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철수한 수입차 브랜드..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한국 수입차 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으로 손꼽힌다. 매년 꾸준히 수입차 시장이 두 자리수를 손쉽게 넘길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데다 특정 모델은 세계 판매 1,2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가.

모든 수입차가 잘 팔릴것 같지만 쏠림 현상이 대단히 심각하다. 독일 3사 인기는 아우디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좋지만 호기롭게 한국에 진출했다가 예상 외로 판매가 부진해 몇 년이 채 지나지도 않고 철수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지금까지 국내 시장에 도전했다가 철수한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스바루

사륜구동과 박서 엔진의 명가 일본 스바루자동차는 2010년 한국에 진출했다. 중형 세단 레거시와 SUV 아웃백, 포레스터를 들여왔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 부족한 라인업, 박서 엔진의 불편한 정비성과 비싼 부품값 등으로 부진을 극복하지 못했다.

더구나 스바루가 직접 진출한 것이 아니라 임포터 형태로 계약을 맺아 국내 중견그룹이 판매를 도맡았고 판매 실적은 형편이 없었다. 국내 정서에 맞지 않는 평범한 디자인으로 명확한 캐릭터가 없던 것도 약점으로 작용했다.  당시 스바루코리아는 사륜구동을 주요 포인트로 강조했지만 아우디 콰트로가 사륜구동 승용차 이미지에서 압도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다보니 확실한 장점으로 어필하기도 어려웠다.

이미지 쇄신을 위해 스바루의 상징적인 고성능 모델인 임프레자 STi를 들여오려고 했지만 기존 모델의 연식변경후 가격을 놓고 스바루 본사와 협상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임프레자는 소수 인증용 모델 몇대만 팔리는 운명으로 전락했다. 스바루가 한국 시장을 떠난건 2012년말로 진출 3년만이다.

한국에서 철수한 스바루는 북미를 중심으로 해외에서는 꾸준히 선전하고 있다. 2010년대 GM이 보유한 10% 지분을 토요타가 인수하면서 토요타 제휴를 통해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후에 제작한 신차가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신뢰도, 뛰어난 안전성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 중 토요타와 공동 개발한 스포츠 쿠페 토요타 86, 스바루 BRZ는 마니아 충성도가 높은 독보적인 모델이다. 국내에는 토요타 GT86으로 출시되었다.

스즈키

스즈키는 1997년 국내 임포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사이드킥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SUV가 우선적으로 수입됐지만 곧바로 IMF 사태와 맞물리면서 본격적인 활동도 해보지 못하고 곧바로 철수했다.

국내 중견 기업들이 2010년대 스즈키에 일방적인 러브콜을 보내면서 임포터를 따려고 했지만 스즈키 본사에서는 한국 시장에 맞는 차가 없다며 거절했다. 수입차하면 중대형차가 인기인 국내 특성상 재진출은  어려워 보인다.

스즈키는 동남아시아 국가와 신흥국 시장을 중심으로 선전하고 있다. 인도 마루티그룹과 합작한 마루티-스즈키는 인도 시장 점유율 1위를 10년 넘게 질주하는 등 잘 나가고 있다. 현재 스즈키코리아는 국내에 모터사이클만 수입해 국내에서 판매를 대행하고 있다.

미쓰비시

2008년 미쓰비시자동차는 대우자동차판매 계열사인 MMSK를 통해 한국에 진출했다. 고성능 세단인 랜서 에볼루션과 SUV 아웃랜더를 시작으로 전륜구동 쿠페 이클립스를 선보였으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엄청난 엔고 현상이 진행되면서 한국에 진출하자마자 1년여만에 철수 위기를 겪었다.

엔고가 안정된 이후 드라마에 차량을 협찬해 인지도를 높여가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국산차 대비 높은 가격대와 확연한 특징이 없는 게 리스크로 줄곧 작용했다. 여기에 일제 강점기 시절 한국에 직접적 피해를 입힌 전범기업 역사도 큰 리스크였다.

수입원인 MMSK가 위크아웃 상태에 들어가면서 자본 잠식이 됐고 결국 2011년 미쓰비시는 공식 철수 절차를 밟았다.

르노 캡쳐를 뱃지엔지니어링 한 미쓰비시 ASX

미쓰비시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여전히 존재감이 그다지 없어 보인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편입된 이후 르노나 닛산 차량의 뱃지 엔지니어링 모델을 선보일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독자 모델 역시 SUV 이외에는 판매량이 하락하고 있다. 작년 10월 중국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닛산, 인피니티

인피니티 G 시리즈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 빅3로 꼽히는 닛산자동차는 2005년 한국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닛산은 프리미엄 브랜드인 인피니티를 먼저 내놓으면서 상승세를 탔다. 독일 고성능 세단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인피니티 G 세단과 쿠페, 중형 M 세단은 가성비 좋은 럭셔리 고성능차로 인기였다. 여기에 글로벌 디자인 혁신을 기록한 SUV FX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이어 대중 브랜드인 닛산이 2008년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알티마, 무라노, 로그를 수입해 입문하기 좋은 수입차 브랜드로 각인됐다. 이후 고성능 모델인 GT-R, 페어레이디 Z 쿠페까지 잇따라 출시하면서 차종 확대와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다.

알티마는 혼다 어코드, 토요타 캠리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르노삼성자동차가 닛산 모델을 들여와 국내 실정에 맞게 개발해 판매하고 있던터라 일부 소모품은 저렴한 국산 부품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었다. 이 덕분에 닛산과 인피니티 차량은 중고차 시장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2019년부터 시작된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의 여파로 인한 신차 판매 감소 및 닛산본사의 2020년 3분기 적자가 무려 6712억엔으로 확대하면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2020년 5월 28일 한국에서 철수했다. A/S는 차량이 단종되어도 향후 8년간은 애프터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대한민국 법령에 따라 2028년까지 제공한다.

닛산은 일본 브랜드중에서 전기차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다 최근 부활의 날개짓을 하고 있어 재진출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FCA 계열 브랜드 – 피아트, 크라이슬러, 닷지, 시트로엥

크라이슬러는 1992년 우성그룹 계열 우성타이어에서 크라이슬러와 닷지 브랜드를 수입해 판매한게 한국 진출 역사의 시작이다. 1996년 우성그룹이 도산한 이후 크라이슬러코리아가 출범, 직판 체제로 운영했다.

크라이슬러 세브링, 300c 등을 수입하고 닷지 브랜드인 캐러밴, 네온, 스트라투스, 캘리버가 잇따라 수입됐다. 이후 계열 브랜드 지프까지 들여와 한국에서 승승장구했다.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의 합작법인인 FCA 설립 이후에는 피아트 모델도 같은 법인에서 수입을 시작했다. 대표 차종은 500 시리즈, 프리몬트 등이다. 하지만 높은 가격 정책에 따른 할인이 이어지고 상대적으로 떨어진 품질 등으로 이미지가 계속 나빠졌다. 판매량도 하락하면서 크라이슬러, 닷지 역시 모델의 노후화와 경쟁력 상실로 2019년 지프를 남긴 대부분의 브랜드를 정리했다.

레트로한 디자인으로 확고한 캐릭터를 가졌던 크라이슬러 300c

2021년 FCA는 PSA 그룹과의 합병으로 스텔란티스로 재출범했다. 현재 스텔란티스코리아는 지프,푸조, DS 등을 수입하고 있다. 시트로엥 모델은 푸조와의 이미지 간섭, 브랜드 이미지 재정립을 위해 잠시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피아트는 한국에서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유럽과 남미 시장에서는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소형차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전기차 모델인 500e가 서유럽에서 판매량 5위에 등극하는 등 좋은 성적을 냈다. 닷지와 크라이슬러는 체질개선을 위해 대대적인 개편에 들어갔다.  전동화 플랜에 따라 전기차 모델의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사브

현재 스웨덴 자동차하면 볼보를 먼저 떠올리지만 한 때는 스웨덴 메이커의 양대 산맥이었던 사브가 국내에서 위세를 떨친적이 있다. 스웨덴 프리미엄인 사브는 1988년부터 두산을 비롯한 병행 수입업체를 통해 국내에 첫 발을 디뎠다. 1992년 사브오토모빌코리아가 정식 진출해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교포와 유학파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좋은 이미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판매량에서도 꽤나 선전했다. 1994년 사브가 GM에 인수되면서 캐딜락을 비롯한 GM 차량과 판매와 서비스를 통합했다.

하지만 이후 적은 모델 가짓수와 비싼 가격, 대중 브랜드 GM과 차량 개발을 공유하면서 프리미엄 이미지가 희석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사브는 혁신적인 안전 기술과 모기업인 사브AB의 항공기 사업부에서 시작한 개성적인 기술로 이미지가 굳건했지만 GM이라는 새주인을 만난 것이 큰 악재였다. 결국 GM과의 플랫폼 및 설계 공유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엔지니어링을 고집하면서 적자를 면치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모기업인 2009년 GM이 파산하면서 국내시장에서 철수했다.

같은해 GM이 파산하면서 사브를 구제하기 위해 스웨던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어 몇몇 기업이 인수를 검토했으나 자본부족, 거래 취소 등의 이유로 불발됐다. 결국 2011년 최종적으로 사브는 파산했다.

중국과 일본의 합작사인 NEVS가 인수해 전기차를 개발하는 등 부활의 신호탄을 쏘는 듯 했으나 NEVS 경영난으로 공장과 부지가 매각되면서 사브 브랜드는 영원히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재규어

포드 플랫폼으로 개발된 재규어 XF

재규어는 1992년 영국 해운사인 인치케이프를 통해 한국에 진출했다. 처음 랜드로버, 롤스로이스와 함께 판매하다가 1998년 IMF 금융위기로 인해 국내시장에서 잠시 철수했다. 이후 포드세일즈서비스코리아에서 판매하다가 포드 자회사인 PAG코리아로 분리하면서 볼보, 재규어, 랜드로버와 함께 판매됐다.

2008년 포드가 재규어를 타타그룹에 매각하면서 PAG코리아도 볼보와 재규어랜드로버를 분리했다. 이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로 출범했다.

SUV 중점 브랜드인 랜드로버와 달리 재규어는 영국제 고성능, 럭셔리 감성을 가진 세단을 중점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수입차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에 놓인 독일제 브랜드와 확연하게 다른 성격으로 대중적으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프리미엄 브랜드의 선택지 중 하나로써 존재감을 공고히했다.

하지만 2019년 이후 펜데믹 사태와 반도체 수급난, 모기업의 구조조정, 전기차 전환 대비를 이유로 수입물량이 크게 감소했다. 시장에서도 차량을 살펴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대형 세단인 XJ를 단종하면서 모델 라인업을 점차 줄여나갔고 지난해 5월 본사의 전동화 정책에 따라 대한민국 시장에서 판매를 공식적으로 중단했다.

재규어는 완전한 철수가 아닌 라인업의 전동화 이후 재출범할 계획이지만 야심작 XJ의 풀체인지 모델이 기술 부족을 이유로 양산이 취소됐다. 여기에 유로7 정책이 수정됨에 따라 다수의 브랜드가 전동화 정책을 연기하거나 철회하는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어 국내 재진출 전망이 어두운 상황이다.

현재 철수한 브랜드가 국내에 다시 진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국내에서 수요가 꽤 있어도 실패했던 아픈 경험 탓에 재진출을 꺼려한다. 물론 철수했다가 새롭게 다시 진출한 브랜드도 있다. 대표적으로 얼마전 국내에 런칭한 로터스코리아가 대표적이다. 국내에 철수했던 수입차 브랜드가 재진출을 결정하는 것보다는 중국계 자동차 브랜드가 상륙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태현 에디터 th.kim@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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