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왕즈이·야마구치 다 빠진 빈틈 노린 천위페이 말레이시아 마스터스 8강 안

세계 4위 천위페이가 불과 36분 만에 인도 신예를 완파하고 8강에 올랐다. 태국오픈 준우승의 아쉬움을 안고 곧바로 출격한 이번 대회, 랭킹 상위 세 선수가 모두 빠진 지금이야말로 그가 정상에 설 수 있는 최적의 무대다.

천위페이는 직전 대회인 태국오픈 결승에서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세계 3위)에게 2세트를 내주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우승컵을 눈앞에서 놓친 아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는 짐을 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했다.

4월 초 우버컵을 시작으로 태국오픈, 그리고 이번 말레이시아 마스터스까지 천위페이는 4주간 사실상 쉼 없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미디어 '소후'는 이 흐름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짚었다. 우버컵을 마친 뒤 2~3주간 충분히 쉰 경쟁자들과 달리 천위페이는 단 일주일의 휴식만 가졌다는 것이다. 1999년생, 만 26세의 베테랑에게 이 빡빡한 일정은 분명 부담 요소다.

그럼에도 그가 말레이시아행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세계 1위 안세영, 2위 왕즈이, 3위 야마구치까지 상위 세 선수가 모두 이번 대회에 불참했다. 슈퍼 500 등급 대회인 말레이시아 마스터스는 슈퍼 750 이상의 의무 출전 대회가 아니어서 상위 랭커들이 대거 빠진 것이다. 천위페이 입장에서는 평소라면 결승에서 맞닥뜨릴 강적들이 없는 상황, 올 시즌 두 번째 우승을 노릴 절호의 기회다.

올해 천위페이의 성적표를 보면 진가가 드러난다. 출전한 5개 대회에서 우승 1회, 준우승 1회, 4강 진출 3회를 기록했다. 도미넌트한 성적이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이 정도 완성도를 가진 선수라면 우승 숫자가 좀 더 나와줘야 한다는 아쉬움도 함께 나온다.

21일(한국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악시아타 아레나에서 열린 슈퍼 500 말레이시아 마스터스 여자단식 16강. 천위페이의 상대는 인도의 데비카 시하그(세계 38위)였다.

랭킹 차이만 34계단. 숫자상으로는 일방적인 구도지만 시하그는 최근 무시하기 어려운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2005년생, 만 20세의 이 인도 신예는 직전 주 태국오픈에서 홈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태국의 피차몬 오팟니푸스(세계 27위)를 2-0으로 완파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번 대회 32강에서도 한국의 박가은(김천시청·세계 68위)을 3세트 접전 끝에 2-1로 꺾으며 기세를 이어갔다. 첫 세트를 내줬다가 끈질기게 역전한 경기였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경기는 달랐다. 1게임 초반까지는 빠른 랠리 속에 팽팽한 흐름이 이어졌다. 인터벌까지 9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였다. 균형이 깨진 건 13-12 상황. 천위페이가 3연속 득점으로 흐름을 끊더니 이후 추가 연속 득점으로 18-14까지 격차를 벌렸다. 결국 21-16, 18분 만에 1게임을 가져왔다.

2게임 시작은 시하그 쪽이 먼저였다. 3연속 득점으로 3-0으로 치고 나갔다. 시하그가 리드를 잡고 천위페이가 추격하는 흐름이 이어졌지만, 4-7 스코어에서 천위페이가 이날 경기 최다인 6연속 득점을 쏟아내며 단번에 스코어를 뒤집었다(10-7). 2게임 후반에도 11-10으로 추격을 허용하자 곧바로 5연속 득점으로 쐐기를 박았다. 최종 21-13. 총 소요 시간은 36분이었다. 8강 상대는 태국의 피차몬 오팟니푸스다.

체력 부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경기 완성도, 이게 이번 천위페이 관전 포인트의 핵심이다. 강행군이 진짜 문제라면 이미 32강이나 16강에서 경기력이 무너졌어야 한다. 하지만 천위페이는 이번 대회에서 두 경기 연속 무실게임 승리를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상대가 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시하그처럼 빠른 랠리를 선호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 체력이 떨어진 선수는 연속 실점으로 무너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천위페이는 2게임 내내 결정적 순간에 오히려 폭발적인 연속 득점을 꺼냈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번 대회를 두고 '빈집털이'라는 표현과 함께 냉소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안세영, 왕즈이, 야마구치가 모두 빠진 상황에서 우승한들 가치가 덜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섣부른 평가다. 배드민턴 서킷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대회를 선택하는 건 엄연한 전략이자 프로 선수의 경쟁력 그 자체다.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베테랑이 강행군을 감수하면서도 이 대회를 택한 것 자체가 승부사 기질의 발현이다.

지금 이 시점에 천위페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세영이라는 압도적 1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 틈새를 꾸준히 비집는 천위페이의 지속력은 팬들과 전문가 모두에게 인상적이다. 이번 대회 우승이 확정된다면 랭킹 가산점과 함께 올 시즌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타이틀이 될 수 있다. 반면 8강 피차몬, 혹은 그 이후 랏차녹 인타논(세계 7위)에게 막힌다면 강행군의 누적 피로가 변수로 지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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