 구동력 배분이 다소 보수적이었던 아우디의 콰트로가 셀프-록킹 센터 드퍼렌셜을 통해 자유도를 대폭 늘렸다. 40:60의 전후 구동력을 기본으로 주행 상황에 따라 70:30, 15:85까지 바꿔준다. 특히, 뒷바퀴에 85까지 줄 수 있어 후륜 특유의 스포티한 달리기 능력을 구현할 수 있었다.
옵션으로는 RS 다이내믹 패키지 플러스가 있다. 280km/h로 제한됐던 최고속도가 305km/h로 늘어나는데, 여기에 맞춰 안정적인 제동을 위한 RS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이 추가된다. 앞 디스크 크기도 42mm에서 44mm로 커진다(뒤는 37mm로 동일). 또, 기본으로 들어가는 에어 서스펜션이 스포츠 서스펜션으로 바뀐다.
서스펜션의 변화로 인한 주행감각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에어 서스펜션 자체도 RS에 맞춰 개발한 제품이어서 만족스러웠는데, 스포츠 서스펜션은 이보다 한두 단계 위라고 느껴졌다. 물론, 일반적인 주행에서는 에어 서스펜션의 승차감이 좋다. 불규칙한 도로나 요철 등을 지날 때 노면을 걸러내는 능력은 발군이다. 운전자의 피로를 확실히 덜어주는데, 잘 포장된 도로에서는 비단 위를 달리듯 우아하다.
다만, 고속이나 급격한 코너링 등에서는 약간의 한계가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런 아쉬움을 스포츠 서스펜션이 완벽히 보완했다. 특히, 나파벨리 인근 산길 와인딩 도로를 달릴 때 그 진가가 나타났다. 마치 코너의 안쪽 중심을 꽉 잡고 레일 위를 도는 것처럼 매끄럽게 주파했다. 속도를 제법 높인 고속 코너링에서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달렸다. 중력을 무시한듯 스티어링휠의 움직임과 차체 거동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다. 지금껏 수많은 차를 시승하면서도 좀처럼 경험하기 힘들었던 감동이다. 동승한 운전자 역시 “70점짜리 운전자에게는 70점, 90점짜리 운전자에게는 90점이 되어주는 차인줄 알았는데, 지금보니 70점짜리 운전자를 90점으로 만들어 주는 100점짜리 차”라며 시승 소감을 말했다.
#과하지 않아서 더 좋은 아우디
2톤이 넘는 5m짜리 차가 이렇게 유연하게 달릴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모든게 만족스러웠다. 크고 무거운 차체를 날렵하게 움직이는 기민한 스티어링휠, 안정적인 거동을 돕는 서스펜션 세팅과 이를 보완해 주는 섀시, 순식간에 개입해 운전자를 도와주는 ESC와 콰트로 시스템, 든든하고 안전하게 멈춰주는 브레이크 시스템 등 우리가 수십년 넘게 환호했던 고성능 내연기관의 모든 기술이 모두 집약된 듯했다.
무엇보다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일부에서는 RS가 BMW M이나 메르세에스-벤츠 AMG보다 너무 얌전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적이지 않게, 아우디스러운 고성능을 너무나 잘 만들어냈다.
시승을 하면서 행복한 마음과 슬픈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행복은 요즘 같은 전동화 시대에 이런 고성능 모델을 시승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고, 슬픔은 더이상 이런 고성능 내연기관을 보는게 쉽지 않다는 아쉬움이었다. 무엇보다 이 차를 만든 아우디 스포츠 엔지니어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끝이 정해진 고성능 내연기관을 만드는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가슴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울컥 솟아올랐다.
아무튼 전동화 시대는 분명히 올 것이다. 각자의 소중한 추억을 가슴에 담고, 좀 더 멋지게 이별하길 희망한다. 내연기관 엔지니어들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이들이 만든 고성능 자동차를 더욱 즐겁게 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엔진이 사라지는 것이지 고성능이 사라지는건 아닐테니 말이다. 물론, 엔진이 없어지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