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가 답? 현재 인류의 화석연료 의존도는 어느 정도인가?

[권효재의 에너지 바로알기]

화석연료 왜 중요한가

에너지란 무엇인가? 에너지는 시대를 정의하는 강력한 힘이다. 역사를 살펴보자.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은 초기 승기를 잡았지만, 석유 확보에 실패하고 전투기와 전차를 굴릴 연료가 없어 결국 패망했다. 현대 문명에서 에너지는 공기, 물, 식량에 버금가는 필수재다. 고층 아파트는 전기 펌프로 수도를 공급한다. 전기가 끊기면 물도 쓰지 못하는 참사가 발생한다. 1960년대 이후 녹색혁명으로 식량생산이 2배 이상 늘어 80억 인구가 먹고 살지만, 화석연료에서 생산한 비료 덕분이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이제는 물도, 식량도 부족한 세상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원자력 발전 장려 정책이 여러 나라에서 다시 채택되고 있지만 여전히 에너지의 주력은 화석연료다.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의 82%는 석탄(27%), 석유(32%), 천연가스(23%)에서 나온다. 원자력은 4%, 수력은 6%, 바이오매스+태양광+풍력은 합계 8%의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러므로 안정적으로 화석연료를 확보하고 크게 부담 없는 가격 수준을 유지해야 현대 문명과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있다. 마법을 부려 내일 당장 원자력 발전 용량을 2배로 늘리고, 태양광과 풍력 발전 용량을 3배로 늘린다 해도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는 없다.

1965년 이후 화석연료의 비중 변화와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미국과 중국의 에너지확보戰

1970년대 2번에 걸쳐 발생한 오일쇼크는 인류에게 안정적인 화석연료 공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각인시켜 주었다. 이후 화석연료 공급을 외부에 의존하는 한 경제와 안보 모두 불안하다는 깨달음에서 "에너지 전환"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값싼 중동 석유에 의존하던 미국과 유럽에서는 석유 사용량을 줄이는 에너지 효율 개선 노력이 집중되었다. 크고 화려하나 기름먹는 하마 수준이었던 미국차가 작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일본차에 밀려 쇠퇴하기 시작한 시기도 이 때였다.

높은 가격과 효율 개선으로 인해 화석연료 소비 증가는 둔화되었고, 1990년대초 냉전종식과 맞물려 화석연료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 고유가로 인해 북해 등 기존에는 채산성이 없었던 지역에서도 석유 개발을 시작하고 서방의 자본과 기술로 인해 구공산권 지역의 화석 연료도 대거 시장에 쏟아졌으나, 수요는 정체되었기 때문이었다. 공급 과잉은 다시 화석연료 가격을 대폭 낮추었으며, 미국의 일극 체제로 화석연료의 공급망이 안정되자 화석연료 소비는 1990년대 중반부터 다시 급증했다.

북해 유전.

2000년초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매년 7%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어가면서 중국은 화석연료를 포함한 모든 에너지의 블랙홀이 되었다. 중국의 치솟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2008년 유가가 배럴당 145달러까지 치솟았다. 이 시기 중국과 미국은 화석연료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미국은 이 때 전세계에서 가장 석유를 많이 수입하는 국가였는데, 1990년대 SUV 열풍으로 유류 소비는 늘었지만, 국내 화석연료 생산량은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고갈되는 국내 유전을 대체할 수 있는 신규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 확보를 위해 광범위하게 전세계 분쟁에 개입하고 이권을 확대했다. 미국의 거대 석유 회사들은 이 시기 중동 카타르에서 이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의 LNG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라크의 유전과 함께 카스피해의 석유/가스 자원까지 확보하기 위해 빈약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미국은 중동을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밀고 들어가려고 했고, 대형 석유회사들은 초심해(超深海)유전을 개발하고 캐나다 오일샌드까지 파먹을 기세였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세계 모든 곳에서 석유를 긁어모아야 했으며, 신흥 강국 중국 역시 석유가 부족해서 아프리카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재생에너지의 중요성

석유와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대외 확장/개입 기조는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쇠퇴한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12년 유럽 재정 위기는 미국과 유럽의 대외 개입 능력을 약화시켰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2008년을 기점으로 미국내 셰일 오일과 셰일 가스의 생산이 급증해서 해외에서 화석연료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미국 내 셰일 오일/가스의 급격한 생산 확대로, 미국은 2018년에는 60년만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자급자족하고 수출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화석연료가 미국 내에서 차고 넘치자, 국제 교역이 불편한 천연가스의 가격은 미국내에서 사상 최저가로 떨어졌고 투자자들의 관심은 재생에너지로 옮겨갔다.

그렇게 2020년대는 재생에너지 붐으로 시작했는데, 코로나 19 사태로 제로금리가 시행된 덕이 컸다. 미국이 화석연료 자급자족에 성공하고 트럼트 1기부터 중국과의 패권 경쟁 구도가 명확해지면서 에너지 무기화 이슈가 등장했다. 전세계 화석연료가 달러화로 결제되고, 미해군이 주요 해상 수송로 통제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화석연료 공급을 조절하여 중국의 목을 죌 수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미중갈등의 심화는 중국을 각성시키고 변화시켰다. 중국은 패권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공공연히 드러내었고,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에너지 공급망을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빠른 경제 성장으로 대량의 석유, 천연가스, 석탄을 수입하는 중국은 패권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사활을 걸고 화석연료 수입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넓은 국토와 강한 제조업 기반을 활용하여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시한 에너지 전환에 중국은 총력을 기울였다. 유럽에서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 고조, 미국 민주당의 재생에너지 우위 정책, 중국의 재생에너지 집중 투자는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2020년대 초반에는 전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투자가 급증하고 에너지 전환 낙관론이 잠시 퍼졌다.

1965년 이후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공급량 변화

취약해진 전세계 공급망

하지만, 2022년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인류는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이 대폭 감소하자 유럽은 에너지 위기에 빠졌고 사회경제적으로 큰 혼란을 지금도 겪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적극적으로 군사 개입까지 해가면서 전세계 화석연료 공급을 관리해왔던 미국은 이제 그 일을 그만두려 하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중동 석유에 의존하지 않으며, 중동의 복잡한 분쟁에서도 발을 빼고 있다.

미국이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하지 않으면서 화석연료 수급이 그럭저럭 유지되어 가격 급변동은 없었지만, 공급망의 안정성은 매우 취약해진 상태다. 아라비아 반도 끝자락 예멘 반군이 지나가는 배들을 공격하자 전세계 컨테이너 물류는 대혼란에 빠졌는데, 비슷한 일들이 언제든지 더 크고 복잡한 형태로 발생할 수 있다.

우리처럼 여전히 중동 석유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감당해야 하는 안보 위험은 커지고 있다. 에너지 공급이 갑자기 어려움에 처하면 경제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2022년 러-우 전쟁에서 전세계는 생생히 목격했다. 전 세계 바다의 자유 통행을 미 해군이 실질적으로 보증하는 현 체계에서 만약 미 해군이 그런 역할을 포기하거나 실질적인 대가를 요구할 때 우리는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무탄소 에너지인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늘리는 일은 길게 보면 꼭 해야 할 과정이지만, 역설적으로 안정적인 화석연료 공급이 담보되어야 가능하다.

재생에너지는 대규모 자본의 장기 투자, 관련 제도와 정책 변경, 기술 개발 등 많은 변화와 노력이 있어야 대거 보급할 수 있다. 발전소 1기당 조단위 투자가 필요하며 치열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원자력 역시 마찬가지다. 둘 다 경제와 사회가 안정되어야 사용가능한 에너지원이다. 이 둘의 비중을 늘리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경제를 뒷받침하는 화석연료의 안정적 공급이 꼭 필요하다. 우리 땅과 바다에서 화석연료가 나지 않아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 권효재 COR Energy Insight 페이스북 지식그룹 대표는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위한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는 직장인. 에너지 업계 전문가들의 연구를 시민들에게 정리해 제시하고, 가짜뉴스를 가리는 일이 취미다. 현재 에너지 업계 임원으로 종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